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19일 목요일,


비온다는 소식이 여러 번 있었지만 날씨만 꾸무럭거리다 말기를 이 가을에는 몇 번이었는지! 어제도 비가 온다고는 했지만 하늘만 무섭게 흐려서 어두웠다. 지리산 천왕봉에 걸린 저 비구름이 오늘도 산을 못 넘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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잎이 누렇게 타들어가는 배추밭을 바라보는 드물댁의 속이 더 탄다. 한달전 밭이 너무 가물어 채마가 타들어가다 못해 축 늘어졌다며 물 좀 주라는 소담정의 말을 듣고 호스를 길게 연결하여 우리 배추와 무에는 푸지게 물을 주었다. 서울댁네서 놀던 드물댁에게도 전화를 해서 그 집 무와 배추에도 물을 주라니까 함께 놀던 아짐들의 이바구가 전화에 들려온다. ‘가을 배춘 물 주능 게 아이라.’ ‘그랬단 노랑병 걸린다 안카나?.’ 노는 재미에 빠졌을 땐 놀이 친구들 꾐에 솔깃해지는 건 아이와 어른이 같다. '난 안줄랍니다. 행여 우리 배차까지 물 줘서 노랑병 걸리게 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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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어제는 '내가 잘못 알아 틀릴 땐 알아서 물 좀 주제...'하면서 한탄한다. 드물댁이 비가 온다는 예보에도 배추밭에 물을 주겠다고 나서기에 봉재언니에게 물었더니 날이 차지는데 자꾸 물을 주면 뿌리 쪽으로부터 썩어 속이 싹 망가져 버린단다. 드물댁더러 저거라도 성하게 거두려면 내 말 듣고 그냥 놔두라고 일렀다. ‘우리 배찬 조졌다탄식하는 그미가 안쓰러워 우리 이랑들의 배추가 잘됐으니 한 서른 포기 줄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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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 위에위에 새로 이사 온 집이 담장을 범상치 않게 쌓고 축대도 새로 확장하고 진입로마저 새로 내더라면서 비 쏟아지기 전에 산보하며 보자는 보스코의 말. 시커먼 벽돌로 한길반이나 쌓아올린 담이 매우 생경하다. 우선 문정리는 대부분 담도 없고 대문도 없으며 있다 해도 늘 열려있다. 우리 휴천재는 담도 대문도 없을 뿐더러 현관문도 주차한 차문도 늘 열려 있다. 아예 도둑이 없는 마을이기도 하다. 도회지에서 온 사람이라 낯이 선데다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산속이 두려워서겠지만 머잖아 부질없는 수고를 했다고 느끼는 날이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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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보를 하자고 먼저 말을 꺼내는 보스코의 기특한 생각에 문상마을에서 공심원 원장님댁 옆으로 난 길을 지나 돼지농장을 통과해 강변길을 걸었다. 인규씨와 엄니는 토란을 캐고 강씨네는 단감을 따고 있다가 지나가는 나에게 큼직한 단감 두개를 준다. 도정 올라가는 한길에는 무를 캐고 잘라낸 무청이 한길 난간에 길게 널려 있다요즘은 미국 사는 교포들이 시래기를 많이도 수입해간다나?


강변을 끼고 갈나무가 무리를 지어 나이자랑과 키재기를 하는데 예전엔 저 나무들이 이 언덕을 온통 채웠고 그걸 베다가 숯을 구워 연명을 했기에 우리 동네 옛 이름이 '아래숯꾸지'. 늦가을의 낙엽이 길에 수북 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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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이 밟을 때 낙엽은 영혼처럼 운다

낙엽은 날개소리, 여자의 옷자락 소리를 낸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가까이 오라, 우리도 언젠가는 가벼운 낙엽이 되리라

가까이 오라, 벌써 밤이 되고 바람은 우리를 휩쓴다 (구르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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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또 한 분이 보스코가 학문적인 업적을 인정받은 일을 축하하러 먼 삼랑진에서 오셨으니 바로 송기인 신부님. 노유자 수녀님도 함께 오셨다. 샴페인을 들고 오셔서 식탁에서 말 그대로 축하의 샴페인을 터트리셨다. '보스코처럼 사회에 도움이 되는 생산적인 일을 하면 오래 살아도 된다.' 는 말씀이 송신부님 식으로는 최고의 칭찬이다. 과묵한 표정에서도 보스코의 일을 기뻐하는 모습이역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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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처럼 친구처럼 보스코를 다독여오며 그렇게 60년을 이어온 우정의 향기가 어제 산봇길에 꺾어다 식탁에 꽂은 산국향기와 잘 어울린다. 보스코도 송신부님을 늘 가장 가까운 친구로 꼽는다. 내일 아침 이주여성인권센터 회의가 있어 내가 오후에는 서울로 떠나야 해서 송신부님 일행도 쉬이 일어 나셨지만 그분의 속깊은 사랑은 늘 우리 곁에 있어 왔다.


http://donbosco.pe.kr/xe1/?mid=s_live&document_srl=300

http://donbosco.pe.kr/xe1/?mid=column02&page=1&document_srl=15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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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식사를 하는 동안 오늘은 예보대로 수십 밀리의 비가 그것도 천둥번개를 동반한 호우로 내렸다. 늦게나마 단비를 반길 배추와 무, 풀코스 양식의 설거지 꺼리를 보스코에게 남겨두고 읍으로 나가 350분 함양발 동서울행 비스에 올랐다


코로나의 공포가 기다리는 서울! 그곳도 내가 사랑하며 살아야 할 땅이어서 그곳으로 떠나긴 하지만 마음 한켠은 코를 막고 있는 마스크만큼이나 답답하다. 서울집에 도착하니 밤 9! 함양에선 여전히 비바람이 요란하단다! 부산에선 때아닌 폭우에 물난리가 났다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