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8월 12일 금요일, 흐리다가 맑다가

 

다행이다. 오늘은 이 골짜기에 비가 안 왔다. 그러나 서울은 오늘도 비가 온다고 울상이다. 그 또한 그러려니 하고 보내야지 어쩌겠는가?

 

아침에 영준씨가 전화를 했다. 보스코가 쓴 문법책 “라틴어첫걸음”의 재판(再版)을 낸다고 연락하면서 우리 집에 장마피해는 없는지 묻는다. 별 피해는 없는데 낮은 지역 사람들은 집에 물이 들고 강이 넘쳐 많이들 힘들었을 거라고 했더니, 자기네 고향 동네는 강이 넓고 집들이 모두 강가에 있어 홍수가 한 해에 7, 8번 지나야 가을을 맞고 한 해가 갔단다. 홍수가 나면 다 떠내려 보내고 늘 새로 시작하여 잃을 것도 그렇게 많지 않았고 다시 번잡스럽게 준비하거나 살 것도 많지 않았단다.

 

이 얼마나 그리스도인다운 생활 자세인가! 완전한 “종말론적(終末論的) 삶”이 아닌가? 일 년에 일고여덟 번을 바닥을 차고 다시 시작해야 하는 나그네 같은 삶이라면 우린(나와 보스코) 과연 어떠했을까? 다 생각하기 나름이고 익숙하기 나름이다. 그렇다면 또 한 가지 내가 나에게 일러줄 말이 있을 것 같다.

 

     저토록 아름다운 산하여서 본모습을 조금이라도 지켜내자는 게 우리 꿈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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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면 꼭 개 한 마리가 우리 집 휴천재의 잔디밭에 와서 같은 자리에 똥을 싼다. 아무도 치우는 사람이 없어 며칠에 한 번씩 내가 치워야 한다. 한번은 보스코가 잔디를 깎으면서 한 곳을 고스란히 그냥 두었기에 왜 그랬느냐니까 거기 개똥이 있어서란다. “치우고 깎아야지 그럴 수 있나?” 나도 속이 상해 그냥 놓아두었다.

 

그런데 며칠 후 프란치스코회 신부님이 사람들을 30여명 데라고 와서 마당에서 미사를 드리는데 그 자리가 바로 제대 앞이 되어 급한 김에 바싹 마른 개똥을 맨손으로 주워내면서 “결국 내가 할 일이었군!”하였다.

 

“내가 왜 개똥 때문에 하루를 기분 나쁘게 보내야 하나?” 하고 개똥에 대한 묵상을 했다. 첫째, 그 개가 우리 개가 아니라는 사실(우린 개나 고양이 키우는 일을 좋아하지 않는다), 둘째, 개 주인은 무관심하고 우리 집 딴 사람들도 다 남의 일이려니 생각한다는 데 잔디밭에는 똥은 쌓여가고.... 셋째, 개한테 인간의 말로 거기 똥 싸지 말고 딴 데 가서 싸라고 설득을 할 수도 없고... 이럴 땐 나를 어떻게 다스려야 하나?

 

한참을 골돌하다 우리 손주들이 우유를 잘 먹고 노오란 똥을 쌌을 때 그 똥이 얼마나 이쁘던가 하는 생각이 났다. 우이동 이웃에 살던 봉수 아빠 생각도 났다. 봉수 엄마가 자궁암 수술을 하여 항암 치료로 장이 망가지고 변이 막혀 장경련이 자주 났다. 원자력병원으로 그니를 데려가 생사를 오가며 고생을 한 후 하루는 그가 내게 하던 말이 귀에 생생하다. “우리 인화(아내의 이름) 똥이 얼마나 사랑스럽던지!” 그야말로 생각하기 나름이고 익숙하기 나름인데 언제쯤 내가 도를 깨칠까?

 

     내일 오는 손님들 땜에 장을 보러 갔는데 우선 물건이 없고 값은 천정부지로 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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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딸과 작은 아들의 결혼을 보스코가 주례한 터라서 지금도 자주 생각나는 가족이다. 아내를 잃고 10여년 세월이 흐른 지금도 우이동 개천가 연립에 장가 안 간 큰아들과 살면서 “인화만한 여자가 없어서” 재혼도 않고 후줄그레 늙어가는 경상도 남자, 영남인답지 않게 김대중씨를 유난히 지지했고 사회정의에 유독 예민하던 그 남자...

 

오후 두시에 문하마을 쉼터에 “한길 가 공장건축 허가에 관한 설명회”가 있다는 이장 방송이 나와 나가 보았다. 우리가 이곳으로 주민등록을 옮기고 처음 있는 공청회인 셈이다. 동네사람들 절반은 나왔고 군청에서 온 담당공무원 다섯과 공장 사장이 왔다. 우리한테 시비하던 영감의 아들이 하는 공장 얘기다.

 

지난번 창고에서 공장으로 용도를 변경하는 일과 나머지 땅 불법매립을 두고 우리 환경단체들이 그렇게 오래 싸워서 벌금을 내게 만들고 원상복구까지 하게 만들었는데... 이제 와서는 그 토지 전부에 공장을 짓는 농지전용과 개발 허가를 주겠다는 설명회였다. 이전의 문제가 다 법적으로 해결이 되었다면서....

 

     문하마을 쉼터의 공청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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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고 볼 일이다. 그 자리 1000여 평에 창고를 짓겠다고 허가를 구해 함양군이 거부했다는데, 그래서 면에다 신고하여 일부만 전용을 허가받고서 창고로 만들어 공장으로 전용하려다 환경단체들의 이의제기로 법적 제재를 받은 곳인데 이젠 군의 지역경제과가 나서서 1000평 토지 전체를 공장건설로 허가하겠다니.... 군수는 감옥에 가고 임자 없을 때에 저지르는 일이 아니었으면....

 

나라 전부가 “돈돈돈” 하다가 요즘처럼 주식폭락과 국채(國債) 위기로 머리가 돌고 있고, 세계전부가 “돈돈돈” 하다가 미국발 신용하락으로 주저앉는 세태에 볏짚 사준다는 말에 지리산 경관이며 동네 경관을 생각 못하는 것 같았다. 돈이 전부인 세상에서 환경을 걱정하노라니 보스코도 나도 함께 돌아버릴 것 같다. 그래도 중심을 잡아야지. 우리라도 제정신을 차리고 눈을 똑바로 뜨고 있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