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323일 화요일,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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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닷새, 청소할 시간이 없었다. 아침기도를 하고 식사를 끝내면 밭으로 나가야 했다. 온 몸은 흙으로 범벅이고 집안에 들어왔다 나가면 어느새 의자나 바닥엔 흙이 버석거린다. 심지어 샤워를 하고 잠자리에 들었는데도 이불 속에 버티고 있는 모래알은 누구를 따라 들어온 건가?


임실댁 마루에 먼지가 뿌옇고, 심지어 허벅지까지 오는 긴장화를 벗기가 번거롭다며 그냥 신고 들어왔다 나간 방이건 부엌이건 흙발자국이 선명했다. 내가 흉보는 눈짓이면 “사모님도 살아봐, 나처럼 될 것잉게.” 하더니 정말 그미 말대로 됐다


그래서 어제는 하루 종일 청소를 했고, 오늘은 시트와 침대 커버 등 빨 수 있는 건 다 빨았다. 눈부신 햇살에 마른 호청으로 다시 침대를 하고 나니 잠자리가 그토록 뽀송뽀송하고 상쾌하다. 늘그막 부부가 함께 하는 시팅도 늘 기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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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며칠 밭일을 하고서 온몸이 쑤신다니까 아래층 진이엄마가 하는 말. “이삼일 하면 아픈데 한 일주일 매일 하면 몸이 일에 적응해서 견딜만 해요.” 그 말을 들었는지 보스코가 토요일에 비가 온다니 목요일 쯤 배나무 밑 신선초를 마저 뽑아 남호리에 더 갖다 심잔다. 포클래인으로 갈아엎어 올 가을까지는 풀이 덜 날 테니까 잘 번지는 신선초가 먼저 산비탈에 기세를 잡게 하여 예초기 돌리는 수고를 줄여보자는 속셈이다. 거기 심은 나무마다 부직포를 덮어서 풀과의 전쟁에서 승기를 잡게 해 줄 계획도 서 있다


휴천재 과일나무(, , 자두 그리고 새로 심은 체리까지)가 둥치부터 타고 오르는 병충해를 피하려면 친환경 유황 제재를 꽃이 피기 전에, 3월 초에 줘야 했는데 20일이 넘도록 못 주고 있었다. 요즘도 아침 일찍 바람이 너무 불고, 보스코는 차일피일하더니 어제는 그가 나섰다그런데 약 뿌리는 분무대가 망가져 있었다, 작년에 샀는데! 이웃나라 중국은 재빠르게 뭐든 값싸게 잘 만드는데 그 부실함에는 속이 터진다. 오늘 새벽에 약을 쳐야 하니 엊저녁에 얼른 유림에 가서 15,000원이나 주고 사왔다


꽃샘 추위인지 바람이 차고 지리산 상봉이 눈으로 하얗게 덮혔는데 그 덕인지 아직 배꽃과 자두꽃이 개화를 안 해서 오늘 아침 바람이 잔 틈에 보스코가 올해 첫 번으로 항균재 약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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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중국 없이는 못 사는 이 숙명. 요즘 재배해서 파는 표고가 유난히 맛과 향이 없어 알아보니 재배방식이 달라졌단다. 예전엔 참나무에 구멍을 파서 종균을 심었는데 요새는 중국에서 들여오는, 아예 톱밥을 뭉쳐 나무 모양을 만든 통나무에 구멍을 파서 종균을 심어 키운단다. 그러니 참나무에서 자라는 버섯이라 할 수 없다


블루베리 밭에 풀나지 말라고 진이네가 그 인공폐목을 사다가 고랑에 깨뜨려 깔았는데 그 인공페목에서 엊그제 비에 버섯이 돋았더라며 갖다 주었다. 오늘 미역국을 끓여보니 역시 제 맛이 안 난다.


어느 핸가 칠선계곡으로 등산을 하다 보니 쓰러진 참나무 등걸 습한 쪽에 천연 표고버섯이 수북히 자라 올라 있었다. 얼씨구나 배낭에 따서 젊어지고 가는데 등 뒤에서 나 여기 있어요!’라며 줄기차게 향내를 풍겼다. 더는 못 참겠어서 걸음을 멈추고 함께 가던 일행과 날것으로 나눠 먹었다. 그 향과 그 맛은 깊은 산만이 주는 신비였다


갑자기 산에 가고 싶다. 산속에 살며 바라보는 산과 걸으며 느끼는 산은 전혀 다른 얼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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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후에는 양파밭 풀을 매고 있으려니 드물댁이 올라와 일손을 거든다. 나는 비닐 밑을 더듬어 그 속에 자라는 풀마저 뽑는데 그미는 해를 못 보게 흙으로 풀을 덮고만다. 훨씬 쉬운 방법이긴 하지만 흙이 흘러내리면 다시 덮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지적하니까 다들 요로콤 해서 양파 농사 해 먹고 산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시골할매들이 한번 주장을 세우면 도시것들은 암껏도 모르면서...’라는 처지가 되어 조용히 입 다문다.


해가 지고 바람이 싸늘해 허리를 펴고 일어서는데 드물댁의 인사말. “어제 볶음밥 잘 먹었소, 탕수육도! 내가 질로 마이 묵었고마. 아마 그걸 먹어본 지 몇년은 더 됐제. 내가 동네아짐들한테 자랑했고마. 모다 불거워 하데.” 다음에는 여럿을 모셔 가던지, 배달을 안 해주니까, 내 차로 배달을 해 와서 짜장면과 탕수육 대접을 해야겠다. 마천에 있는 중국집까지는 차로 10분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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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팬데믹 세상에도 건강하고 따뜻한 의사 김동은의 당신은 나의 백신입니다를 다시 읽으며 우리 주변에도 이런 분들이 계셔서 은근히 자랑을 하고 싶은데 참는다. 밭일 때문인지 아침저녁 티벳 요가 후에는 보스코가 내 등허리를 밟아줘야 한다. 임실 김원장님의 요법인데 남편의 서비스도 받을 겸 효과가 참 좋다. 10분 알람을 켜놓고 시술한다. 누군가 아들더러 종아리 좀 주물러 달랬더니만 1분을 못 넘기고 엄마, 됐지?” “엄마 이젠 됐지?”하더라나? 역시 늙으면 부부밖에 없다는 말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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