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215일 화요일. , 무늬만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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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피자판 만드는 '도우'를 미느라 창밖을 내다볼 정신도 없었다. 한쪽을 밀고 손을 돌려 다른 쪽으로 미느라면 먼저 밀었던 쪽이 바짝 쪼그라든다. 그래서 피자집 요리사는 밀지 않고 양손으로 돌려가며 반죽을 허공에서 늘린다. 나도 가끔 그렇게 돌리기도 하는데 우리집 피자 팬이 모두 네모라서 양손으로 늘린 동그란 '도우'를 다시 사방으로 밀어당겨야 한다.

손에 밀가루를 잔뜩 묻히고 있을 때, 하필 그럴 때 주로 전화가 울린다. 이 상황에 전화를 받아야 하나 망설이곤 하는데, 안 받아도 되는 전화가 대부분이다. 벨이 또 울린다. 발신자가 하늘 같은서방님이라 받고 보니, 식당채 창밖에서 드물댁이 오랫동안 내가 일하는 부엌을 들여다보고 있다면서 불러들여 피자 만드는 걸 보여주라는 말씀. 서둘러 나가보니 드물댁은 이미 내려가고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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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사람이 혼자 사는 가구가 대부분이라 이 동네에선 세 끼니 다 밥을 하지도 않으려니와 ("열무김치 담글 때면 임 생각이 절로 난다"던 노랫말이 서러워서도) 나 먹자고 무슨 반찬을 마련하지도 않는 것이 아낙들의 삶이어선지, 다른 아낙이 부엌에서 음식 장만 하는 광경마저 '재미진' 구경거리가 되나 보다. 


요즘 청년들의 도시생활을 '원룸에서의 혼밥'으로 묘사하곤 하는데 이 시골 마을에선 남편 살아있는 몇 집 빼고 거의, 아니 모든 아낙이 '혼잠'에 '혼밥'으로 살아진다. 새댁으로 시집와서 자던 '꽃잠'이라든가  끼니 때면 시부모 밥상, 서방님과 시동생들 밥상, 젖먹이를 끼고 시누이들과 함께 먹던 밥상을 따로따로 차리던 큰방은 기억에 가물가물 너무도 까마득한 세월이려니...


더구나 드물댁은 눈치료 이치료 땜에 딸들 사는 대구를 다녀온 탓으로 요즘 마을 사람들 모인 자리에 출입금지 경고를 받는 중이니 가뜩이나 사람 구경하기 힘든 동네 고샅길이 더 허전해서 사람 구경이라도 나왔을 게다.


대구 사는 보스코의 제자가 담 주 화요일 세 아이를 데리고 인사차 다니러 오겠다는 연락을 해 왔다. 아침마다 이장이 마을 방송으로 외지사람 방문을 자제해 달라!’, ‘자손들의 방문도 특별한 일 없으면 미루라!’고 경고해온 터라 섣불리 어서 오라는 말을 할 수가 없어 마음이 언짢다. 내가 서울을 다녀와도 골목에서 나를 만나는 사람이 가까이 오지를 않고 한참 떨어져서 말을 받는다. 세상인심이 어쩌다 이리 됐는지... 눈에 보이지도 않는 하찮은 바이러스에 만물의 영장이란 인간이 전 지구상에서 요렇게 어처구니 없이 무너지다니 우리가 정말 별것 아니었구나!’ 겸허해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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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코가 요즘도 오후 네시경 커피 한 잔에 케이크 한 쪽을 간식으로 드는데 커피가 문제인지 밤11시경 잠들었다 새벽 한두 시 쯤 잠을 깨나보다. 살짝 일어나 침실을 나가서 이불 펴 놓은 긴방으로 가서 이불 속에 발을 넣고 책을 읽거나, 서재로 가서 책상에 앉아 작업을 하곤 하므로 내 잠마저 끌고 나가버린다


여자는 일짜감치 어미가 되면서부터 잠자리에서도 주변에 일어나는 모든 일을 경계하면서 살잠을 자는 운명이어선지 갓난아기가 칭얼거리거나 남편이 몸을 뒤척여도 잠을 깬다. 암컷이 맹수들한테서 가족의 생명을 지켜야 하던 원시시대부터의 유전자 때문일까?


보스코의 몽유병자 같은 야밤 행동 때문에 나 역시 한 시간이나 제대로 잤나?’할 정도가 며칠 째 이어지니 오늘은 머리가 멍해 정신이 맑지 않다. “오늘부터 당신 커피 금지!”라는 경고를 내리자 나도 모르는 새 마셨노라는 대꾸. ‘순진한 건지 정직한 건지 잔소리 들을 걸 뻔히 알면서도 자진신고는 왜 한담?’ 둘이 살면서 인생이 무료할까 갖가지 작은 사건을 만들어내는 게 기막히기도 하고 희한하기도 하여 함께 50년을 살고도 남자는 여전히 연구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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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루가 자기 주변의 노인들, 곧 우리 부부, 임신부님 오누이, 남해 형부네를 '은빛나래단'으로 묶어 여섯 명의 삶에 보조날개가 되어 보살피느라 특히 요즘 고생이 많다. 오늘이 정월대보름이라고 우리 부부를 챙기겠다고 동의보감촌에서 저녁이나 함께 먹잔다.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냥 비빔밥 한 그릇씩 사 먹자.’ 한다. 이만 때쯤 동네마다 달맞이 달집태우기 등의 놀이로 동네가 소란했는데, 코로나에 기습당하고 나서 올해 이 근방에서는 축제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우리 엄마는 환갑이 지나고 둘째 며느리를 보자 나는 오늘부터 부엌에 안 들어가겠다.”고 선언을 하셨다. 그런데 나는 칠순이 지난 지 몇 해지만 아직도 현역으로 부엌에 들어갈 권리와 의무를 놓치기 싫다. 자기가 경영하는 회사(효소절식 팔보식품’) 일로 바쁘면서도 이웃의 봉재 언니까지 챙기느라 수고하는 미루를 부부로 불러 내가 서둘러 마련한 대보름 밥상을 차려 먹여 보내니 기분이 흐뭇하다. 아마 80까지는 내가 부엌살림을 너끈히 해낼 것 같다.


미루네가 떠나는 길, 휴천재 마당에 나가서 하늘을 함께 올려다보았다. 대보름 온달이 싸늘한 날씨에, 오늘 하루 종일 눈발을 날리며 소란스럽게 불어댄 찬 바람이 먼지와 구름을 날려버려, 깨끗하고 날렵한 모습으로 지리산 능선 위를 신나게 내닫는 중이었다.


산내에서는 달집을 태웠는지 사진작가 조하성봉이 멋진 대보름사진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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