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6월 20일 월요일, 흐림

 

요즘은 빵기가 연락이 뜸하다. 생후 8개월짜리 시우가 유아원에서 어떤 생활을 하고 있나 궁금하기도 하고 해서 전화를 했더니만, 학위 논문을 제출하고 난 다음에, 새 집으로 이사온 후 빠진 곳 정리를 하고, 아기들을 보살피고, 직장 다니느라 무척이나 바빴단다.

 

마치 “가사를 돌보는 틈틈이 직장을 다니고 공부를 하는” 사람 같은 말투다. “가사를 돌보는 틈틈이”라는 말은 내가 집안 청소를 부탁하거나 설거지를 부탁하면 보스코가 하던 한탄이다.

 

시우가 유아원에 가서 어떻게 지내느냐 물으니 “유아원 가니까 훨씬 성숙해지고 사회성이 돋보이고 인간관계도 폭 넓어집니다.”라고 우스개로 대답한다. 아니, 8개월짜리의 “성숙함”이며 그 “사회성의 돋보임”이며 “인간관계의 폭”을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고, 되레 제 엄마랑 주고받는 교감에서 멀어지고, 정서적으로 불안해하고 눈치를 보며, 생존하려는 투쟁 정도를 떠올리는 것을 보면 나도 역시 할머니임이 틀림없다.

 

          할머니와 성무일도를 함께 바치던 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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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기지도 못하고 물건을 보면 몸을 굴려서 목표물에 접근하는 “오체투지” 단계의 아기가 유아원 보모들이 제아무리 격려하고 돌봐주며 경쟁관계가 아닌 유럽 세상에 산다 하더라도, 고 어린 것이 힘들지 않을까? 못된 에미 애비 같으니라구!“ 이러니 내가 아들 내외와 같이 살지 않고 이역만리로 떨어져 사는 게 다행이다 싶기도 하다.

 

내가 애 걱정으로 전화를 했는데 빵기는 내 걱정이 더 많다. “일 좀 그만 하시라. 몸 망가지겠다. 다 먹지도 못하는 걸 왜 힘을 빼느냐”면서 핀잔을 주다가 땅이 고만큼만 돼서 다행이라고 한숨을 쉬고는 또 “일 좀 그만 하세요.”로 끝난다. 시골 내려와 살면서 이 동네에서 내가 일을 제일 적게 하는 여자인데도 말이다. 마치 아가 걱정할 틈 있으면 엄마 몸에 신경을 쓰라는 핀잔 같기도 하고...

 

          도미니카씨 댁에 피어난 들양귀비가 화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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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번 서울 가서 정기검진을 한 결과가 나오는 날이라 옥련씨에게 내 대신 의사한테 가서 종합소견을 듣고 오라고 부탁했다. 내가 염려하고 조직검사까지 한 위장에는 이상이 없단다. 오히려 자궁경부에 이상한 변이세포가 있으니 3개월 후에 다시 검사를 하란다.

 

곁에서 전화를 듣고 있던 보스코는 청천벼락을 맞은 듯 기운이 쭉 빠져 한숨을 들이쉬고 내쉬고를 하면서 걱정이 태산이다. 내가 정말로 아프다면 지레 먼저 세상을 하직할 사람이다. 주말에 데크 공사를 할 사람에게 인터넷 뱅킹으로 돈을 보내라고 했더니만 “당신 아픈데 이 공사 해도 돼? 병원비도 들고 서울로 가야 할 텐데... 쓸 일도 없이 데크는 해서 뭐해?”라고 묻는다. “어휴, 내가 말을 말아야지.” ‘아플지도 모를지도 모른다.’는 한 마디에 그가 먼저 아파버리겠다 싶어 달래고 어르고 설득하고 위로하며 “내가 먼저 죽는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 꺼”라고 다짐하는 코메디 대행진이 우리 집에서 일어나고 있다. 내가 배가 좀 아프다면 "위 궤양이야?"라고 묻고, 아니라면 "위궤양 될 거야."라고 걱정하는 저 비관론자를 어찌할까나, 어찌할까나....

 

도정 스.선생 부부를 초대하여 점심을 함께 먹었다. 한길 공장 터 얘기도 나누고, 진이네와 다투던 강씨 얘기도 나누고, 함양 공무원들의 한심한 복무자세도 탄식하고 하면서 모처럼의 시간을 보냈다. 그 부부는 늘 주변 사람들을 대접하는 따스한 인정으로 차 있다. 끊임없이 베푸는 사람들이다.

 

           모처럼 스테파노씨 부부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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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에는 말남씨가 전화해서 남편이 방광이나 전립선에 이상이 생긴 것 같다고, 내일 서울대 분당병원으로 수술하러 간다고 알려왔다. 늘 건강하고 사려 깊고 착하고 말이 없던 그 선생님이 뇌졸중 후유증으로 전과는 전혀 다른 삶의 태도를 보이면서 몹시 힘들어 하던 그니였다. 저녁기도에 그분을 위해서 기도를 올렸다. 밤에 옥련씨에게 전화한 길에 말남씨네 얘기를 하면서 그니처럼 활동적인 여자에게는 남편 없이 훨훨 살 수 있지 않겠느냐는 말을 했더니만 다음과 같던 일화를 내게 들려주었다.

 

자기 이웃에 성당 다니는 아주머니 두 분이 있단다. 둘 다 남편의 시집살이가 남달라 서로 남편의 흉을 보는 일로 위로를 삼고 살아왔는데 하나가 남편을 잃었단다. 상대방이 “이젠 바깥분도 안 계시니 편하게 사시라.”고 위로를 해드렸더니 그냥 웃더란다. 그 후 다른 사람의 남편도 갑자기 돌아가셨는데, 그러자 제일 먼저 생각나는 사람이 그 여자여서 찾아가 지난 번 한 말(“남편 없으니 편하게 살라”)에 미안하다고 했더니만 이번에도 소리 없이 웃더란다.

 

옥련씨가 남편 때문에 속이 상해 투정을 하니까 그에 대한 대답으로 그 얘길 해주더란다. 나처럼 지나치게 징그럽게 사랑해도, 그리고 끔찍이 미워해도 부부는 역시 부부인가 보다. 지난 달 남편을 여읜 마르타 아줌마가 밭으로 오르내리며 휴천재 옆을 지나는 발걸음이 그토록 어둡고 기운빠진 모습에서 "남편의 존재"가 갖는 무게가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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