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15일 일요일,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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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속에 살면서 가까운 이웃이 바로 새와 고양이 오소리 고라니 같은 들짐승이다. 그것들과 되도록 친하게 지내려고 마음먹지만 뜻대로 안될 때도 있어 마음 상한다. 대표적인 게 물까치인데 그것들은 농사 짓는 사람들 전부와 척지고 산다. 자기네 둥지 옆을 지난다고 내 머리나 어깨를 치고 나르는가 하면 텃밭 초입에 있는 음식물 쓰레기장을 지날 때도 자기 식사를 방해한다는 듯 내 등을 치고 간다.


물까치는 다른 새들과도 절대 공존할 수 없는 '드러운 승질'을 갖고 태어난 짐승이다.떼로 덤비기 땜에 동네 까마귀나 까치는 물론 심지어 고양이까지도 물까치 눈치를 보느라 쫓겨 다니며(몇 해 전 물까치 둥지를 습격하여 새끼들을 잡아먹은 죄로) 그 놈들이 떼지어 깍깍거리면 하수구 밑으로 숨어버린다. 물론 올 우리 배농사를 망가뜨린 것도 물까치 소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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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오늘 내 양심에 찔리는 건 휴천재 현관에 있는 신발장 위로 요즘 들락거리던 딱새 때문이다. 당초에는 추운 겨울이니까 한철 깃들다 가려니 해서 무료로 방을 내주었는데, 신발장 거울 앞은 물론 근처에 벗어놓은 신발마다 변소로 사용해서 신발장 전부가 새똥 범벅이다 시피하다


해마다 초여름에 딱새가 신발장 꼭대기에 둥지를 틀고 알을 낳고 새끼를 키워왔는데 그 새가족은 민폐를 안 끼치겠다는 듯 부모가 먹이를 물어나르면서도 사람 눈을 피해 드나들고 새끼가 싸는 똥까지 어미새가 다 받아먹거나 밖으로 물어나르고 새끼들도 배고프다는 울음소리도 내지 않을 만큼 셋방살이의 눈치를 보아서 우리에겐 조금도 불편함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 초겨울에 혼자 깃든 저 새는 지난 초여름 여기서 깨어난 새인지, 그때의 어미나 아비인지 모르지만 정말 냄새 풀풀 나는 홀아비같다


며칠을 견디다 드디어 새집을 들어내고 사방에 범벅인 똥을 치우고 청소를 깨끗이 하고 현관의 망문을 닫아버렸다. 한나절 전깃줄에 앉아 나한테 애절한 눈길을 보내는데 정말 견디기 힘들었다


아주 어렸을 적에 어머니한테서 배웠다며 보스코가 혼자 흥얼거리는, 왜색풍의 좀 구슬픈 동요가 있다. "새야, 오늘 밤은 어디서 자려나? 나무 수풀 깃들일 곳은 젖어버렸다." 요즘 그 딱새를 보아왔고 딱새가 드나들게 현관 망문을 닫지 말라고 당부하던 보스코가 내가 행한 처분을 듣고선 나더러 새한테 참 모질게 했구먼.” 할 땐 나도 으앙하고 울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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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성당에서 돌아오는 길에 보니 유영감님이 동네 우물(지금은 안 쓴다) 옆에 걸터앉아 손톱만한 잔돌을 땅에서 주워 하나씩 던져 넣고 있다. 내가 차를 세우고 ", 심심하셔요?"라고 물으니 "(사는 게) 영~ 재미가 엄서."라고 하신다. 흙이 여기저기 묻은 낡은 바지가 털이 듬성듬성 빠져 보이던 우리 현관 저 딱새의 깃털 같다


'돌 쌓는 치매'에 걸렸다는 동네아짐들의 흉마따나, 며칠 전 나더러 우리 축대에서 돌 몇 개 빼내다 쓰겠노라는 말씀에 절대 안 된다고 대꾸했더니 풀이 팍 죽어보였는데... 그냥 몇 개 뽑아다 쓰시라고 할까 하는 생각에 드물댁의 의사를 물었더니 '행여 절대 그런 말 꺼내지도 마시라요.' 한다. 우리 축대가 무너지도록 다 뽑아갈 거란다. 저까짓 돌이 뭔데, 그냥 돌일 뿐인데....


냉장고를 뒤지다 지난 여름 콩국 하려고 물에 담가 넣어두었던 콩을 잊고 있다 그만 시큼해져 버렸다. 조합장집 염소한테 먹이로 갖다주려는데 그 집 염소가 없어졌더라는 드물댁 얘기가 생각난다. 딱 한 마리 키우는 그 집 염소를 찾아 헤매던 주인이 윗동네 '염소 많은 집'까지 갔더라나. "우리집 염소가 엄서졌는데 혹시 이 집에 왔능교?" "우리집 염소야 백 마리도 넘는디 어디 그집 염소가 어떤 놈인가 찾아 데꼬가소. 염소가 이름푤 달고 다니는 것도 아이고..." 난감한 아줌마가 아무리 그놈들을 살펴봐도 자기네 염소라는 분간이 안 나오고 개처럼 주인을 보고 꼬리를 쳐오는 것도 아니어서 그만 씩씩거리고 돌아왔다는데, 이튿날 아침 일어나 보니 집나간 염소가 간밤에 돌아와 외양간에 얌전히 있더란다.


옛날 진이네가 염소를 키울 때 도망갔던 염소들이 새끼를 많이 쳐서 요즘 법화산에서 무리지어 살고 있단다. 그 염소떼가 자기네 콩밭을 '조져놓았다'고 이엄마가 진이엄마에게 싫은 소리를 하더란다. 그러자 진이엄마가 "그 염소가 우리 꺼라고 명찰이라도 달고 있습디까?"했다나. 그러고 보니 염소가 명찰을 다는 일은 앞으로 이 동네에서 아주 중요한 민형사상의 문제가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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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 금요일에는 산청 화양마을에 있는 미루네 팔보식품에서 2시에 '지리산종교연대' 정기회합을 가졌다.  우리동네 문정리에 짓겠다던 지리산댐을 경우 막아냈는데 함양 뒷산에, 하동 형제봉에, 남원 정령치에 모노레일이니 케이블카니 하는 개발사업 따위를 추진하는 지자체의 욕심 때문에 여전히 우리 단체가 할 일이 많아보인다. 


보스코가 받은 상의 뒷풀이가 아직 덜 끝나 오늘은 함양본당신부님과 수녀님들이 점심에 휴천재에 오셨다.교중미사 끝나고 점심 준비를 하려면 너무 번거로우니 미사 후에 그냥 읍내에서 대접을 하자니까 '밖에서 사드리는 건 대접이 아니다'라는 보스코그 말을 전해들은 우리 큰딸 얘기: "울아부이는 떼만 쓰면 뭐든지 다 해결 된다는 걸 너무 잘 아시나봐."


오늘 복음말씀처럼 이것이 내가 받은 한 탈렌트라면, 맛있는 음식을 장만하여 사람들과 기쁨을 나누는 일이라면, 오늘 찾아온 손님들도 집에서 만든 음식을 맛있게 잡수고 가셨으니 나도 행복하고 잘 한 일이다내가 아직 감당할 수 있을 때까지는 해내겠지만 그게 언제까질까 나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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