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26일 화요일, 하루 종일 비


, 겨울비는 처량하다. 가을에 떨어진 낙엽이 날리고 밟혀 으깨지고 미쳐 못 떠나고 남겨진 나뭇잎이 반은 얼고 반은 젖어 엉거주춤 할 바를 모른다. 이런 날은 하루종일 따뜻한 방에 뒹굴며 책을 읽는 게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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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두 권의 책을 받았다. 하나는 광주 옥주교님이 보내주신, 강기남 요셉 신부님이 쓴 미션, 볼리비아이고 또 한 권은 보스코의 동창이며 고대교수로 있던 소설가 서종택 교수의 코리아 블루라는 산문집이다. 한권은 몸으로 쓴 글이라면 하나는 머리로 쓴 글이다.


션, 볼리비아는 볼리비아에서 선교활동을 하며 일어나는 여러가지 일을 몸으로 부딪치며 느끼고 아파하고 화내고 부끄러워하고 그러면서 인간미 있게 살아가는 한 사제의 삶이어서 그저 아름답다. 그중 한 꼭지, 귀먹고 말 더듬는 12살 소녀 레포르마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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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각장애 교육을 못 받아 갑작스런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모른다. 웬일인지 관 속에 누워 일어서지 않는 아버지를 보고 한번도 주검을 본 일이 없었지만 직감적으로 영이별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느끼고 발작을 일으킨다. 결국 소녀의 맑은 눈에서 눈물이 폭포처럼 흘러나오고 신부님은 미사도 강론도 중단하고 소녀를 꼭 끌어안고 함께 눈물을 흘린다


사제의 저 눈물이 바로 하느님께 드리는 미사가 아니었을까? 참석한 모든 사람이 그분의 크신 사랑과 불쌍히 여기심 속에 하나가 되는 순간이다. 6개월 후에 그 소녀를 그 공소미사에서 다시 만났는데 이번에는 그 소녀가 신부님을 꼬옥 안아주더란다. 그래서 다시 한번 눈물을 흘렸다는, 결고은 사제의 얘기가 내 맘에까지 참사랑을 일렁이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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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교수의 산문집은 그동안 발표했던 글들을 모았는데 그때그때 시국적 상황이 들어있어 그 당시 우리가 겪은 사건들을 상기시킨다. 또한 주변에 일어난 일을 섬세한 사회적 양심으로 받아들이고 예리하게 파헤쳐 시원하고 섬뜩하기도 하지만 올바른 지성인으로서의 그의 필력에 내 눈도 반짝인다. 본인은 보스코와의 통화에서, 좀 더 용기 있게 살았더라면, 대학에서 퇴학당하고 감옥에서 몇 년을 살았더라면 자기 손에서도 소설 장길산도 나오고 태백산맥도 나왔을 텐데 몸으로 체득 못한 삶에서는 진정 깊은 울림을 끌어낼 수 없었노라고 탄식한다. 말이야 맞고 온몸으로 느껴야 감동을 주는 글이 나오지만 그런 고통의 시간을 겪었다고 누구나 문필가가 되고 작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많이, 깊이 생각하면 그 속에서 훌륭한 글도 퍼 올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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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부산에서 돌아온 도정 체칠리아네 부부와 소담정 도메니카가 휴천재를 다녀갔다. 요즘은 가족단위 소모임에서 코로나가 더 심하게 전염된다고 많이들 조심하고 외부인과 접촉은 최대한 피하는데 우리처럼 늘 자가격리 상태인 사람들은 별 걱정을 않는다. 드물댁마저도 아들과 딸 사위가 대구에서 왔다갔다며 나와 멀찌감치 떨어져서 하는 말이, 한 열흘은 자기 집에 오지도 말라고, 자기도 우리집에 안 오겠단다. 어서 이 고립의 시대가 끝나야지 사람 사는 꼴이 말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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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도 개신교 선교 단체에서 백수십명 감염자가 나와 부끄러운데 그나마 한국가톨릭은 사회적인 책임을 지는데 교회 단위로 앞장서서 신자로서도 참 고맙다. 가톨릭신문」(대구교구에서 발간되면서도 신앙인의 사회적 양심을 꾸준히 일깨우고 있음을 보스코는 퍽 고마워한다) 이번 호에 윌리암 그림 신부가 쓴 평론을 보면 미국에서는, 그의 표현대로, '악마보다 못한' 도널드 트럼프를 뽑아 양키들의 진면모, 곧 노골적인 거짓말, 위선, 인종주의, 족벌주의, 부패, 자아도취, 국제법질서 도전, 총체적 무능을 4년동안 전세계에 까보였단다. 


그런 자임을 목격하고서도 이번 선거에서 가톨릭 신자 절반은 트럼프를 찍었더란다. 조셉 스트릭랜드라는 주교는 트럼프를 찍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고 설교하는 신부의 말을 지지한다고 선언했고 그 외에 여러 주교도 트럼프 편을 들더란다. 더 심각한 것은 이런 사태에서 미국주교단이 견지한 침묵이다. 악에 대한 침묵은 동조다. 전광훈 목사의 어처구니없는 행보에 한국 개신교가 침묵을 지키거나 내심 갈채를 보내고 광화문 집회에 적극 참석해온 모습 그대로다.


삭막한 겨울에도 양지녘 이끼는 아름답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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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코가 20여년전 자기고백적으로 나는 왜 그리스도인인가?”라는 글에서도 밝혔지만(http://donbosco.pe.kr/xe1/?document_srl=298), 보스코도 나도 나자렛 사람 예수를 구세주로 믿는 까닭이 인간 사랑이 없으면 종교 신봉’은 심판받을 범죄요 영원한 파멸이라면서 ‘정의구현이 곧 복음선포라는 의무감을 우리 양심에 심어주기 때문이다. 지난 40여년간 보스코가 강연을 다니고 글을 써온 주제가 지성인으로서 절감하는 이런 의무감이었음을 그의 홈피에 실린 칼럼들(예 http://donbosco.pe.kr/xe1/?mid=SocialDoctrine)이 말해준다


트럼프와 함께 지옥행 특급열차를 예약한 듯한 미국의 근본주의 크리스천들이 전인류를 경악시키면서 (한국의 진보마저 일시나마 트럼프의 북미회담에다 일말의 희망을 걸기도 했지만) 트럼프의 선거 불복을 돕기 위해 민경욱을 워싱턴에 보낸 듯한 한국의 보수는 오로지 반공친미에 자기네 기득권을 걸고 살아왔으니 성조기에 일장기에 이스라엘 국기까지 흔들며 광화문을 누비던 태그끼아재들이 올봄부터 뭘 어찌할 것인가 지켜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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