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410일 일요일.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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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이웃 사는 친구들이 점심에 왔다. 얼마 전 보스코가 조개 스파게티를 먹고 싶다는 말을 한 터라서 동네 시장에 나가 입을 딱딱 벌리고 물을 뿜어내는 싱싱한 바지락을 샀다. 함양 장날에도 요즘 인건비 비싸 바지락 캐는 일손이 없어요.”라며 조개를 살 수 없었는데, 역시 서울엔 없는 게 없다. 스파게티만 먹자마자 보스코는 이를 치료하러 서울대입구역근방에 있는 우정치과로 떠났다.


전철을 두 번이나 갈아타고 두 시간 가까이 걸려 봉천동까지 혼자 가서 며칠 전 뺀 앞니 두 개의 자리를 치료 받고 앞자리 이빨에 보충해서 끼워 넣을 새 이를 준비하고 왔다. 의사가 간호사를 데리고 무려 한 시간 반을 땀 흘려 일하더라며 그 많은 치료비에 그만한 까닭이 있구나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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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에 와서 점심을 한 박스텔라씨는 매일 만보 이상을 걷는 사람이어서 천주의 모친블란디나씨(그미의 아들 이름이 천주天柱)와 엮어 주면 가까운 이웃이 되고 함께 산행을 다니면 좋을 듯하다는 생각이 들어 그미도 점심에 불렀다. 그미의 외아들이자 소울메이트인 천주가 이번 봄에 군대엘 가면서 갑자기 그미의 삶에 커다란 공백이 생겼다는 호소.

세 여자가 점심을 마치고 스텔라는 친구들을 만나 우이천 따라 우이동 계곡으로 올라갔고, 나와 블란디나는 창동 쪽으로 계천 따라 내려갔다. 쌍문초등학교 앞에서  그미네 아파트 쪽 꽃동네 길을 잡고서 쌍문근린공원으로 올라가는 산행을 하였다. 산꼭대기에서 그미는 세심천쪽으로 내려가 집으로 가고, 나는 차미리사 묘가 내려다 보이는 방면으로 산을 내려왔다.


그런데 우리 집 바로 위편 가파른 비탈에서 그만 미끄러지는 바람에 엉겁결에 손으로 땅을 짚었다 싶었는데 그 순간 내 손목에 심한 통증이 오고 즉각 손등이 부어오르기 시작했다. ‘문제가 생겼구나싶어 솔밭 옆 서울봄연합의원으로 차를 운전해 갔더니 모두 퇴근한 뒤였고, 손목 골절이 틀림없으니 한일병원 응급실로 가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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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병원에서 여러 장 엑스레이를 찍고는 손목에 금이 갔다며 손과 팔에 슈가텅스프린트라는 깁스로 거창하게 완전무장을 시키고서는 월요일에 정형외과에 내방와서 통깁스를 하라는 진찰이 나왔다. 시골에서라면 나무 한 조각 밑에 대고 광목 쪼가리로 둘둘 말았다 한 열흘 지나 풀어놓으면 될 일 같은데, 젊은 인턴들이 너무 과하게 반응한다 싶었다.


깁스 한 석고가 마르며 팔꿈치를 조여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해서 토요일 아침에 광산사거리에 있는 박순용정형외과에 갔다. 내 가운데 손가락 방아쇠증후군’을 수술해 완치시킨 곳이기도 하다. 사람들이 별것 아닌 일로 무조건 3차 진료기관에 몰려드는 바람에 정작 힘든 치료를 요하는 사람들에게 까지 지장을 주는 게 싫었다. 나는 친절한 이웃 아저씨처럼 나의 사생활이나 가족사까지 아는 의사의 진료를 선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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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장 박선생은 오랜만에 만난다고 나를 반기며 X레이 사진을 보고 내 팔에 거추장스럽게 싸맨 슈가텅을 뜯어내고 간단한 헝겊 부목으로 손목 뼈를 고정시켰다. “한 일주일 이 부목을 대고 있다 다음 주 토요일에 X레이를 찍어 봅시다. 뼈가 고정됐으면 담 주 월요일 쯤은 지리산으로 운전해 내려가도 됩니다.” 큰 병원에서 과하게 치료하는 것에 비해 너무 실리적이어서 고맙고, 석고 깁스를 떼어내니 손목을 움직일 수 있어 살 것 같고, 비용도 30%밖에 안 들어 기분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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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코도 그 시각에 창동 우리 주치의 곽선생에게 가서 오른쪽 치아 전체의 잇몸 치료를 받고 돌아왔다. 내 팔 탓이기도 하지만 그가 그제 어제 두 번이나 보호자 없이 혼자서 병원을 다녀왔으니 대단한 자립이다.

토요일 저녁에 봄꽃놀이 트래픽에 밀리고 밀리며 이엘리가 인천에서 우이동까지 병문안을 왔다. 엊그제 다녀간 큰딸이 달려와 나더러 손을 다쳤으니 부엌일을 하지 말라며 4.19 탑으로 데리고 나가 저녁까지 대접해주고... 환자 치고는 너무 성성해서 내가 딸들에게 대단한 민폐를 끼치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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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주일은 주님 수난 성지주일’. 오랜만에 우이성당엘 갔다. 40년 넘게  변함없는 교우들 얼굴이 반겨주는 우이동 같은 동네는 서울에서 몇 안 될 게다. 어쩌다 이번에는 내 본당에서 성주간을 맞게 되었다


보스코의 주일복음 단상 5: http://donbosco.pe.kr/xe1/?document_srl=7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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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무렵 한목사 부부가  우리 집에 잠깐 들렀다. 지난 목요일 수술을 받고 퇴원하여 귀가하던 길이었다. 미처 회복이 안 되어 검불처럼 가벼워져 비틀거리는 친구를  그냥 보내려니 마음이 안 좋았다. '친구는 또 다른 나(amicus alter ego)'라는데 그 분신들이 나이 들어 노약해지는 모습은 보스코도 나도 어쩔 수 없이 받아 들여야 하는 '우리의' 마지막 걸음이기도 하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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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에 사는 이주여성인권센터 팀이 오늘 우리 집에서 단합 대회 점심을 했다. 여성 단체에서의 일이라는 게 박봉에 일은 많고 힘들기만 해서 서로 의지하고 격려하며 보듬어 풀어나가야 겨우 견딜 만하다. 그런 모습이 선배 이사인 나로서는 보기에 좋고 고맙고 한편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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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시쯤 우리 꼬맹이 엄엘리가 성남에서 병문안을 왔다. 날씨는 좋고 꽃은 만발하고 오랜만에 만났기에 할 얘기도 많아 우이천로 벚꽃 길과 강변을 걸으며 원앙과 청동 오리를 구경하고 사람들이 방사한 비단잉어도 보았다. 돌아오는 길에 벚꽃이 궁전처럼 찬란한 터널을 지나면서 살아 있음이 왜 축복인가를 저절로 터득하게 만드는 봄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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