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318일 목요일, 맑음


수요일 17일 함양장날. 장에 가면 뭔가 (남호리에 심고 싶은 묘목들을) 사고 싶은 유혹에 넘어갈 것 같아 읍내에 안 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어제 사 온 체리나무가 자꾸 마음에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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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초리 같은, 막 접붙인 1년생 묘목이 3만원이라면, 이건 금값이나 다이아몬드 값이다. 저 귀한 물건을 보는 사람도 없고 돌보는 사람도 없는 남호리 산비탈에 그냥 심어둔다는 게 마음이 안 놓여 어젯밤에 우선 노랑색 체리 하나, 빨강색 체리 하나, 두 그루를 우리 텃밭에 심었다. 그러고선 나머지 세 그루도 산속 외딴 데로 떼어 보내자니 안 되겠어서 보스코 눈에 띄기 전에 휴천재 텃밭 한 고랑을 내어 마저 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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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한 짓을 보스코는 뭐라지만 금년부턴 그 터에 배추 심는 양을 줄이고, 마늘도 안 심고, 양파도 다섯 망만 심겠다고 변명했더니 한숨을 푹 쉬고는 더는 말을 않는다. 한 여자와 50년쯤 살면 언제, 무엇을 포기해야 하는지 어둔한 남자도 직감으로 배울 만하다.


여보, 엄나무 열 개, 값싼 체리 묘목 여섯 개만 더 사고 나 절대 더는 안 살게.”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그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표정으로 별것 아닌 것으로 당신이 저렇게 행복해 하는데 남호리 땅에 뭘 사다 심든 이제부터는 당신 마음대로 해.”라고 한다 "내가 패물을 사는 것도 아니고, 비싼 옷이나 신발이나 화장품을 사는 것도 아니고작은 식물들로 이렇게 들떠서 신나는데..." 하는 내 논리에 더는 만류하는 게 소용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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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호리 산비탈 700평을 나무로 가득 채울' 전순란의 기세, '열 자 막대기 사방으로 휘둘러도 걸릴 게 없는 여자'로 정평 난 아내의 극성, 하지 말란다고 안 할 여자가 아니고, 하란다고 또 꼭 할 여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오래 전에 터득한 남자의 결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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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점심에는 주로 자기네가 가져다 쓸지도 모를 신선초를 어부이가 심는데 도와주지 못했다고 미루가 점심을 냈다. 요새 매일 풀만 먹고 일은 엄청 해서 지쳐 있으리라며 오리 고기로 몸 보신을 해 주었다


산청에서 돌아오는 길에 함양 묘목원으로 차를 몰았다. '보스코가 나더러 맘대로 하라고 했겠다!' 체리 두 종류 여덟 그루를 더 샀더니, 열리면 계란만 하다는 알밤 나무 네 그루를 주인이 덤으로 주었다. 덤이야 거절할 일 없으니 당당하게 받고서 보스코를 앞장 세워 돌아왔다. 지금 같아서는 올해 더는 나무를 심지 않겠다는 맘이지만, 누가 나무를 준다면 거절할 생각이 없다는 게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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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와서 배나무 전지를 시작하는 보스코를 도우려는데 그에게 두서가 없다. 지난 2년간 임실 김원장님이 전문가를 모셔와 보스코에게 '단독 집중과외'를 시켰는데도, 배밭에 강전지를 해서 다듬어 놓았는데도, 어떻게 무엇을 잘랐는지 생각이 안 난다나? '차라리 당신이 그분들을 초대하여 한번 더 식사를 대접해 드리고서 내가 배웠으면 좋겠다'는 눈치다. 


'차라리 오늘 밤을 패서라도' 유튜브를 보고 내가 배워서 나머지 작업을 시키는 게 효율적이겠다 싶어 어젠 밤잠을 안 자고 유튜브에서, ‘배나무 전지하는 법’, ‘엄나무 안 죽이는 법’, ‘체리 심는 법을 여러 사람의 체험까지 곁들여 새벽 1시까지 보고 또 보았다. 그 중에서도 전문학교 교수 되는 분의 배전지 강의가 귀에 쏙 들어왔다. 한밤중 쿨쿨 자는 보스코를 깨워 내용을 들려주고, 오늘 아침엔 그걸 다시 보여줘서 복습을 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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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에 약한 아들을 위하여 스스로 수학을 배워 아들 과외를 손수 시키는 엄마다운 극성이다. 역시 철학교수여서 실습보다 논리적인 강의가 더 효과적이었다. 그는 우수한 학생답게 배나무 전지를 터득했다. '하늘로 오르는 도장지는 무조건 자른다.' '그중 한두 개는 신초로 택하여 옆으로 묶어 다음을 위해 남긴다.' '위로 큰 가지에는 절대 꽃눈이 없고 누운 가지에서만 꽃이 핀다.'  '서당개 3년차'여서 오늘 아침 배밭에 들어서니 우리 눈에도 잘라낼 가지와 남길 가지가 훤히 보인다. 역시 '아는 게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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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서울 가는 체칠리아가 자기네 밭일을 마무리하느라 바쁘다기에 친구가 보양하라고 보내준 닭갈비도 있어 스.선생 부부를 불렀다. 머위나물, 참나물, 흰민들레, 쑥국 등으로 식탁을 차렸다. 바쁠 때 짜장면 시킬 곳도 없는 시골이어서 밥 한 끼 차려주는 일이 커다란 보시다. 감자 놓는 일을 마무리 중인 소담정도 올라와 함께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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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오전 오후 내내 배나무 전지를 하며 얼굴이 벌겋게 탄 '인간만세' 착한 보스코에게 상으로 간식을 차려 주었다. 그는 드디어 배워서 실습한 작업을 마치고 전지한 가지들마저 다 치우고서 집으로 올라갔다. 나는 남아서 배나무 밑에 떨어진 우엉 씨에서 싹이 소복하게 올라와 있기에 비료 푸대 8개에 흙을 채워 우엉 모종 옮겨 심을 준비를 했다. 정말 지리산에선 밭에만 나가면 무슨 놀이든 생각 나 심심할 틈이 없다


그 동안 우이동 '빵기네집' 산수유도 꽃이 곱다고 레아가 작가다운 사진을 찍어 보냈다. 봄이니 어딘들 무언들 곱지 않으랴! 봄 봄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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