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19일 월요일, 흐림


오늘 저녁 함양도서관에서 무려 6개월 만에 갖는 느티나무독서회’ 모임에 참석 못해 몹시 아쉬웠다더구나 오늘 얘기 나눌 책이 바로 내가 추천한황풍년의 전라도촌스러움의 미학이었기에 자책감(남편 일로 여자가 자기 일에 불실하다'는)이 크다.


전라도 사람들 특히 변방에서 눈에 띄지 않는 사람들의 삶음식환경척박하지만 그 속에서 오가는 정과 배려... 인간이 중심인 세상엔 하나하나가 사랑스런 장면으로 그 책에 그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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돔방돔방 떠가신 구름/ 우리 땅(친정)에 가신구름

우리 땅에 가시거든/ 편지나 한 장 전해주소

편지라서 무슨 편지/ 

동지섣달 설한풍에 맨발 벗고 물길은다고/ 신죽이라 보내라소

이삼사월 긴긴 해에 점심 굶고 베짠다고/ 쌀말이나 보내라소

울 아버지 듣조시면/ 받으신 밥상을 밀쳐두고 대성통곡을 하실레라

울 어머니가 들으시면/ 업었던 손자를 내려놓고 대성통곡을 하실레라

우리 오빠 들으시면/ 보시던 책을 밀쳐두고 대성통곡을 하실레라

우리 형님이 들으시면/ 씻던 그릇을 잦쳐놓고 살강 다리를 마주잡고 

궁뎅이춤만 추실레라...

(우리동네 소리꾼 고용순 할매의 시집살이)


마지막 절은 얄밉던 시누가 자기 처지가 되었으니 얼마나 꼬십겠느냐는(그래서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말이 나올까?) 반전으로 가련조의 소릿가락을 웃음으로 바꿔놓는다. 아무튼 함양 아우님들 하나하나의 얼굴을 떠올리며 아쉬운 마음을 달랜다.


서울집 냉장고 냉장실이 고장 난 걸 안 것은 여름이 다 지난 10월 중순. 서울을 왔어도 바빠서 냉장고를 열 시간도 없었는데 10월의 어느 날 김총각이 사실은 여름내내 고장나 있었다고 전화로 실토했다. 그때 내가 사람을 불러보내 고치긴 했는데 A/S 온 기사가 냉장고가 오래 되었으니 새로 사라 하더란다. 200만원 훌쩍 넘는 냉장고를 고무신 사듯 하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아무리 남의 일이라지만 괘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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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냉장실에 있던 모든 음식이 끓고 넘치고 상한 엄청난 사고였다! 냉장고를 싹 비우고 버릴 것은 과감히 버렸다. 냉장고를 정리하고 청소하고 집안을 정리하는데 오후부터 자정까지 무려 8시간이 걸렸다그게 다 여자인 내 몫이다. 이런 일 안 해도 되는 남자들은 참 좋겠다. 역사에 기록되지 못하는 야사가 세상의 뒷심이듯, 표도 안 나는 이런 일을 하는 여자들에게 그야말로 '노벨 평화상'을 줘야 한다(보스코는 이런 탄식 자체를 '노벨평화상 수상연설'이라고 날 놀리지만). 하기사 우리의 일상이 "돔방돔방 떠가신 구름"처럼 우리 여인네들이 날마다 피워올리는 향불이거늘 남들 눈에 표가 나든 안 나든 무슨 상관이랴? 


집안에서도 유리플라스틱철로 나눠지는 폐기물과 재활용을 분리하여 처리했다. 언제부턴가 집사 방에 서 있던 커다란 유리문 책장도 내다버렸다보스코가 드라이버로 유리문을 일일이 떼내고 서랍을 떼낸 다음 둘이서 끙끙 들어다 골목 끝에 내다 놓고 동사무소에서 사온 폐기물처리 딱지를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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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주일 오후엔 두상이 서방님과 동서가 놀러왔다. 보스코 수상을 축하해주는 자리이기도했다. '우리 주치의'로 불리는 블란디나씨도 불러 얘기를 함께 나누니 동업종이라 두 사람과 얘기가 잘 통한다. 동서가 좋아하는 피자를 해 주었다. 지난번 시골밥상을 차려주었더니 실망의 빛이어서 역시 내 전공을 살리니까 모두 만족이다.


주일 저녁에는 명동엘 나갔다. 아녜스씨와 로싸리아씨가 보스코의 수상을 축하해 줘서 답례로 내가 밥을 사기로 했는데 기회를 놓쳤다. 그 대신 다음에 우리 집에서 파스타나 피자를 해달라는 주문이다. 이러다가 피자집 간판을 달까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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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낮에는 보훈중앙병원에 보스코 심장약을 처방받으러 갔다. 두상이 서방님이 진료 예약에 진료에 뒤이어 점심까지 샀다. '사람이 늙으면 병원순례를 한다'고 남들을 흉봤는데, 바로 내가 또 내 남편을 싣고 병원순례를 하는 신세가 되었다. 이번 상경에도 한 주간에 내 치아의 임플란트, 보스코 치아 임플란트 준비, 은평 성모병원에서 보스코의 호흡기내과(양압기 사용) 정기진료, 보훈병원 흉부내과(스턴트와 콜레스트롤)에서 보스코의 정기진료 등으로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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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몇 년 전, 로마의 칼리스토 카타콤바에서 안식년을 보내던 우리를 찾아온 같은 과 동료 정교수 부부가 아침저녁 알약을 한 상 가득히 쏟아놓고 '이건 당신 꺼.' '이건 내꺼.' 하면서 한줌씩 나눠 복용하던 모습을 보고서 웃었는데 지금은 정확히 내가 아침저녁으로 '여보, 약 먹어요!'라고 독촉하고 일일히 확인하는 처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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