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3일 화요일, 맑음


밤중에 제주에서 돌아와서 텃밭의 애들(, 배추, )이 어떤가 궁금해 밤 10시가 넘었는데도 손전등을 켜들고 밭으로 내려가 잠든 애들을 둘러본다. 닷새밖에 안된 틈에도 애들은 훌쩍 자라 있었다. 지난번에 보스코가 준 물에 갈증을 풀고 몸을 추슬렀는지 검푸른색으로 건강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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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물을 한 번 더 줘야지싶었는데, 밤에 테라스에 빗방울 지는 소리가 기분 좋게 들렸다. 너무 가물어 밭농사 짓는 아낙들이 모두 걱정인 참에 하느님이 밤새 물을 주셔서 우리 염려를 잠재우신다. 마음이 놓이자 빗소리가 자장가로 바뀌며 잠이 몰려온다. 내 나이를 생각지 않고 신나게 놀았으니 몸도 고됐겠지.


아침에 일어나 호박, 호박잎, 고추,울콩,가지를 한 바구니 땄다. 무도 제법 커서 조금은 뽑아 먹어도 밭두럭에 미안하지 않을 정도가 됐다. 장엘 안 가도 늘 밥상이 푸짐한 데는 텃밭이 큰 몫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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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고 온 터라 할 일이 줄지어 섰다. 세탁기를 세 번이나 돌렸다. 한번이라도 바깥 구경을 한 옷은 원칙적으로 빤다. .선생님 말투를 흉내내어 보스코가 '멀쩡한 옷을 빨아서 조진다'는 험담을 하지만, 사람이 늙을수록 몸은 자주 씻고 옷은 자주 빨아 입어야지 늙은 남자들은 홀몬 때문인지 쿰쿰한 메주 뜨는 냄새를 풍기기 예사여서 자칫 한 공간에 있는 것 자체가 남에게 고문이 된다. ‘당신, 냄새 난다는 말은 누구도 차마 못하니 스스로들 알아서 처신해야 하므로 Dress up이 노인들의 일곱 미덕 중의 하나다.


이번 주일은 모든 성인의 날대축일이어서 임신부님댁으로 미사를 가기로 했다. 그런데 공소교우 모니카의 남편(보스코가 작년 3월에 병상을 찾아가 아우구스티노라는 이름으로 대세代洗를 주었다)이 우리 없는 새에 돌아가시고 삼오까지 마쳤다는 소식에 교우가 된 고인을 위해 연도燃禱를 바치자고 7시 반 공소예절에도 참석했다. 긴 병상에서 몸속에 갇혀 있던 힘든 영혼이 자유를 얻어 천국으로 훨훨 날아 가셨으리라. 인간에게 죽을 수 있음이 얼마나 큰 선물인가! 그래서 가톨릭에서는 11월을 죽은 이들을 사랑하는 계절’(위령성월)로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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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112일은 '죽은 모든 이들을 기억하는. 교황님이 이번에는 11월 한 달 묘지에서 미사와 기도를 하면 전대사(全大赦)를 받을 기간으로 선포하셨단다. 개신교 신학을 공부한 내가 가톨릭 신학을 공부한 보스코에게 대사(大赦)가 뭐냐고 물었더니 이미 구원받은 영혼이 하느님 대전에서 자기 평생에 저지른 잘못에 대해서 느끼는 후회와 부끄러움을 스스로 정화하는 단계를 상정하고서 그것을 연옥(煉獄)이라고 부른단다


그것도 옥()은 옥이니만큼 사면(赦免)이 내리면 잔벌(殘罰)이 끝나기 전에 거기서 풀려난다나... 우리 개신교에서는 마르틴 루터의 종교걔혁 사건과 연루된 문제여서 대사라는 것을 '면죄부免罪符'라고 부르면서 구교를 놀려왔다. 신학이론으로는 연옥교리가 좀 엉성하지만 눈앞에서 사라졌다고 죽은이들을 잊지 않고 기억하며 계절을 따로 정하여 그들을 기도 중에 사랑하는 구교의 관습은 퍽 인간적이고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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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정 체칠리아에게 함양본당의 묘지가 있는 하늘공원에 같이 가자고 초청했다. 내가 보기에 본당의 공동묘지에 미사 온 분들은 사후에 가서까지 정화할 잘못이 전혀 없을 만큼 착하게 사는 분들이다. 묘지는 먼 산들이 내다보일만큼 탁 터진 곳에 자리하여 살아서 답답한 세상에서 해방되신 분들이 영원한 안식을 누리기에 꼭 알맞는 자리다. 봉분 건너에 수목장을 하도록 만들어진 장소가 있어 그곳이 더 마음에 든다. 소나무 한 그루마다 마지막 남겨진 한 줌 재를 식물에게 내어주는 모습은 어쩌면 이승의 마지막 보시 같아서 아름답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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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댁에서 11시 미사에 참례하고 점심을 먹으로 나갔다. 이번 제주여행 때문에 비우는 집을 대신 보아주러온(그보다는 강아지 '복실이'를 돌보러) 여동생을 위해서 신부님은 식육식당에 우리를 데리고 갔다. 누님과 여동생 두 누이를 위해서 열심히 고기를 굽는 신부님의 솜씨와 정성이 보기좋다. 먼 옛날 다섯 오누이들이 자라던 신부님댁의 어린시절이 그대로 화덕 위에 그려지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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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화요일은 서울 치과병원에 예약이 된 날. 새벽 5시에 일어나 부지런히 여장을 갖추어 6시 전 먼동이 터오는 어둠 속에 집을 나섰다. 325Km를 운전하여 11시에 난곡에 도착해 내 치아의 임플란트 본을 뜨고(보스코는 잇몸 실밥을 뽑고) 우이동집에 도착하니 2시가 넘었다. 5대집사 김총각이 며칠 전 이사를 나가면서 아래층을 깨끗이 청소해 놓았다.사람을 떠나보내고 나면 마음에서 다 지우지 못해 한 자락 그리움이 늘 남는 법. 그 젊은이에게 가서도 잘 살기를 축원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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