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41일 목요일, 흐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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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파나 마늘은 작년 초겨울에 심어 그 추위를 견디어 냈으니 그 강단만으로도 우리 몸에 이로울 만하다. 12월 말, 더는 씨를 구할 수 없던 철에 인규씨가 쌀포대에 담아 얻어다 준 정성이 고마워 곱은 손으로 땅을 후벼 억지로 묻었다. ‘죽든 살든 네 운명이다!’ 


그런데 생명은 그리도 질기다. 언 땅 위로 뿌리채 올라왔기에 다시 묻어 주길 몇 번, 봄 되고 단비에 뿌리와 몸을 적시고는 간신히 일어서더니 엊그제 준 퇴비에 색이 제법 검푸른 장정이 됐다. 감자도 싹이 나왔고 아직도 흙더미를 이고 있는 여린 새싹은, 동네 아짐들이 하는 대로,  일일이 흙을 치워 꺼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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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콜라도 작년 그 혹독한 추위에 겨우내 끄떡없어 늘 푸른 채소를 이웃에게 나눠주고 요즘은 동네아줌들이 그 맛을 알아 우리 밭에서 한줌씩 뜯어가 나물로 무쳐 먹는단다. 자연의 넉넉함을 우리 인간이 어찌 따라가랴


곡식은 주인의 발소리를 듣고 큰단다. 마찬가지로 주인은 곡식들이 뭘 하나 궁금해서 늘 돌아보며 살피게 된다. 대파와 쪽파는 이미 다른 쪽에 있고 호박은 울밖에 심었으니 축대를 타고 올라가서 달리고 익으리라. 상추와 쑥갓은 벌써 밭 한쪽에서 제법 싹을 틔웠다. 모든 것을 내 손으로 키워 먹는 일, 힘은 들어도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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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후에는 남호리에 쌓아 놓은 퇴비를 비닐과 텐트로 꼭꼭 묶어 놓았다. 햇살이 뜨거운 여름이 지나면 퇴비 봉지가 삭아터지면서 쏟아진다. 더 억울한 건 그걸 훔쳐먹고 잡초가 울울창창 자라날 때, 하느님이야 그것도 기특하시겠지만 속 좁은 나는 사정 없이 낫질을 하며 그것들을 미워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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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와서는 휴천재 지붕을 칠한 아저씨한테서 얻은 다크그린 페인트로 이층 데크에 놓인 흔들의자를 다시 한번 칠했다. 청색보다 초록색이 더 자연에 가까워 마음에 든다.


어제 미얀마를 돕는 행렬에 국내 지인들은 물론 미국에 있는 상훈이, 카나다에 문부제님, 스위스에 소피아씨도 동참한다며 미얀마를 도울 기회를 주어서 고맙다는 문자들을 보내왔다. 하느님이 주신 사랑스런 마음이다. 오늘 본 뉴스에서는 우리의 기도와 달리 미얀마는 내전으로 빠져들 조짐이 보인다. 무지막지 소수민족에 대한 학살은 이 사순절에 주님 수난과 너무 비슷한 모습이어서 가슴이 무너진다. 혁명은 피를 먹고 자란다지만 미얀마인들에게도 칠흑의 어둠 속에서 주님이 부활하시듯 평화와 정의로 부활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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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조용한 산속에도 기계 소음으로 시끄러운 때가 두세 번 있다. 요즘은 콘바인으로 논마다 쟁기질을 하고 얼마 후에는 물을 채워 써레질을 하고서 기계로 벼를 심고 가을에 다시 콘바인으로 추수하는 소리가 그것이다. 구장네 논은 어제 오늘로 깨끗이 쟁기질과 써레질이 되어 있는데, 작년에 묵힌 유영감네 논은 올해도 손보는 기색이 없다. 요즘 어디서도 안 보이던 영감님이 오늘 저녁나절엔 어디서 무얼 하셨는지 흙 묻은 옷차림으로 군내 버스를 기다리고 계셨다. 읍내 큰아들네라도 가시나 보다. 이젠 나도 물끄러미 쳐다보실 뿐 못 알아보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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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층 다락으로 오르는 층계 위의 시멘트 바닥이 삭아 비가 스미는지 2긴 방도배가 얼룩이 졌다. 올여름 장마를 나려면 손을 봐야 한다. 불러 쓸 사람도 없고 다들 바쁜 봄날이라 누구에게 부탁하기도 어려워 내가 손을 보기로 나섰다. 함머로 일어난 시멘트를 털어내고, 물로 닦아내고, 유림에 가서 사온 시멘트(40kg)와 방수액을 섞어 미장을 했다. 제법 그럴듯하다


나선 김에 뒤꼍의 층계도 물로 대청소를 했다. 비가림 밑이어서 일년에 한번씩 하는 물청소다. 식당채 뒤켠의 데크도 수리해야 하는데 기왕 내가 목수로도 나서서 손볼까 고민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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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 맞은 편 와불산 자락에 산벚이 피어나는 걸로 보아 지리산의 봄도 기울고 있다. 우리 텃밭을 에워싼 두 그루 벚꽃에서는 꽃잎이 눈처럼 날려 꽃그늘이 참 아름답다. 자두나무 꽃잎은 아직 화려한 윤기를 잃지 않았고 배꽃에서는 망울이 터지기 시작한다. 그러니까 휴천재엔 아직도 봄이 한창이다.


꽃그늘에 밤이 오고

달 뜨고

그리하여 한 나라가 사라져갈 때...

 

꽃그늘 속으로

바람이 불고

시간의 물방울 천천히

해찰하며 흘러갑니다 (이재무, “꽃그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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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력이 잔인한 4월로 넘어갔다. 제주 4.3, 4.19 혁명, 세월호... 민족사의 핏빛은 아직 가라앉지 않았는데 보수세력의 총궐기로 정세가 흔들리면서 내 주변 뜻있는 사람들의 우국충정과 시름은 깊어져만 간다. 


4월 첫날에 주님 만찬 성목요일을 맞았다. 다른 때 같으면 본당 미사를 가는데 보스코도 나이 80이요 무엇보다 나도 밤운전이 퍼뜩치 않아 평화방송에서 미사를 '시청'했다. 미사가 맞긴 맞는데 뭔가 2%가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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