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022일 목요일, 맑음


내가 지리산 살기를 그만두고 서울로 돌아온다면 넘어가는 서향볕이 닿는 한, 마당 3분의 1일쯤은 땅을 깊이 파 잔디와 시누대를 뿌리 뽑고서 퇴비를 양껏 섞어 채소를 심겠다. 0 순위가 ''. 부엌살림을 하다보면 한국요리에서 제일 많이 쓰는 양념인데 생각보다 병충해가 심해 농약을 많이 하는 걸 보다 보니 내가 직접 농사짓는 파 말고는 믿고서 먹기가 꺼림칙하다. 이러다 보면 손바닥 만한 텃밭에 심을 채소가 가짓수를 늘려가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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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오후 보스코와 마당에서 가을걷이를 했다. 그가 잔디 깎는 기계로 바닥을 밀고 나는 기계 날이 안 닿는 구석을 가위로 깎았다. 꽃이 지거나 단풍이 들기 시작하는 큰취, 윤판나물, 은방울, 둥굴레, 옥잠화를 시원하게 이발해 주었다. 이 뜰은 연륜이 있어 언제 왔는지도 모르는 꽃들이 좁은 땅에 등을 비비며 사이도 좋다. 이층 서재의 큰 창도 모처럼 닦고보니 세상이 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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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식사 후엔 종일 책상 앞에서 자판기만 두드리던 보스코를 걸리려 마을을 한 바퀴 돌았다. ‘대풍이네 골목으로 내려가는데 임박사님댁집터와 카타리나형님댁집터가 나란히 헐리고 가림막이 처져 있다. 다세대주택을 짓는단다. 임박사님은 문교부장관도 지낸 분으로 얼마나 청빈하셨던지 서른 평쯤 되는 집터의 스무 평 남짓 작은 집에서 평생을 살다 돌아가시고 혼자 남은 사모님이 최근까지도 사셨다.


듣자니 무슨 곡절로 그 집은 경매로 넘어갔고 아랫집도 좁은 골목 땜에 평당 780만원에 팔렸단다. ‘이게 어디 서울 시내 땅값이냐?’고 상일 엄마가 흥분한다. ‘동네에 땅만 나오면 LH공사에서 사들여 임대주택으로 내놔서 땅값이 저 모양이다.’라거나 우리 쌍문동은 가난뱅이만 모여 산다고 소문나서 집을 내놔도 팔리지를 않아요!’라는 한탄인데 이 얼마나 다행인가!


북한산과 도봉산이 올려다 보이고 서울에서 공기가 제일 맑은 산동네지만 이 동네서 집을 팔면 서울시내 어디로도 못 간다. ‘코딱지서점’(명색이 쓸모의 발견이라는 멋진 상호가 붙어 있다) 옆 골목 안은 8평짜리(건물 평수 아닌 집터의 평수!)부터 13, 15, 18평 따개비 집들이요 20평이 제일 큰 단독주택이다. 그러니 우린 이사를 못 가서붙박이로 살다죽는 수밖에.


얼마 전, 이웃한 완성빌라를 포함해서 7층짜리 아파트형 다세대를 짓는다고 꿈에 들떠 있었는데, 건축비 부담으로 포기했고, 작은 가구들이 따로 나서서 연립을 짓는다던 꿈마저 물건너갔단다. 8평짜리라도 내집에다 어엿한 단독주택인데 연립을 짓는다며 건축비 부담으로 파산하여 다른데 가더라도 전세는커녕 사글세 처지가 되는 터여서 가난한 대로 행복하다는 이치를 실생활로 깨우치는 동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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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돋는 초생달을 바라보며 제법 썰렁한 바람결에 가난한 우리 동네를 돌고돌아 성당의 야간을 지키시는 윗층 예수님의 장풍과 아래층 성모님의 밤샘 기도를 지켜보면서 오늘 뉴스에 떠오른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용기있는 발언이 생각난다


종교인들이 동성애자들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고, 동성간의 결합도 보호해주는 시민결합법을 당신도 지지한다고 그분이 공언하자 전세계가 놀라는 분위기다. ‘자비기쁨이 크리스천을 참다운 신앙인으로 식별하는 기준이라는 교황의 저런 호소에 오로지 율법을 고수하는 보수층 종교인들이 게거품을 물고 교황을 이단자라고 욕할 게 틀림없지만 인류사회가 성소수자와 동성애자의 인권 보호에 한발 더 나아가는 계기를 마련한 셈이다. 우리 교회가 참 좋은 지도자를 모셨다. 


"교회는 모든 사람을, 특히 사회적 약자들을 품어 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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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딸들넷 가운데 제일 분주한 사람이 손녀 윤서의 돌보미로 딸네집에 다니느라 바쁜 큰딸이다. 윤서를 키우는데 올인하다 윤서동생 윤건이가 태어난지 달포가 넘어 이엘리가 두배로 바빠졌다. 엊그제 보내온 손녀의 사진은 길이 남을 작품이다. 엄마가 갓난아기 먹일 젖을 유압기로 짜서 병에 담는 것을 지켜보던 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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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유압기를 자기 배꼽에 대고 고사리 손으로 부지런히 펌프질을 하더란다. “윤서, 뭐하고 있어요?”라는 할머니 물음에 두살짜리 손녀의 태연한 대답! 윤건이 먹일 우유 만들어요.” 아아, 저 조숙한 소녀는 세상에서 가장 나이어린 유모(乳母)로 기네스북에 오르고도 남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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