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222일 화요일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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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날자에는 2라는 숫자가 참 많이 보인다. 네플렉스에서 행복한 남자”(A Fortune Man: 행운의 남자)라는 영화를 보았다. 원작은 1917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헨리크 폰토피단의 자전적 소설 리키-패르(Lykke-Per: 1904)”.  시대 배경은 1880년대.


주인공 시데니우스는 루터교 목사의 아들. 목사를 집안 대대 가업으로 이어왔는데 큰아들은 이미 아버지의 뜻을 따르지 않고 코펜하겐에서 서기노릇을 하고 있다. 아버지는 작은아들이 목사가 되기를 원하지만 그는 공학에 뜻을 두고 고급기술대학의 합격증을 받고 도시로 떠난다. 풍력이나 파도를 이용해 전기를 만들어 코펜하겐을 베네치아처럼 바꾸려는 원대한 꿈을 갖고 있는, 타고난 반항아다.


내가 눈여겨봤던 것은 그가 집을 떠나는 장면이다. 아버지는 네가 신학을 공부하면 주려고 모아 놓았던 돈은 한 푼도 줄 수 없다. 완악한 마음을 누그러뜨리고 주님께 저주 받는 자로 끝나지 않게 조심해라.” 아버지가 준 회중시계를 거절한 아들에게  목사인 아버지로서는 결코 해서는 안될 말, “주님을 거역하면 추방될 것이다!”라고 소리친다. 아들은 그 저주에 아멘!”이라는 대답을 남기고 떠나는데 과연 그에게 새겨진 아버지의 저주는 평생 그를 따라다니며 그를 파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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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한신을 다닐 적에 친구가 하나 있었다. 목사 아들로 신학을 하겠다고 학교엘 왔는데 모든 점에서 삐딱하여 상대하기가 참 힘들었다. 그래도 착하고 아름다운 동급생을 만나 무난히 학교는 졸업했다. 그러나 내가 결혼하고 정신없는 몇년을 지나고 나서 내게 들려 온 소식은 그녀와 헤어지고 지방에서 학교 선생을 하다가 어느 날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는 슬픈 이야기.


저 영화의 주인공이 아름다운 알프스에서 사랑하는 여인과의 정사 후 뒤쪽에 서서 두 사람을 내려다보던 예수님상을 돌을 들어 부숴버리는 장면에서 내 친구 생각이 불현듯 났다. 우리가 주님이라고 부르는 분을 돌로 부숴버리고 싶도록 신앙생활에서 축복 아닌 저주를 체감하고 상처 입은 사람들을 주변에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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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신학자협의회에서 목사 사모(師母)들을 위한 심리치료프로그램 강의를 한 일이 있다. 그 강의를 들으러 오지 않은 사람들은 과연  모두 상처 없이  살았을까는 지금도 모르겠다. 상담치료를 받아야 할 지경까지 온 그 여인들은 목사 부인이어서 병들었을까? 이미 병 들어 있었던걸까?


그미들은 깊은 내상을 입어 괴로워했고 제일 큰 가해자는 역시 목사(아내에게서도 하나님의 종이라고 받들어진다)라는 남편이었다. 또 교회에 열심하고 교회와 목사를 위한다는 사람들 대부분이 가해자였다. 병든 영혼을 구한다며 목회자가 되고 나서 제일 가까운 아내와 자식들을 회복 못할 수렁으로 몰아넣는 사람들 탓으로 정작 그리스도가 사람들 맘에서 돌팔매로 부숴지지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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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동네 친구의 엄마가 많이 아프시다는 진단을 받으셨단다. 삼개월 시한부. 그런데 소식을 전해 들은 엄마가 , 난 얼마나 축복받은 사람이냐? 석 달만 견디면 나 고생 않고 너 고생 안 시키고 떠날 수 있다니?”라고 답하시더란다. 지금껏 건강히 당신 앞가림을 하시며 혼자 사셨고, 늘 책을 읽고 성경 필사를 하시면서 미사참례로 낙을 삼으시던 한 여교우의 삶은 고운 저녁 노을처럼 아름답다.


봄이 오는지 요즘은 날씨가 차갑다. 밤새 바람은 갈 길을 잃고 골짜기를 헤맨다. 아침이 되어서도 분이 덜 풀렸는지 휴천재 뒤꼍의 3층 처마 끝에 풍경이 소란하다. 2월이 끝나가는데, 텃밭 배밭과 체리 나무에 거름을 줘야 하는데 우리집 농부 한 쌍은 서로만 쳐다보다 어제 보스코가 텃밭에 골고루 퇴비 부대를 날라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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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보스코가 괭이와 쇠스랑을 들고 배밭으로 내려간다. 나도 장화에 오리궁둥이, 앞치마와 토시를 끼고 바람에 머리가 시리면 감기가 더할까 봐 털모자도 썼다. 배나무(보스코 담당)와 체리나무 다섯 그루(내 담당)에 봄 거름을 주었다. 시작이 반이라고 세 시간만에 일을 끝나고 비워진 퇴비 부대를 꼭꼭 묶어 놓고 일어서는 허리가 가볍다.


도정 스.선생댁에서 쓰던 식탁이 (십자가 달릴 적 예수님 옷처럼) 제비 뽑히고 나뉘어 우리 집으로는 의자들이, 봉재언니네로는 식탁이 갔다. 미루네 이사야와 안셀모 김이사가 힘을 써서 식탁을 산청으로 옮겨드렸다. 요긴히 쓰이겠지만 식탁과 의자 이 둘은 다시는 만나지 못하리라. 요즘 사람들처럼 쿨하게 헤어졌다. 인생에서도 긴 동반의 끝은 의외로 간단하다. 마음이 헛헛하다.


산청 가림정으로 이사가는 식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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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로 이사 온 식탁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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