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2월 27일 일요일, 하루 종일 비

 

빵고 신부가 바오로딸 수녀회(“책바오로회”라고 불린다) 본원으로 첫미사를 오는 날이다. 수녀원 일요일은 7시에 아침기도와 묵상이 있고 7시 30분이 미사시간이다. 알람을 해 놓고서도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 하는 경우에는 나도 밤새 몇 차례나 잠을 깬다. 초저녁과 새벽에 서너 번은 눈이 떠져 시계를 보았다. 그래도 아들이 집전하는 미사에 가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아이가 내 앞에서 재롱부리는 기분은 아니지만 마냥 기특하고 자랑스러우니 나도 어쩔 수 없는 “푼수 엄마”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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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시 20분경 수녀원에 도착하니 빵고는 7시경에 도착했다고 하며 옆집 성바오로회 수도원에서 부제 한 분(빵고와 같은 반에서 공부했다는)이 와 있었다. 이레네 수녀님, 체칠리아 수녀님, 엘리사벳 수녀님이 새벽에 대문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다. 수요일에 보고 사흘 만에 보는데도 아들은 역시 반갑다. 피곤과 감기가 겹쳤는지 아직 목이 잠겨 있었다.

 

옛날에 수녀님들의 초대로 성탄자정미사나 부활성야미사에 데려오면 장궤틀 밑에서 쿨쿨 잠이나 자던 빵고가 이제는 제대 위에서 하느님께 제사를 올리고 있다니.... 하느님의 오묘한 뜻에 우리 인간들이 어찌 감사의 예를 다 드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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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두세 살 때부터 낯이 익으신 수녀님들은 모두 같은 마음임을 그 표정에서 읽을 수 있었다. 신자들의 기도에서 수녀님들은 새 사제의 항구한 믿음을, 그 길을 가면서 어려움이 없기를 기원해 주었고, 우리 가족과 보스코를 위해서도 따뜻한 기도를 올려주었다. 우리가 얼마나 마음 따뜻하고 경건하게 살아가는 이들에게 둘러싸여 살아가고 있는지 세삼스럽게 절감하며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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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후 수녀님들과 아침식사를 함께 하였다. 정성껏 마련한 정갈한 음식과 지원자들의 노래와 율동, 수녀원의 꽃이라고 할 수련자들의 축하노래와 율동을 보면서 무엇이 저 아름다운 처녀들을 사로잡아 이 숭고한 길을 걸으면서 행복을 찾게 만드는지, 한창 화장하고 연애하고 정신없이 청춘을 보낼 처녀들이 남을 위해 오로지 자기를 봉헌하는 삶을 살게 만드는 용기가 어디서 오는지 도시 짐작이 안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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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봐도 누구에겐가, 뭔가에 홀리지 않고서는 안 될 일이다. 그니들이 너무도 곱고 사랑스러워보였다. 저처럼 멋진 삶을 살아왔고 이제는 늙어 계시는 장상 수녀님들이 그니들을 내려다 볼 적에는 그 길이 얼마나 힘들어 보이고 속으로는 얼마나 안쓰럽기도 할까. 그래도 당신들이 걸어온 길을 두고 자기들이 좋은 몫을 택했노라고 생각하는 분들이니 후배들이 걷는 길도 가상해 보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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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고는 답가(答歌)를 하면서 “엄마가 하도 하라고 해서” 라고 일러바치고는 쑥스러워하는 품이 아직도 어린아이 같아서 어미의 마음을 흐뭇하게 해 주었다.

 

9시 30분경 빗속에서 뒤도 안 돌아보고 수도원으로 달려가는 빵고를 보내고 우리 둘은 집으로 돌아왔다. 본당의 11시 미사 후에는 빵고의 서품을 기도로 성원해 주고 첫미사를 성대하게 집전하게 해 준 교우들을 대표해서 사목위원들에게 점심을 내기로 하여 성당으로 갔다.

 

6397.jpg 그러니까 나는 한 달 전에 있었던 서품부터 오늘까지 아들 일로 바빴던 셈이다. 역시 자식을 위한 일이어서 조금도 타박하지 않고 해내는 것을 보면 나도 어쩔 수 없는 엄마다. 본당신부님과 두 수녀님, 남녀 소공동체 모임의 주무자들을 비롯한 사목회원들에게 고맙다는 표시를 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오늘 아침에 헤어지면서 빵고더러 자기 사무실 한 번만 보여달라고 했더니만 내일 12시경에 오란다. 엄마가 아들을 보러 가는 것도 윗사람의 허락을 받아야 하나보다.

 

내일 오면서 자기가 베던 베개 좀 가져다 달라 한다. 빵고는 어려서부터 워낙 베개를 낮게 베었으므로 높은 베개로는 편히 잠들지 못한다. 속은 빨아서 말리고 베갯닛은 (서울집에 재봉틀이 없어서) 감은 있는데 재봉틀로 박아줄 사람이 있는지 원장수녀님께 물었더니 마리아라는 교우가 고맙게도 오후에 금방 해 줘서 원장수녀님이 직접 들고 집으로 오셨다. 이렇게들 교우들에게 보살핌을 받으니 본인도 잘 살아야하고 엄마인 나도 아들을 위해 열심히 기도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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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 소리가 뜰에 남은 눈을 마저 녹이면서 새싹을 잠깨우는 차비를 하는 시간... 일기를 쓰고 있는 엄마의 눈도 기돗발을 올리며 더욱 초롱초롱해진다. “주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