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26일 일요일. 맑음


안 입는 옷과 떨어진 옷을 골라 과감히 태워버렸다. 그동안 내 몸을 감싸주고 함께 뒹군 동지라 생각하면 참 힘든 일이다. 나는 새것에는 별 관심이 없지만 내것에 대한 애착이 큰 편이어서 오늘 옷을 태우기 전에도 런닝셔츠는 마지막으로 현관 청소를 하는 걸레로 쓰고나서 태웠다. 그러면 나와 영이별하는 옷에 좀 덜 미안한 생각이 든다.


이탈리아 유학 시절 먹고살기도 빡빡했던 생활에 언감생심 명품 옷은 로마의 그 흔한 진열장에서 구경만 했다. 우리와 생활 형편이 고만고만했던 내 칭고리따를 만나는 토요일 오후면 빵기와 빵고 그집 아들 빠올로 셋은 집에서 놀라 하고 두 여자는 삐아짜 만치니로 아이쇼핑을 나갔다. '오늘은 한 삼백만원 어치는 샀네.‘ ’난 한 오백만원,' 우리는 눈으로만 보고 본 거만큼 가상화폐로 계산하고서도 뿌듯하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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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 공도에 살았던 중학교 2학년 때. 엄마에게 새옷을 사달라고 졸랐더니 이 기집애가 생전 안하던 짓을 하네, 무슨 돈이 있다고?” 라며 호되게 나무라셨다. 아마 서울 이모집에 갔다가 사촌들의 화려한 옷맵시에 그동안 아무렇던 내 차림이 부끄러웠는지, 옷에 대한 관심이 생길 사춘기였는지는 기억 안 난다. 엄마 꾸중에 부아가 나서 그때 난생 처음으로 '알바'를 했다.


안성.공도.안중.성환 쪽은 배과수원이 많았고 내 친구네도 배과수원을 했다. 배꽃이 지고 배봉지 싸는 시기면 늘 일손이 부족했다. 나는 친구네 과수원에 가서 며칠 배봉지를 싸주고 일당을 받았다. 그렇게 내 손으로 번 돈과 그동안 모아둔 비상금을 털어 엄마가 못 해주는 옷을 번듯이 내 돈으로 해 입기로 작정하고 면소재지에서도 제일 그럴듯한 마네킹을 세워 둔 양장점을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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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바탕에 꽃무늬와 꽃바구니 모자, 양산이 자잘하게 그려진 목공단은 고급스럽고도 근사해 보였다. 양장점 주인이 엄마와 같은 교회 집사님이셨고 내가 배봉지를 싸서 번 돈으로 맞춘다는 소리를 듣고 기특하다며 싸게 맞추어주셨다


디자인은 내가 했다. 여학생이란 잡지에서 본, 서울애들 옷처럼 몸에 꼭 끼고 제법 볼륨있는(2가 무슨 볼륨?) 모양으로 주문했다. 팔이 없고 어깨 위로 토끼 귀가 팔랑이게 했다. 가봉하는 날 몸에 더 끼게 해달라는 부탁도 했다.


꿈에 그리던 옷을 찾던 토요일 오후.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나는 불편할 만치 몸에 꼭 끼는 옷을 차려 입고 스튜어디스언니처럼 가슴을 내밀고서 양장점을 걸어 나왔다. 오가는 행인 모두가 내 옷과 차림을 경탄의 눈으로 쳐다보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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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아뿔싸! 양장점으로 들어가는 비스듬한 입구에 비에 젖은 이끼가 있어 그만 미끄러지며 엉덩방아를 찧고 새옷은 뒷자락이 쭈욱 찢어졌다! 더구나 양정점 맞은 편에는 우리반 반장(남자애)이 누나 약국에 왔다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니! 사내애들 우습게 보는 부반장 전순란이 양장점에서 나오다니! 걔가 내 엉덩방아를 진짜 보았는지, 내꼴을 보고서 박장대소했는지, 우리 반에 소문이 쫘악 났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양장점 집사님이 옷을 정성껏 수리해준 뒤에도 그 옷을 다시는 입지 않았다. 그리고 그날로 내 처녀시절 옷에 대한 흥미는 싸악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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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2월 첫주일. 임신부님이 문정공소에 미사 오시는 날. 남해 형부, 임신부님, 임신부님의 누나 봉재언니 세 분의 생일과 보스코의 영명축일까지 함께 축하하기로 한 날이어서 형부도 새벽 5시에 일어나 남해에서 달려온 길이었다. 아침미사 후 휴천재 식당에서 은빛나래단이 조찬을 가졌다. 미루는 가져온 케이크에 88 숫자를 밝혔다. 나이 들수록 더 팔팔하게사시라는 축원의 촛불이 네 사람의 날숨으로 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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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는 여전히 말씀이 없었고, 형부는 우리 모두를 대표해서 열심히 재미난 얘기를 풀어내면서 당신이 말이 많다고 아내에게 딸들에게 구박받는다면서도 그 딸들에게 받는 효도비로 억울함이 싹 가신다는 딸자랑도 곁들였다. "아들만 있는 누구(나도 미루도 아들만 둘) 염장 지르시느냐?"고 미루가 면박도 했지만 나이 들어 배 아프지 않고 생긴 딸들 넷에게서 극진한 사랑을 누리는 나로서는 입을 꾹 다물고서 '아들 딸 한 개도 없는'(경상도에서는 사람도 자녀는 갯수로 센다) 이들의 사정도 떠올라 임신부님이나 신부님 누나의 눈치를 살폈다. 그러나 오로지 뜻으로 한 평생 살아오신 두 분은 모든 걸 초월한 듯 오히려 담담하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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