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17일 일요일, 맑음


오랜만에 가림정에 가서 주일미사를 했다. '연중시기'로 돌아와서 독서내용도 차분해졌다. 그동안 미사는 유튜브에서 보아 왔지만 마치 인스턴트 식품으로 적당히 끼니를 떼우며 배가 엄청 고픈 터에 걸게 차린 밥상을 받은 기분이다


해만 나면 온통 양지 바른 봄볕에 앉아 있는 듯 임신부님 댁은 늘 따뜻하다. 같은 종교인이면서도 대면미사에 모이지 않고 화상으로 미사에 참례하면서 정부의 코로나 방역에 적극 협조하는 가톨릭교회의 모습에서는 이웃을 배려하고 내 고집을 꺾을 줄 아는 중후한 중년신사같은 종교인 면모가 돋보인다. 일부 개신교도들이 국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세태와 대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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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인 이상 모이지 말라는 시책에 따라 봉재 언니가 김밥을 말아 겨울의 추위를 씹는 듯한 아삭한 석박지와 동치미, 그리고 바지락 무국으로 점심도 마련해 주셨으니 영육간의 양식을 주신 행복한 식탁이었다


코로나 백신의 효과를 살피며 차분히 백신구입을 저울질하던 정부의 정책에 "백신도확보를 못했다! 정부가 뭘 하는거냐?"고 달달 볶던 보수언론. 이번에는 아픈 노인부터 접종하는 사례에서 탈을 잡아 "함부로 백신을 놓으니 사망자가 나왔고 의사도 죽었다!"고 냄비를 엎어 놓고 구멍이 나도록 국자로 두들기고 있다. 기저질환이 있고 면역력 약한 노인이라면 백신 때문이 아니라도 죽을 수 있고, 의사도 사람인데 다른 환자에게 생길 문제라면 의사에게도 생기는 게 당연한데 보수언론 기레기들은 왜 저리 난리부루스를 추는지...


더구나 같은 기자가 "백신확보를 안한 무능한 정부"라는 기사를 쓰고서는 서너 시간 간격으로, "백신의 효과가 불분명한데 백신을 사들이면 어쩌냐?"고 정반대 입장의 기사를 써댔다는 얘기를 듣고 보수언론사에서 일하는 기자들 대부분이 정신착란에 빠져있는 듯하고, 저런 찌라시를 읽고 보는 시청자도 '정신적 코로나'에 심각하게 전염되어 있지 않는지 걱정이다. 사실은 젖혀 놓고 갖가지로 입장을 변형하면서 애오라지 진보정권을 공격하는데만 열을 올리는 '언론바이러스'에 우리라도 중심을 잡아줘야 나라가 바로 서겠다는 생각이 든다.


서울 가서 종합진찰을 했지만 여전히 부정맥으로 고생하는 보스코에게 며칠간 날씨가 풀렸는데도 걷자는 말을 차마 못 끄집어내는데 도정 체칠리아가 그제 오후에 함께 걷자는 제안을 해왔다. 보스코의 눈치를 살피니 자기도 가겠다고 나선다. 오후에 제일 따순 시간을 택해 송문교 앞에서 스.선생 부부를 만나 용유담 쪽으로 걸었다. '지리산 둘레길 제4코스'이지만 겨울철이고 코로나 땜에 사람들이 안 움직여선지 둘레길을 걷는 사람이 우리 외에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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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정마을에 집을 짓고 주말마다 부산에서 내려온다는 부부를 도중에 만났다. 그 커플과 함께 돌아오다 휴천재에 들러 차 한 잔 하라고 초대했더니 그 부부도 남편은 요셉, 부인은 리디아라는 교우였다. 지금은 쉬는 중이라니 두 사람의 이웃인 체칠리아의 숙제가 하나 더 늘었다


리디아씨는 친정 엄마가 자궁암이라는 진단을 받자 딸들 넷이 모두 '전수조사'를 받으라는 의사의 권유로 유전자 검사를 했는데 정확히 50%로 두 딸이 양쪽 나팔관에 암세포가 자라고 있더라나? 처음엔 '엄마가 왜 이런 유전자를 우리한테 물려주었나?' 하는 원망이 크다가 엄마의 진단 덕분에 자기도 초기에 병을 발견했다 생각하니 되레 고맙더라며 "역시 우리 마음속에 천국과 지옥이 있더라구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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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앞에서 자기 남편더러 "내가 암이 걸렸다니까 가슴이 덜컹하고 울지는 않았어요?"라고 물으니 "우는 일이야 죽은 다음에 해야지 죽지도 않았는데 울긴 왜 울어? 눈물은 아껴둬야 한다구."라는 대꾸. 한국 남자의 전형적 답변이라는 것이 우리 여자들의 평이지만 아마 내게 암이라는 진단이 나오면 보스코는 그 자리에서 심장마비로 하늘나라로 앞질러가서 거기서 나를 기다릴 게다.


어제 오후엔 분당에서 부부 손님이 휴천재로 보스코를 방문했다. 내과의사인 부인은 전문인답게 우리와 환담하는 중에도 철저하게 마스크를 쓰고 있어 산속에서 자유롭게 사는 우리에게 도회지의 절박함을 와 닿게 만들었다. 여러 직장에서 '코로나에 걸리면 사직서 쓸 각오하라!'는 협박에 어머님 생신과 연말에도 가족하고만 보냈다는 얘기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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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밤 서울에는 큰 눈이 내린다지만 이곳은 지리산이 버티고 있어선지 저녁해가 넘어가면서도 "눈 꺽정은 말아요!" 한다. 눈이 한 50센티쯤 내려 나도 고립 좀 되고 싶은데... 최근 몇 해는 눈이 많이 내린 기억이 없다. 그래도 스위스에선 눈이 많이 내려 시아네가 오늘 스키를 타러 갔단다(그 동안 애들엄마는 집안 대청소를 하고)사진을 보내와서 아범과 두 손주 셋이 설원을 달리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우리가 아이들과 놀던 시간도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우리에게 그 기억이 전혀 남아 있지 않다아이들은 늘 우리에게 현재이자 미래일까내일은 사진첩에서 과거를 뒤져 추억의 자리를 마련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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