2021824일 화요일장마비


독일가문비나무 위에 까치 두 마리가 죽치고 앉아 있다. 배맛을 보겠다는 건지 쓰레기장에 버려진 음식(쓰레기장에서 자라는 구더기)이 목표인지 속을 모르겠다. 나는 그저 우리집엔 오지 마!’라고 뎅뎅거리며 종을 치는데 예의상 잠시 날아갔다가 다시 또 그 자리에 와있다. 어제는 물까치와 까마귀까지 등장하여 왁자지껄 두서 없는 게 우리 국회 같았다. 모든 새들의 마음은 대권(배밭)에 가 있다. 나는 배봉지를 지키려 펄럭이는 허수매를 응원하지만 새떼의 기세에 눌려 도망가(사실은 태풍에 줄이 끊어져) 구장댁 밭에 숨어 있던 매를  보스코가 다시 잡아다 붙들어 매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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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걔네들이 시험에 들지 않게 아예 배를 따버릴까 생각도 했지만 자두 만한 사과는 봤지만 자두만한 배는 본 일이 없어 가을장마에 비 좀 맞고 힘 차리면 커지지 않을까 기다려 보는 중이다. 늦어도 8월 말에는 나머지 배를 딸 생각인데 도둑까치와 안주인 누가 더 참을성 있나 겨누고 있다. 저러다가도 며칠 물까치떼가 안 보이면 걔들은 어디서 무얼 할까? 이 장마 태풍에 굶어 죽지는 않을까?” 도둑 까치 걱정 해주는 남정이 우리 집에 하나 있다.


가을비는 태풍을 몰고 이틀 내내 내린다. 야근수당도 안 주는데 빗줄기가 지리산 너머로 퇴근도 안 한다. 막 벼 이삭을 올리는 구장네 논에도 빗줄기가 곱게 토닥거리고 있다. 그제 마을 방송에서 구장님(노인회 회장)벼꽃 필 때가 되어 논에 물이 많이 필요하여 면에서 양수기를 가져왔으니 논 가진 사람들 순차적으로 논에 물 대세요.” 라고 방송을 했는데, 그 방송을 저 위에서 들으신 하느님이 하늘의 대형 양수기로  일률적으로 논마다 차고 넘치게 물을 대셨다. 역시 하느님은 농부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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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소리가 거칠어질수록 밭에 심은 무씨가 걱정. 적당한 온도에 습도까지 도와주니 예쁘게 두 잎씩 떡잎을 피어 올렸는데, “이렇게 빗줄기가 쎄면 저 여린 싹이 목부러지진 않을까, 잎이 녹아버리지는 않을까?” 염려스럽다. 도정의 체칠리아는 8월초에 무를 심었는데 날이 너무 가물어 세상을 보자마자 다 말라버렸다고 씨를 다시 뿌려야 했다. 오늘 빗속에 우산을 쓰고 밭에 나가보니 무싹이 너무나 예쁘다. 저 예쁜 모습을 본 것으로 족하고 살든 죽는 네 맘대로 하라 맡기고 집으로 올라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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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에나 온다던 빵고신부가 덕유산휴게소라고, 집에 가서 점심을 먹겠다고 전화를 했다. 비프 굴라쉬, 로스트 비프, 감자, 줄기콩을 점심으로 준비했다(나는 단식 끝나고 보식중). 빵고신부는 어려서 이탈리아 음식에 익숙했기에 그곳 음식을 좋아한다. 수도원에서는 늘 한식을 먹을 테니 집에 올 때면 일부러 이탈리아 음식을 장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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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코는 작은아들이 오기를 그렇게 기다리더니 점심 후 그동안 컴퓨터에서 못 풀었던 모든 숙원사업을 엮어 내고 아들은 그 문제를 하나씩 다 해결했다. 예전에 바오로딸 출판사에 넘긴 아우구스티누스의 시편들 원고를 컴퓨터에서 찾아내 복원하고는 얼마나 좋아하던지 '아들은 낳고 봐야 하는기라'라는 제동댁 말이 생각나 웃었다. 본가 방문 여름휴가가 본가의 숙원사업이나 아빠의 컴퓨터 문제를 해결해주러 오는 해결사다. 그 점에서는 큰아들 빵기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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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적인 사고만을 하고 교부 아우구스티누스와만 씨름하는 아빠와 발을 땅에 닫고 있는 현실감각의 두 아들 사이의 완연한 차이랄까. 저녁을 먹고 나서는 우리 둘이 저녁마다 산보 하던 송전 길을 작은아들과 셋이 걸으며 로사리오기도를 했다. 가족이란 산봇길도 하나보다는 둘이, 둘보다는 셋이 훨씬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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