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224일 목요일. 맑음


겨울 가뭄이 심하고 바람이 거세지며 주변 산에 산불이 빈번히 일어난다. 어제는 산내에서 인월가는 길목의 백장암사하촌(寺下村)에서 쓰레기 태우다 날라온 불씨가 23일간 숲을 태우고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된 암자 백장암 못 미쳐 겨우 불길을 잡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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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바로 위 도정에서도 어느 할머니가 쓰레기 태운 재를 울밖에 버렸는데, 불씨가 되어 산으로 타고 올라가는 것을 '산불조심 아저씨'가 초기에 발견하여 큰 피해를 막았단다. 까딱했으면 삼봉산과 법화산이 하루아침에 꾀를 벗을 뻔했다.


며칠 전 아주 오랜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다른 친구의 전화번호를 물었다. 보스코의 친구가 건강 문제로 거의 폐인이 되어 온 가족으로부터 버림받았을 적부터 곁에 남아 충실히 돌보고 있을, 착하디 착한 어느 여인의 소식이 궁금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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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인의 전번을 모른다는 대답에 이어, 친구는 자기네가 그 한쌍을 그토록 많이 도왔는데도 도무지 은혜를 모르더라는 아쉬움에서 시작하여 자기네와 가까웠던 사람들에게 서운함을 쏟아냈다남편 의사의 관후한 품성으로 여러 지인을 돕던 일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들에게 쏟아온 호의가 어느 새 인간관계 전반을 돈으로 재는 하소연으로 바뀐 듯해 까닭을 몰라 듣는 사람의 마음도 처연하였다.


이어서 현정권에 대한 분노와 이재명 후보에 대한 욕설이 폭포수로 쏟아졌다잠실에 20억을 호가하는 아파트와 서울 근교에 수억 하는 주택 두 채밖에 없는 자기네한테 종합부동산세를 무려 2300만원이나 매긴 정부의 주택정책에 대한 비판이었다. (우리도 서울 쌍문동에 집이 있고 지리산에 지금 사는 농가주택이 있지만 둘 다 합쳐야 재산세 100만원이 채 안되는데 어떻게 저런 세금이 나왔을까?) 그미의 요지는 "쫌 살만하니까 세금으로 다 뜯어간다!"는, 요즘 살만하다는 사람들이 쏟아내는 전형적인 정치 비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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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집에서 조선일보를 구독하는 사실을 어떤 수녀가 지적질하더라면서 그래도 전두환이 경제 하나는 잘했다구요. 신부나 수녀들이 부자들이 내는 돈으로들 먹고 살면서 고마워 할 줄 모르고 좌파 같은 언행이나 한다구요.”라는 비난으로 이어지고, 사제단에 대한 극도의 증오를 다시 토로하다 "그래도 이만큼 사니까 교무금이라도 내지내가 못살게 되면 제일 먼저 교무금부터 끊겠어요!" 라는 말로 그미는 통화를 매듭지었다.


정치적인 편견이 사람을 얼마나 눈 멀게 하는지, 중상류만 넘어서면 '하느님과 돈을 함께 섬기는' 신앙생활로 옮겨가고, 가짜뉴스에 설득당한 정치적 증오를 쉴 새 없이 퍼 나르는 부마(付魔) 현상이 얼마나 쉽사리 사람을 병들게 하는지 실감하면서 눈앞이 아득했다. 친구 목록에서 그미를 지우면서 하느님께 무한한 자비가 당신께는 있으시니 하느님, 알아서 하세요.”라는 기도를 올려야 했다. 


이번 대선을 두고 실감하는 '정치적 패갈림'을 여러 지인에게서 문자와 전화 그리고 대면으로 듣고 보면서 "정치적 사랑이 인간의 개인적 집단적 구원을 판가름한다"는 아우구스티누스(1500년전의 인물)의 선견을 새삼 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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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적으로 아주 가까운 도정 친구가 오미크론에 걸려 자가격리 중이고, 우리 네 딸 중 둘이나 걸렸으니 50% 확률!  하나는 음압병동 입원까지 했다니 코로나의 마수가 내게도 저벅저벅 다가오는 기분이다.  우리 네 딸들과 한목사랑 밤 아홉 시에 둘째의 회복을 위해 '9일기도'를 바치기로 하고 오늘 저녁부터 시작했다. 우리 대모 수녀님에게도, 우리 아들 신부님에게도 그미를 위한 기도를 부탁했다.


윗동네에 요즘 혼자 지내는 친구에게 반찬을 해다 주고 내려오다 오랜만에 태우할머니에게 들렀다. 많이 쇠약해 계셨다. "그렇지 않아도 교숫댁한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서."라는 서두를 꺼내며  (천기를 누설해서는 안 된다는 듯) 내게 바싹 다가 앉으면서 내 귀에 대고 속닥속닥 들려주신 얘기인 즉 90대 할머니의 '시국 걱정'이었다, 세상에!


당신이 한때 '지리산에서 50년' 도를 닦은 도인을 따라 다녔단다(할머니도 신 내림을 받아 정월이면 시골과 섬을 다니며 일년 운수를 봐 주셨고 지금도 집 한 켠에는 신당이 차려져 있다). 요즘 뒤숭숭한 시국(시골 노인들은 하루 종일 TV를 켜놓고 산다)을 보면서 그 도인이 당신한테 내리신 비서(祕書)가 기억났던가 보다. 나에게 대충 엮어내시는  '도사님 말씀'을 랩풍으로 풀어내시는 가락에는 운율까지 섞여 있었다! 하필 오늘 터진 우크라이나 사태가 도사님 말씀을 3차대전 예언처럼 오싹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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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말년, 세상이 망할 때쯤엔

집위에 집을 짓고 기둥없는 집을 짓다 사람이 죽고

뒷축없는 신을신고 머리풀어 산발하고

성냥없이 불을켜고, 연기없이 밥해먹고

남녀가 구별없이 '백여시 아잡아먹듯입술에 구찌베니를 바를텐데

런세상 도래하면 까닭모를 병마가 천하를 휩쓸 터인데

병마도 눈이있고 병마도 귀가있어 사람을 솎아가기는 하는데

살아남는 숫자야 '쌀속에 뉘만큼' 아주아주 쪼금이라~~~"


아직도 바람 끝이 매섭지만 보스코가 요즘 워낙 안 걸어 점심 후 기어이 산봇길에 끌고 나갔다. 송전 쪽으로는 하도 바람이 드세 운서 쪽으로 거닐며 로사리오를 바치면서 둘째딸 '오드리'를 위해, 대선정국에서 까닭 모를 증오에 집단으로 부마한 사람들을 위해, 우크라이나를 위해 기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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