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22일 일요일, 흐리고 가랑비


서울서 돌아오는 길은 불금이었다. 길마다 밀리는 자동차 브레이크 등으로 벌겋게 불타는 금요일'. 어디로 가도 빠져나갈 길이 없다. 함양행 지리산고속은 버스라서 평소에는 중부고속도로로 다니지만, 주말이나 공휴일엔 고속도로에 진입하기까지 시내에서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경부고속도로로 들어와 버스전용차선’을 이용한다. 일방적인 노선 변경이지만 옆 차선에서 거북이로 기어가는 승용차 행렬을 보고는 누구도 불평할 이유가 없다. 그 차선에서는 고속도로 전체가 주차장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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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밤 서울에 도착하여 한 소금 눈을 붙이고 금요일 이주여성인권센터이사회에 참석하였다. 일곱 명의 이사들이 화상으로 들어와 회의에 참석하고 나머지 8명은 회의장에 직접 참석했다. 나는 상임이사여서 서울집도 살피고, 한목사네 얘기도 궁금하고, 허오 대표를 응원도 할 겸 현장참석을 택한 길이다. 역시 현장이어서 감이 다르다. 방역차원에서 자리를 하나씩 띄우고 칸막이를 설치하고, 마스크를 쓴 채로 발언하고 그 칸 안에서 각자의 도시락을 먹다 보니 코로나 펜데믹이 뭔가 엄숙한 현실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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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여성들의 삶은 이래저래 각박하지만 (남편이나 고용주의) ‘폭력문제가 줄었다는 통계에 이유를 살펴보니 원래 입국이 어려운 동남아 여인들의 입국이 코로나로 더욱 제한되어폭력 건수가 줄었다는 얘기였다! 말하자면 이주여성 입국초기에 가정폭력이 제일 많이 발생하는데 입국한 여성이 없어서 폭력이 줄었다니


시골총각들이 시골로 함께 들어와 거친 농사일을 감당할 한국 아가씨가 없어 고맙게도 동남아 여인들이 그 일을 감당해왔는데 그런 희생적 처녀들의 입국마저 제한하고 있다니 시골총각들의 결혼은 갈수록 요원해질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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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크를 쓰고 서울이라는 대도시를 걷는 인간들의 모습은 전혀 딴 세상이다. 마스크로 가려진 무표정은 세상만사에 대한 무관심으로 이어지고, 서로에 대한 온 가지 감정도 막아놓은 입처럼 소통이 차단된다


회의를 마치고 강변역으로 가서 3시 20분 함양행 버스에 오르니 도로는 막히죠, 얼굴에는 마스크죠, 버스는 뜨거울 정도로 난방을 틀어놓았죠, 그렇게 4시간 반을 붙박이 의자에 꼼짝못하고 버티기는 거의 살인적인 인내를 요했다. 내가 귀촌하여 지리산 자락에서 편히 숨 쉬며 살고 있다는 사실이 그렇게나 고마울 수가 없다. 그러나 피할 수 없는 이 상황을 고스라니 떠 안을 더 많은 사람들을 생각하니 미안함이 더 크다어서 누군가 이 고통의 상황을 끝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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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의 폭우와 천둥번개로 휴천재 식당채 냉장고에 연결된 전기차단기가 자꾸 떨어져 보스코가 전선으로 임시 연결해놓은 터라 내가 어제 토요일에는 읍에서 전기기사를 불러다 작은 보일러실을 비롯한 여러곳 전기배선을 검사하게 하고 차단기를 바꿨다


기사의 전기수리를 기회로 냉장고 속을 모조리 비워내어 '냉장고 가을철 대정리'를 감행하였다. 몇 달을 냉장실에서 버텼는지 모르지만 웬만한 반찬을 싹 다 비워 버렸다. 그렇게 비워낸 냉장고는 일주일 단식으로 비워진 위장만큼 헐거워졌다. 남편들이 냉장고 열고 들여다보면서 잔소리할까봐 주부들이 못 견디는 까닭을 알리라. 비워서 씻어낸 글라스락만도 20여개! 오후 2시에 시작한 냉장고 총정리가 밤 10시에야 끝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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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이어 일요일 모임에 가져갈 호두파이를 굽다보니 11시가 훌쩍 넘었다. 타인을 향한 시간은 아끼지 않기로 했는데 잘한 일이다. 보스코를 축하해 주는 명분으로 남해 형부의 초대가 있어 오늘은 남해 형부네 집으로 모였다. 은빛나래들은 임신부님 집전으로 그리스도왕대축일 미사를 드렸다. 모니카 언니의 오르간 반주는 축일미사를 더 성대하게 북돋아주었다. 


오늘로 가톨릭 전례력(典禮曆)으로는 한 해를 마치므로 연말이 한 달 먼저 이른 셈이다. 참석자들은 면면이 다스리는 대신에 섬기러 오신 왕을 마음에 품고서 각자 서있는 자리에서 남을 섬기며 살아온 고운 삶을 얼굴에 간직하고 있다. 체칠리아 성녀 축일이기도 해서 그 세례명을 가진 이들과 전화로 축하를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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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 후 미조에 있는 멸치횟집까지 한 시간 넘는 해변도로는 우중충한 날씨에도 아름답기 그지없다. 썰물의 바닷가에는 김발 걸리듯 검은 뭉치들이 군데군데 모여 있어 자세히 보니 겨울을 나러 북쪽에서 내려온 가마무지 떼! 엄청난 숫자가 군데군데 무리를 지어 있다. 저것들이 다 먹고 살려면 어쩌나? 그렇다고 남해바다 고기 씨가 마르지야 않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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횟집에서 점심을 먹고 나서 사람들 모이는 카페 같은 곳에 절대 가지 말라!’는 딸들의 어명으로 형부가 자리를 옮기기 싫어해서 그 식당 그 식탁에서 어젯밤에 만들어간 케이크와 아침에 내려간 커피로 다과를 했다


헤어지는 자리에서 두 분을 남해 설탄으로 돌려보내며 벌써 다음 만남을 기약하는 은빛나래 여섯은 구름이 걷혀가는 푸른 하늘을 향해 산청으로 돌아왔다. “남해라는 곳은 수학여행이나 가는 곳인데 한 해에 수 차례나 오가는 곳이 되었으니, 그게 남해형부덕이다.”  정말 맞아주는 사람이 바로 땅이고 보고싶은 사람이 고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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