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2월 15일 화요일, 맑음

 

맑고 고운 새소리에 잠을 깼다. 지리산 휴천재의 아침 같았다. 테라스에 나가서 보니까 생김새는 되게 못생겼는데 너무나 고운 새의 목소리에 그만 반해버렸다. 역시 사람을 알아보려면 여행을 함께 하거나 노름을 해 보라는 속담이 맞는 듯하다. 열흘 넘게 함께 다니다 보니 사람들의 성격과 기질이 잘 드러난다. 생김새와 달리 푸근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있는가 하면 허우대는 멀쩡한데 남들의 이마를 찌푸리게 하는 사람도 있다. 마찬가지로 비록 못생겼지만 고운 목소리로 우리에게 새아침을 알려준 인도의 저 새들은 훗날에라도 그 고운 소리를 다시 생각나게 만들 게다.

 

조용한 인도 시골의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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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의 아침식사는 동네 아이들 아르바이트인지 호텔학과 학생들의 실습인지, 토스트는 새까맣게 태우고, 나이프도 포크도 달라고 해야 설합에서 하나씩 꺼내주고, 커피나 홍차를 주문해도 가져다 줄 줄을 모르는 서비스였다. 건물도 방도 후지고 음식도 형편 없었지만 맑은 공기와 넓은 풀밭에 손님들이 불만은 누그러졌다.

 

9시 30분에 호텔을 나와 버스로 "아르나 챨라 스와르" 신전에 도착하였다. 시바 신에게 바쳐진 남인도 최대의 사원으로 3만평의 대지에 빼꼭하게 들어선 천년 사찰은 그 웅대한 위용으로 우리 입을 딱 벌어지게 만들었다. 주선생이 물색해 낸 현지 가이드는 갓 스무 살의 앳된 청년이었다. 자기는 주로 외국인들에게 10년 넘게 요가를 가르치고 있다고 소개를 하면서 가이드는 틈틈이 한다고 했다. 그렇담 열 살부터 요가선생을 해 왔다는 말인데 신전 가이드를 끝내고서 우리를 앉혀 놓고 요가를 시범해 보이는데 제법 수준 있는 몸놀림이었다.

 

                               남인도 최대를 자랑하는 아르나 찰라 시바사원의 거대한 "고뿌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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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 드문 남인도 땅에서 성산으로 알려진 "아르나 찰라"는 산 자체가 시바 신의 현신(아바타 avatar)이다. 그리고 신전은 서기 5세기의 형태가 거의 그대로 전해져 오는데 동서남북의 네 "고뿌람"(탑문塔門)의 위용이 우리를 압도하였다. 우리가 들어간 동문은 높이가 무려 66미터에 이르는 13층짜리 석탑이었다. 온갖 신화와 신상과 문양이 새겨진 탑문은 안에도 다섯 개가 있었다. 팔라바 왕조(王朝)때 지어진 것들이고 1500년대 무굴 제국을 거치며 비자야나가르 왕조 때에 보수되고 증축되었단다. 그 왕조의 크리슈나 데바라쟈가 사원의 내부 장식을 마쳤다고 한다.

 

웅장한 고뿌람에 비해서 정작 경내의 신전들은 훨씬 소박한 건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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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동문은 남인도에서 가장 크고 가장 높은데 신전보다 문이 큰 외형적 허세를 가이드는 외형을 중시하는 인도인들의 성격과 왕가의 위세를 신전건축에서 끌어내던 정치적 상징성에서 찾았다. 조각들이 그토록 아름답고 정교하였지만 보존의 문제 때문인지 3층부터는 하얗게 페인트를 칠해 예술적 가치를 반감시켜 놓았다.

