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46일 화요일, 맑음


어제는 엠마우스 소풍날(이탈리아에서는 Pasquetta 라고 부른다). 다른 해 같으면 누구라도 함께 소풍을 갔을 텐데 갈 곳도, 가자 할 사람도 딱히 생각이 안 난다. 이럴 때 제일 만만한 사이가 부부. 보스코도 뭔가 허전했던지 백전 벚꽃이라도 보러 가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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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야 엊그제 비에 꽃이 다 졌지만 백전은 언제나 한 주간 정도 늦으니 '오늘 쯤 만개했으려니' 하는 계산을 하고 집을 나섰다. 주말마다 비가 와서 우리가 남호리에 심은 나무와 신선초는 제법 터를 잡아가지만 꽃나무들에게는 이 비가 미웠을 게다백전 가는 길은 우리 동네보다는 꽃이 좀 더 남아있기는 해도 절반 이상 떨어진 꽃길은 꽃길이길 포기한 꽃길이다. 그곳 사람들 얘기로는, 더운 날씨와 봄비에 한 주간 안으로 피고 지고를 다 해버리더란다. 구경 온 사람들이 모두 허전한 눈길로 달리는 앞차 바퀴가 날리는 꽃잎이나 겨우 바라보는 꽃구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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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읽은 복음은 주님 무덤가에서 벌어진 막달레나 마리아의 주님 포옹! 주님의 부활을 맨 처음 목격하고 전달한 사람이고 초대교회에 가장 숭상받던 사도이건만 죄녀일곱마귀를 쫓아내주신 여자니 하며 남자들 교회에 먹칠당하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겨우 사도들의 사도’(Apostolorum Apostola)라는 본딧 자리를 되찾아주신 여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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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 나는 순을 먹는다는 건 하늘로 차고 오르는 커다란 장대 하나를 내 몸속에 쟁이는 일. 서울에서는 두릅 정도가 봄순이라고 생각했는데 이곳 산속에 살다 보니 봄에 나는 새싹은 못 먹는 게 없다. 엄나무, 오가피, 가죽나무, 옻나무... 땅 속, 땅 위, 나무 위까지 사람들 눈에 띄면 남아 나는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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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릅도 단비에 쑥쑥 순을 올렸기에 시장의 예쁜 언니가 내 부탁대로 구해 놓았다 해서 백전 가는 길에 읍내장에 들렀다. 통통 살이 붙은 아가 손같이 고물거리는 모습은 봄처녀 옆구리라도 간지럼 먹이다 온 듯하다그런데 내가 먹어본 봄나물 중에 제일 고소하고 만난 건 단연 옻순! 다만 옻 타는 사람은 쳐다봐도 안 된다. 나처럼 시골에서 다섯 남매가 생존투쟁을 하며 뭐라도 먹고 살아남은 전력이 있는 사람은 옻에도 '일 없습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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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백전에서 돌아온 길로 나는 엄나무 순을 따준다는 봉재언니네로 갔다. 동생 임신부님이 엄나무 가시와 무려 세 시간을 씨름하여 잘라 놓은 가지에서 언니가 순을 따는데 그것도 한나절이 걸린다. 굵은 순 뿐만 아니라, 나 같으면 버리고 말았을, 몸통에 붙은 어린 잎까지 언니는 가톨릭 농민회회장님답게 한 잎이라도 귀하게 여기는 모습에서 언니의 생명 사랑을 배운다


돌아와 우리 텃밭에서 쪽파를 뽑고 그 자리에 상추와 모듬 채소, 쑥갓을 심었다. 흩뿌려만 놓으면 하늘 농부께서 키워 주시니 씨앗이라도 뿌리는 게 내 몫이려니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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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산 동쪽 끝으로 아침 해가 떠오르는 걸 보니 날이 많이 길어졌다. 머위를 좀 뜯어야겠다고 드물댁에게 어디가 좋으냐 물으니 "새끼들 준다고 사람들이 하도 뜯어 싸서 웬만한 데는 엄다!"는 대답. "동호댁네 울타리밖에 많드만. 그거나 뜯을까?" 했더니 "거기는 행여 쳐다보지도 마소. 월암댁이 머우뿌릴 자기가 갖다 심었다며 한번 뜯어갔다 일년 내내 배터지게 욕을 먹었다 아이가?" 그러고 보니 남은 데라곤 동인씨네 정도란다. 드물댁이 턱 하니 뒷짐을 지고 팔자걸음으로 마을 곳곳을 배회하더니만 알고 보니 봄나물 정보수집 행차였나보다.


동인씨는 내 친구 영숙씨 동생으로 착하기 이를 데 없다. 드물댁 얘기로는, 영숙씨 엄니가 드물댁네 사정을 잘 알아서 늘 보살펴주셨고 "그 엄니 아니었으면 우린 굶어 죽었을끼라."고 고마움을 표한다. 예컨데 보리쌀 세 됫박을 퍼주며 '그래도 아들은 쌀을 먹여야 혀!' 하며 아들 몫으로는 늘 쌀을 반 되 더 퍼주시더란다


그렇게 아내가 동냥 해온 보릿쌀을 서방은 아내 몰래 봉다리째 점빵에 들고가서 소주로 바꿔다 퍼먹기 일쑤였단다. 그렇게 '서방이 아니고 웬쑤'였던 남편은 젊어서 술병으로 갔고 그리도 착한 '이웃 엄니' 영숙씨 엄니는 얼마 전 요양원에 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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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물댁이 말은 느려도 동네에서 누가 착하고 누가 사나운가를 훤히 꿰뚫고 있는 걸 보니 사물의 핵심을 들여다보는 지혜가 있다. 과연 착한 집 아이들은 부모 심성을 복으로 받아 착하게 살고, 못된 집 아이들은 부모 성깔을 고스란히 배워 고대로 실천하며 사는 모습이 부모에게는 사실상 가장 큰 보람이거나 제일 무서운 죄값임을 목격한다


'니 주먹에 있는 거 절대 뺏기지 마라!'고 배운 아이는 남이나 형제간은 물론 부모한테까지 충실히 어버이의 가르침을 실천한다는 게 인생의 교훈이더라. 심지어 부모는 자기네 시신이 식기도 전에 유산을 놓고 형제간 사생결판을 벌이는 모습을 지켜봐야 한다. 과연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는 내 아이 살아가는 모습이 고스란히 비춰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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