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7월 27일 수요일, 흐리고 종일 소나기 내리다

 

새벽 두시 천둥과 번개 그리고 소낙비, 이런 날은 자신을 좀 돌아봐야 한다. 과연 이렇게 험한 날에도 별일 나지 않을 만큼 잘 살아왔는가 스스로 물어야 한다. 어딘가 떨떠름하고 찔린 데가 있다. 벼락 맞기는 누구나 싫으니까 말이다. 베개 밑에 얼굴을 묻고 귀를 막는 걸 보면 내게 잘한 일이 많지 않나본데 보스코는 세상모르고 쿨쿨 자니 그가 내 몫까지 착하게 살아 우리 집에 별탈이 없을 듯도 하다.

 

      계절과 날씨에 상관없이 언제나 아름다운 지리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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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식사에 떡을 주면 별일이 없는데, 빵을 내놓을 땐 “제발 버터를 조금만 먹으라, 그게 다 콜레스테롤로 갈 거라, 당신 배 좀 보라.”고 내가 연달아 통박을 준다. 참다 참다 못한 보스코는 “버터 좀 실컷 먹게 놔 둘 수 없어?”라고 하지만 그냥 먹게 놓아둘 내가 아니다. “버터가 아까운 게 아니고 당신 콜레스테롤이 걱정이라구요. 아예 안 주면  찾으니까 주긴 주는데 알아서 향만 맡는 정도로 드시라는 겁니다요.”

 

그의 뱃살을 내 손으로 쓰다듬으면서 슬그머니 액자 속의 시어머님 표정을 살핀다. 저분이 살아계셔서  당신 아들한테 내가 이렇게 함부로 하는 꼴을 보신다면 “아니, 넌 남편을 쥐 잡듯 하는데 그런 널 보면 내가 되레 열불이 난다. 열불 나!” 하셨을 텐데.... 다행히 액자 속에만 계시면서 자애로운 미소만 짓고 계시니 당신도 편하고 나도 편하다.

 

뉴스를 보니 어젯밤 쏟아진 비로 온 세상이 난린데 그까짓 버터 갖고 뭔 얘기가 이리 기냐고 보스코를 어르고서 넘어갔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 무려 15년 가까이 기숙사 생활을 한 사람이라서 그가 음식 타박은 좀처럼 않는데(타박을 했다가는 “아니, 끼니마다 새 반찬을 서너 가지 내놓는 마누라하고 살면서 타박이에요?”라고 큰소리칠 나를 어찌 감당하려고?) 아침마다 버터는 먹겠다고, 들깨는 안 먹겠다고 해서 이런 소동이 한바탕 벌어지곤 한다.

 

     오늘 점심엔 호박부침개를 만들어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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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이장님의 “안내말씀 드리겠습니다.”라는 “마이크시험”이 시작하면 좀처럼 끝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마을 분들이 다수 글을 모르고 전달매체가 없는 처지여서 이장님의 새벽방송은 문하마을이 외부와 통하는 길이 되는 셈이다.

 

“에, 요즘 자손들이 많이 와 차들도 많고 물놀이를 많이 가는데 보호자 없이 보냈다가는 물구신이 되기 꼭 참입니다. 어른들과 꼭 함께 묶어서 보내시기 바라며 한남 동네처럼 빠져죽은 사람이 있다는 비보가 없었음 좋겠슴다.” 이어서 장학금신청, 재산세납부, 종량쓰레기... 이렇게 재방송이 재방송으로 이어진다. 귀가 나쁜 보스코가 “뭐라고 해?”라고 물으면 “마누라 말 잘 듣는 착한 남편들 되라고 해.”라고 내가 통역해 준다.

 

오후에는 면사무소엘 갔다. 농민으로 등록되어야 의료보험이 줄어든다. 하루 종일 소낙비가 왔다가 구름이 끼었다가 1분쯤 해가 나면서 다시 쏘나기가 내려 “여우 시집보내기”를 거듭하는 날씬데 면사무소엔 여직원 몇 만 남아 있고 남자들은 보이질 않는다. 면에서 심은 옥수수 수확하러 나갔단다.

 

조금 있으려니까 그 소낙비 속에 생쥐꼴이 되어 옥수수 망태기들을 들고 돌아오는 그들을 보니 안쓰럽기도 하다. “웬? 공무원들께서 농사도 지으세요?”라고 물으니 지난번엔 하지감자도 심어서 80상자나 캤단다. 그걸 파느라고 고생 깨나 했는데, 이번 옥수수 수확으로 올 고생이 끝이었으면 좋겠단다. 땀과 소낙비로 목욕을 한 채로 수박이며 화계에서 주문해 온 통닭을 먹고 있는 그들을 보니 적어도 면사무소 안에선 남자들이 고생을 여자보다 좀 더 하는 듯하다. 동네서야, 아줌마들 말마따나, “남자루 태어난 게 베슬”인데....

 

     문하마을 논배미. 밭으로 변한 꼴짝 논 한 마지기를 가졌지만 나도 이젠 "농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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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농협조합원이 되려고 농지원부와 농업인확인서를 떼는데 확인서에는 또 우리 이장님 도장이 필요했다. 다시 문정리로 돌아와 찾아간 이장님은 남호리 땅을 언제 샀는지, 무엇을 심었는지, 세세히 묻더니 좀 미안한지 “도장을 안 찍어 주려는 게 아이고...”라면서 찍어 주었다.

 

시골에서는 곳에 따라 이장님들의 유세(有勢)도 보통이 아니다. 또 일제시대 완장차고 끝발 날리던 관의 세도가 아직도 미친다고 생각하는 공무원들도 많이 보인다. 도회지에서는 관(官)에서 민(民)으로 권력이동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아직 모르는, 민중의 종복들이 시골에서는 여전하다.

 

그렇게 만든 서류를 갖고 의료보험공단엘 갔는데 이번엔 그곳 여직원이 면직원이 작성한 서류에 미비한 것이 있다면서 나더러 면에 가서 다시 해오란다. “당신은 월급 받고 뭘 하고 내게 시키는가? 직접 처리하고서 결과를 전화를 알려 달라.”하고는 그냥 돌아나왔다. 다행히 그 여직원은 싹싹한 성품이어서 "처리하고서 연락해 드릴 게요."라면서 선선히 서류를 접수하였다.

 

돌아오는 길에 장구경을 갔다. 2, 7일은 함양장날이다. 미카엘라씨 가게에 들러 들깨랑, 땅콩, 현미찹쌀, 좁쌀도 사고 복수박도 한 통 샀다. 소낙비가 다시 쏟아졌다.

 

     장터는 우선 색깔이 화려해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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