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325일 목요일, 맑음


어제까지만 해도 그렇게 바람이 불고 춥더니 오늘은 낮 기온이 23. 하룻밤 사이에 휴천재 정자 옆 벚꽃이 거의 활짝 피었다. 폐교된 초등학교 마당도 벚꽃잔치를 앞두고 있다. 텃밭 가장자리 자두나무도 하얀 꽃을 두 팔 벌려 가득 안았다. 휴천재 마당 반송 밑에 움추렸던 수선화도 만발했다. 얼마나 수선스레 한꺼번에 피어났는지 한 곳에만 눈을 둘 수가 없다봄의 화려하고 어지러운 꽃불놀이에 혼줄을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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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녁 해거름에는 바람이 자서 보스코가 두 번째 배나무 소독을 했다. 자두나무는 흰꽃을 만개해서 밑둥치와 굵은 가지에만 약을 뿌리고 꽃가지엔 뿌리지 못했단다. 배고픈 겨울을 나고서 드디어 꿀을 따러 나오는 꿀벌들에게 해코지할까 봐 차마 못하겠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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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햇살은 좋고 휴천재 지붕을 칠하던 아저씨는 나오지를 않아서 테라스에서 색이 바랜 흔들의자에 페인트를 칠했다. 보스코는 초중등학교에서 미술과목에 [수우미양가]를 맞은 실력이라 차마 못 시키고 내가 칠했다. 칠하던 아저씨가 남겨둔 푸른색 페인트로! 작은 붓으로 칠하고 햇볕에 말려가면서 덧칠을 했어야 하는데 굵은 붓으로 척척 단번에 발랐더니 울퉁불퉁 칠해졌지만 잘 마르면 그런대로 쓸만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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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코가 며칠 전배나무를 전지하고서 가지런히 모아둔 잔가지들을 단으로 묶더니 리어커로 실어 드물댁네 텃밭 구석에 내려놓았다. 옛날에는 땔감이 없어 남의 묫등 검불까지 갈퀴로 긁어다 썼는데 요즘은 그리 아쉽지는 않아도 시골에서는 아직도 나무가 땔감으로 필요하다


담밑에 걸어 놓은 무쇠솥에 봄이면 고사리나 취나물 꺾어다 삶고, 여름에 새끼들이라도 대처에서 오면 삼계탕이나 휴천강에서 잡아올린 생선으로 어탕이라도 끓여야 하는데 땔나무는 필수다. 엊그제도 유영감이 지게에 가득 싸리나무를 해서 산을 내려오는데 분홍색 진달래도 그 위에 가마를 타고 산을 내려오고 있었다. 우리는 전지한 나뭇가지가 처치 곤란이니 동네사람들에게 실어다 주면 윈윈이어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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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텃밭 미루집곁에 작년 가을부터 베어놓은 풀들과 잔가지는 처리를 해야 하는데 태우려니 산불관리인 아저씨 눈총이 걸린다. 그래서 오늘은 지나가던 그 아저씨더러 우리가 불 놓는 걸 지켜봐 달라고 했다. 처음엔 동네사람들 눈치 보인다고 마다하더니 자꾸 조르니 방송차를 세우고 내려와 거들어 주었다. 나는 부지깽이 삼아 쇠파이프를 들고 가다 그만 파이프를 놓치고 말았다. 파이프가 땅에 떨어지며 가볍게 내 입을 툭 쳤는데 입에 무엇이 씹히는 것 같아 뱉아버렸다. 그러고서 더듬어 보니 내가 뱉은 게 부러진 앞니 조각이었다! 전순란, 졸지에 영구가 되었다!


저녁에 내 얘기를 들은 보스코는 나더러 다음 달 서울에 치과병원에 갈 때나 내 앞니를 손보라지만 거울 속에 내 입이 너무 웃긴다. 문제가 생기면 뭐든 내일로 미루는 게 보스코라는 남자요(내가 붙인 그의 별명이 '성나중씨') 당장 해결을 봐야 하는 게 전순란이라는 여자여서 오늘 오후에 읍내 치과에 가서 레진으로 떼우고 왔다. 감쪽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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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우리 동네에 면에서 사람이 나왔다. '75세 이상 어르신들'(마을 사람 거의다 해당한다)에게 코로나 백신 맞겠다는 동의서를 받으러 왔단다. 보스코만 그 나이에 해당하여 혼자 내려갔는데, 합병증으로 약을 드는 중촌댁한 분 빼고, 모두 백신주사 맞기로 동의하더란다


마을 방송을 듣고 마을회관으로 올라오는 아짐들의 허리가 앞으로 휘거나 뒤로 휘거나 옆으로 휜 자태가 이채로워 보스코가 한참이나 그 여인들의 아름다웠을 처녀시절 걸음걸이를 상상해 내느라 힘들었다는 소감을 내게 들려주었다. 아침마다 남편이 등허리를 밟아줘야 하는 나도 머지않아 아마 '옆으로 휜 S자' 모습이 될 게 뻔한데....


오늘 아침엔 미국 사는 친구가 전화를 했다. 'AZ 예방주사 절대 맞지 말라!' '한국이 몰라서 그렇지 유럽과 미국에서 그 약의 부작용으로 엄청 많이 죽어간다!' '인류를 개조하는 악당들의 음모다!' 악의적이고 왜곡된 가짜뉴스를 퍼뜨리러 그 먼데서 전화까지 하다니


오늘 문대통령이 주사를 맞은 일을 두고도 간호사를 협박하고 그 병원을 폭파해버리겠다는 자들이 있고, 그런 협박공갈을 여과 없이 보도하여 여론몰이를 하는 보수언론! 주님이 탄생하신다는 예고를 받은 날이라서 '코로나가 저런 좀비 인간들이나 좀 잡아가면 안되나?' 하는 생각은 차마 못하지만 다음 시에서나마 사람들 좀 각성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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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사람들은 집에 머물렀다

그리고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휴식을 취했으며, 운동을 하고, 그림을 그리고, 놀이를 하고새로운 존재 방식을 배우며 조용히 지냈다.

그리고 더 깊이 귀 기울여 들었다.

어떤 이는 명상을 하고, 어떤 이는 기도를 하고, 어떤 이는 춤을 추었다.

어떤 이는 자신의 그림자와 만나기도 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전과 다르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치유되었다.

무지하고 위험하고 생각 없고 가슴 없는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줄어들자

지구가 치유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위험이 지나갔을 때 사람들은 다시 함께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잃은 것을 애도하고, 새로운 선택을 했으며 새로운 모습을 꿈꾸었고

새로운 삶의 방식을 발견했다.

그리고 자신들이 치유 받은 것처럼 지구를 완전히 치유해 나갔다.

                        (키터 오메라, 그리고 사람들은 집에 머물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