 

현지 가이드가 신전의 사제들을 알고 있어서 우리는 외국인들에게 허용되지 않는 지성소(至聖所) 깊숙이까지 들어가 먼저 시바 신의 사제에게서 축복과 하얀 가루로 이마 연지를 찍어 받았고 그 다음은 시바 신의 배우자라는 바르바띠 여신의 신전에 들어가 그 사제에게도 붉은 연지를 찍고 기도를 받았다.

 

인도에서 외국인은 사성(四姓)의 카스트에 들지 못하므로 그야말로 불가촉천민에 해당하는데 인도인들의 기다란 행렬을 앞지르고 들어가 한데 모여 앉아 축복의 예식을 치루었다. 그때마다 사제가 우리 대표자(힌디어를 하는 우리 가이드 주선생)에게 꽃 둘레를 걸어주면서 헌금을 내게 하는 절차가 빠지지 않았다.

 

석실로 이루어진 사원 내부는 어둡고 더운데다 그 현실에서 불을 피고 있어서 무덥고 향내와 열기로 가득 차 있어 들어가기가 망설여졌지만 인도인의 종교생활의 핵심을 참관하려던 참이어서 감내해야만 했다. 이마에 연지(인도말로 "띠카")를 찍어주는 것은 인간 내심에 자리잡은 영기(챠크라)를 일깨우는 의식이라고 한다. 하얀가루도 비슈누 신당에서는 위아래로, 시바 신당에서는 옆으로 발라준다.   

 

 이 여자아기도 세상을 모른 채 삭발을 하여 여신께 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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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전 안마당에서 마주 친 특이한 광경은 여자 어른도 여자 아기도 머리를 박박 밀고 아기의 경우 비명을 지름에도 불구하고 귀를 뚫는 의식을 여기저기서 행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면도칼로 머리를 깨끗이 밀고 그 자리에는 노란색 가루(아마 덧나지 않게 하는 약제 같았다)를 잔뜩 발라주는 광경을 보았다. 머리칼을 여신에게 바쳐 공경을 드리는 서원(誓願) 의식이라고 설명했다. 그런 머리칼은 신전에서 나온 성별된 것이어서 따로 비싸게 팔려나간다는 말도 들었다. 여하튼 그 삭발 봉헌은 온 가족이 둘러앉아 성대한 축제 분위기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순례온 이 대가족은 두 부인과 두 손녀를 삭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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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이 축제 때에 타고 나가는 금마차(진짜 금이라고 했다)라든가 온갖 신상에 화려한 의상을 입혀 놓고 꽃둘레를 씌워놓는 모습은 우리가 이탈리아에서만도 수없이 보아온 광경이어서 모든 종교는 일맥상통한다는 생각이 났다.

 

사원 전부를 맨발로 돌아다니는데 돌로 깔아놓은 마당이어서 발바닥 여간 뜨겁지 않았다. 화장실이 없어선지 신전 안 뜰의 사방 구석마다 오줌 냄새와 자국이 가득하였다. 구걸하는 수행자들, 오체투지로 기도하는 신도들, 거룩한 음식을 받아서(헌금하고서 받는다) 먹는 사람들... 신에게 의지할 데가 없어서 절실한 사람들의 간절한 얼굴과 표정은 한국이나 이탈리아나 인도나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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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시에 사원을 나와 어제 들른 외국인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인도에 와서는 한 번을 빼고는 언제나 카레와 차파티와 입으로 불면 날아갈 쌀밥으로 뷔페식을 먹었다) 첸나이로 가는 4시간의 버스 여로에 올랐다. 중간에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렀는데 역시 고속도로 공중화장실은 우리나라가 세계 최고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주었다.

 

첸나이 호텔에 도착한 것은 저녁 7시 15분. 호텔식당에서 비교적 깔끔한 뷔페식사를 하고 잠자리에 든 것은 10시가 넘어서였다. 이틀간의 일기를 못 올린 참이어서 홈피에 올리려다 보니 인터넷 사용료가 시간당 우리 돈으로 무려 3만원이 넘어 내일 델리에 가서 하기로 미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