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314일 일요일,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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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올봄엔 비가 간격을 두고 곱게도 내린다. 화초나 나무는 아기로 꽃을 피웠거나 꽃을 품고 있다. 이러다 느닷없이 꽃샘추위로 폭설이라도 쏟아지는 변덕을 부리면 꽃이나 꽃눈은 속절없이 얼어버리고 과일농사는, 경상도 말대로 조져버리는 기다’.


비가 오고 난 다음에 감자를 심겠다던 동네 할매들은 비가 지법 많이 온다면서 니가 심으니까 나도 심고’ ‘비 오고 심어도 암시렁 안히야라고 배포 좋게 버티던 중촌댁 할매도 암만해도 안되겠던지 밤중에 이마에 불달고 감자 심더라고 드물댁이 전한다반은 경탄이요 반은 흉이다입에 플래시를 물고 밭을 매거나 건전지 플래시를 이마에 두르고  어두운 밤에 밭을 매는 할매가 간간이 있긴 있다. 


어제 쪽파를 뽑아 데쳐 김과 무치고 마늘 밭에서 뽑은 냉이는 나물을 했다. 봄나물은 그 향을 그대로 음미하느라 마늘이나 파도 안 넣고 장과 들기름 깨소금만 쓴다. 그래도 몇 가지 나물이면 뚝딱 밥 한 공기가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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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속에서는 비가 오면 논일도 밭일도 공치는 날로 그 여가에 이웃과 친구를 찾아 들여다본다. 엊그제 마트에서 아스파라가스를 산 게 좀 있어 새우 아스파가스 리소토를 해서 스.선생네 솔바우에 올라갔다. 오랜만의 만남이다. 비가 안 왔다면 그 집은 작년 장마 때 방천 난 밭의 축대를 포클레인으로 손 보았을 테고 나는 나대로 밭에서 뭔가를 했을 시간... 비는 각자에게 우선 멈춤!’ 팻말을 들어 서로를 바라보게 하고 사람 사이를 끈끈하게 해주는 재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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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새우 알레르기가 새로 생긴 보스코가 그 맛있는 리소토를 먹고 나서 이틀간 알레르기와 몸살로 고생했다. 몇 해 전 친구가 대접해준 대게를 먹고서 난생 처음 발생한 알레르기가 그 다음 새우를 먹으면 발생하더니 이젠 새우 삶은 국물로도 찾아온다. 나이 들수록 면역력이 약해지는 징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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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에는 비오는 날 제일 좋은 일로 책을 읽었다. 손원평의 장편소설 아몬드.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이다.  살레시안을 아들로 둔 엄마로서, 청소년기의 일탈이 인생 전부를 망칠 수 없는, 사랑과 진심만이 사람에게 다가가 변화시키는 이야기는 흥미롭게 읽는다. 알렉시티미아 즉 감정표현장애를 가진 소년 선윤재의 이야기다. 머리 속에 아몬드 모양의 편도체가 있는데 크기가 정상인보다 턱없이 작아 전혀 공포나 불안감을 못 느끼는 증세. 불안감이나 사랑 등 섬세한 감정을 못 느끼는 소년이, 소년원을 들락거리던 다른 문제 소년을 바꿔 놓은 이야기는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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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주일이라 공소에서 다섯 명의 교우가 공소예절을 하였다. 공소 뜰에는 동네에서 제일 먼저 수선화가 피었다. 헤드빅 수녀님의 자취다. 키 작게 자라난 비자나무에도 꽃이 가득 피어올랐다. 사람은 가도 세대가 이어지면서 세상은 나름대로 이어진다.

(보스코가 써온 주일복음 댓글: 

http://donbosco.pe.kr/xe1/?mid=sundaygospel&document_srl=7180)


내 동생이 아픈 친구를 만나보러 고흥엘 갔는데 친구는 보지도 못하고 간 김에 홍탁집엘 들렀더란다넷이서 삼합이랑 홍어탕을 먹고 있는데누군가 식당에 전화를 걸어와 '(코로나 때문에손님이 얼마나 와 있는가?' 묻더란다식당 주인 대답: '사람은 없구요노인만 넷이요.' 아마 매형이 그 자리에 끼어 있었더라면 '노인 넷에 송장 하나' 라고 대답했을 것 같다는 호천의 탄식아마 젊은이들 눈에 우리 늙은이들은 이미 '사람'의 범주를 벗어난 '폐기물'(프란치스코 교황이 노인과 노숙자, 실업자를 '폐기물(scarti)로 취급 말라는 경고를 인류 사회에 거듭 보내고 있는데...)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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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클레인으로 대강 손질한 남호리 밭에 호두나무를 40그루 심었다1년생 회초리 같은 나무여서 700여평 땅 어느 구석에 꽂혔나 돋보기 들고 봐야 할 판. ‘저게 언제 크나?’싶은데 그래도 4년이면 호두를 따요.’란다. 마음이 급하면 갓 태어난 아이 기저귀 채우기도 전에 장가 보낼 걱정부터 하는 꼴이다. 자연은 이치대로 나무를 키우고 과실수 역시 절기대로 때가 되면 열매를 매단다.


안성 도축장에 단체로 환자가 발생한 코로나 사태로, 엄마는 이번 주도 면회가 미뤄졌다. 지난번 엄마가 호천이랑 이틀밤을 지내실 때, 새벽 두 시에 눈을 뜬 엄마가 호천이를 물끄러미 바라보시고는 그동안 왜 안 왔니? 왜 이제 왔니?”라고 물으시더란다. 그 부실하게 오락가락하는 정신에도 자식은 몹시 기다리신다는 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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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드물댁이 아침부터 서둘러 나를 불러내리더니 텃밭에 그래도 보스코가 통로로 남겨둔 빈 터에 거름을 뿌리고 멀칭을 해서 토란을 심고, 호박과 옥수수를 놓았다. 워낙 자기 땅이 없다 보니 한 뼘 땅도 놀리는 게 아까운가 보다. 오후엔 나랑 휴천재 올라오는 길가 화단의 잡초를 뽑고 국화도 옮겨 심었다. 그런데 나는 쑥을 캐내는데 드물댁은  화단에서  국화를 뽑아낸다! 내가 그러지 말라니까 쑥은 국도 끓이고 떡도 해먹는데 국화는 쓰잘 데가 없다!’는 대답. 맞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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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점심에는 흰민들레, 광대나물, 원추리나물에 쑥국을 끓여 내놓았다. 며칠간 (의치를 잃고서?) 몸살을 했던 보스코가 어제 고맙게도 논공대구방향휴게소에서 보내준 의치가 도착해선지(휴게소 분들이 고맙다) 오늘은 기운을 차리고 오후에는 밭일도 했다. 내일 남호리에 심을 신선초를 텃밭에서 캐내고 텃밭에 마지막 남은 이랑을 괭이질하여 다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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