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44일 일요일 부활주일,


안개비가 하루 종일 내리는 부활절. 사랑의 매에도 멍이 들지만 저리 얌전히 내리는 봄비에도 벚꽃은 져내린다. 꽃잎은 흐르는 빗물을 타고 저 먼 바다까지 가려는지 곱게 차리고 나서건만 잔가지 돌멩이에만 걸려도 길이 막힌다. 우리 젊은 시절 그 많던 꿈들도 그렇게 좌초되고 결국 어디로 가려 했던가 마저 잊히곤 했듯이.... 그리고 잊힌 그 지점에서 우리의 인생을 새로 시작해서 지금에 이르렀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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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진 벚나무들이며 잎이 핀 당산나무들이  발그레 얼굴을 붉힌다. 얼마 후면 연초록으로 변하고 진초록의 여름나무가 되겠지... 나무는 크고 우리는 그 나무 밑에서 그늘을 얻어 잠시 쉬었다 떠나겠지, 이 봄이 가고 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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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목요일 저녁엔 하루 일에 지치고 나를 돕던 보스코가 나보다 더 힘들어해서 TV로 평화방송 미사를 보았고, 성금요일에는 체칠리아네랑 함양본당으로 갔다. 주례 사제를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좋았고 교우들과 함께 십자가 경배 전례를 하고서 영성체를 하는 순간은 눈물겹게 고마웠다. 자색보자기로 가리워진 십자가, 그분이 나눠주고 가신 성체가 다가오는 부활의 감격을 오랫동안 기억하게 하려니.... 어쩌면 코로나로 격리당해 살다보니 새삼 깨달은 신앙의 도움이다


토요일 오후부터 비는 내리고 텃밭의 배꽃, 체리나무 새순이 이슬비를 받아마시는 모습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그 생명들을 어루만지는 손길을 가슴으로 느끼는 건 내가 그것들을 가꾸며 사랑하는 주인이어서다. 오늘 성당에서 돌아오던 길에 남호리에 올라가 신선초와 사다 심은 나무들의 생태를 둘러본 것도 그 까닭이다. 하늘농부께서 제때에 물을 주시면서 잘 가꾸고 계셨다. 


본래 지리산을 사랑하는 이들이 토요일에 정령치에 집결하여 산행을 하기로 했지만 쉬이 지치는 보스코 체력이나 아침 저녁 남편이 허리를 밟아줘야 응신하는 내 체력을 아는 미루가 극구 말려 산행을 포기했다. 장성 선산에서 해마다 거행하는 시제마저 '어르신들은 오지 마세요'라며 코로나를 걱정하는 종친회의 당부로 참석을 포기한지 두해째. 어디서나 늙은이들은 소리소문 조용히 사라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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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호리에 심은 신선초도 나무들도 가랑비에 싱싱한 봄기운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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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기네에 보낼 우엉차를 덖었다. 내가 키우고 다듬어 쪄서 말리고 덖기까지 하니 아들이 이 차를 마시면 어딘가 더 좋아질 듯한 예감이 든다. 부엌 창밖에 하염없이 내리는 비를 내다보며 멍을 때리고 있는데 보스코가 서재로 와서 뭔가 들어 보라고 나를 부른 다. 어느 외장 하드에선가 찾아낸 40여년전 녹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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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살 짜리 빵고가 노래를 부른다! ‘숲속 작은집 창가에...’, 앞집에는 순이 뒷집에는 용팔이...’, ‘나리 나리 개나리...’, ‘떴다 떴다 비행기...’, 그 조그만 머리로 저 가사를 어떻게 다 기억을 했는지 기특하고 예뻐 어쩔 줄 모르는 30대 젊은 엄마의, 꿀이 뚝뚝 떨어지는 내 목소리! '어려서 저렇게 사랑을 받고 저렇게 신뢰 받아야 아이들이 제대로 크는데...' 하느님의 손길인 봄비에 온갖 초목이 자라듯 아이들도 부모의 충분한 사랑만이 제대로 된 하나의 인격체로 바로 서게 한다.


성탄절이나 부활절이면 책바오로수녀원에서 자정미사를 올렸곤 했는데 그때 마다 장궤틀 밑에서 쿨~쿨~ 잘도 자던 아가가 오늘 부활대축일 이 시각에는 어디선가 미사를 집전하고 있겠지 하는 생각에 오로지 주님께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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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성야도 평화방송에서 미사를 보았다’. 저 깜깜한 어둠 속에 한 줄기 빛! 그리스도의 죽음, 세상을 구하러 오셨다는 분마저 저렇게 비참하게 처형당한 최후는 암흑 중의 암흑이다. 끝도 바닥도 안 보이는 인생고의 심연, 특히 죽음이라는 칠흑 같은 어둠을 비추고 땅속에서 터 오르는 빛, '그리스도의 빛!' 그분의 부활은 죽어야 할 모든 인생에 한줄기 빛이었음을 목청 높이 외친다. 성주간은 부모 적부터 믿어온 그리스도 신앙이 내 삶을 비추는 빛임을 새삼 절감하는 한 주간이다. 명동미사는 10시 반에 중계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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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부활대축일 미사는 본당으로 갔다. 함양읍은 그래도 코로나와 좀 거리가 있어 성당에 온 교우들도 제법 많았다. 성가대 노래도 있고, 대축일 미사다워 흐뭇했다. 본당신부님이 대독하신 교구장 담화문은 목자다운 사랑과 자상한 배려가 가득하여 요즘같이 힘든 시기에 큰 위로가 되었다


우리를 위해 길이 돼 주신 주님의 길이 십자가의 길이었다니! 인류에게는 결국 내 어깨에 지워지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짊어지는, 타인들에게서 부당하고 억울하게 지워지는 고통이 내게도 남들에게도 구원의 길, 생명의 길이라니... 코로나든 정치적 피폐든 스러져가는 우리 기력과 고달픔에든 너무 연연하지 말자는 위로의 말씀이었다.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믿는 사람은 영원히 사는 삶'을 믿는 사람들인 까닭이다.


부활대축일 복음 보스코의 그간 댓글

http://donbosco.pe.kr/xe1/?document_srl=7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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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가 끝나고 부활떡과 부활계란을 나누어받는데 함양본당 동정녀로 살아온 분으로 아는 마리아 아줌마가 느닷없이 당신 집으로 우리를 점심 초대했다체칠리아 친정어머니가 와 계셔서 그분과 아주 친한 사이인 마리아 아줌마가 체칠리아 부부와 친정어머니를 초대한 자리였다. 우리야 기꺼이 초대에 응했는데, 체칠리아 모녀는 ‘몸이 아픈 마리아를 고생시킨다고 거절했더니만 내 몸 상태는 내가 더 잘 아는데 어찌 거절을 하냐?’고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울기 직전인 마리아 아줌마의 닦달을 겪어야 했다. 성격이 깔끔하고 남을 너무 배려하는 모습마다 사랑의 표현이 다르구나 싶었다. 


제네바 빵기네랑, 로마의 카르멜라네랑은 영상통화로, 부활카드와 생과자를 보내준 여러 수녀님들이랑은 답장 카드로, 그리고 문자를 보내준 다정한 분들과는 문자로 부활인사를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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