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214일 일요일. 맑은 후 밤에는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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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모님이 2021(음력) 새해, 그러니까 설날 첫 시각에 감실 앞에서 우리 가족을 위해 기도하셨다고 기도실 사진을 보내오셨다. 40년 넘는 대모님의 기돗빨, 우리를 위해 늘 기도해주시는 수도자가 계시다는 사실이 삶에서 꾸준히 나를 일으켜 세운다. 우리가 턱없이, 까닭 없이, 드린 것 없이 우리에게 베푸시고 잘해주시는 분들에게 에워싸여 살아온 세월을 돌이키면서 그게 가장 뚜렷한 은총이었음을 절감하며 설날을 맞는다. 은총은 벼락처럼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고 언제나 사람들 손길을 통해서 이슬비처럼 사락눈처럼 내려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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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이층에 진공청소기를 돌려달랬더니 보스코는 정월 초하루라 안 하겠단다. 정월초에 청소하면 일년 내내 청소만 한다나? 하는수없이 그를 책상머리에 놔두고 나는 그동안 미루던 부엌살림 대정리를 했다. 정말 필요도 없이 쌓아 놓은 물건을 싹 치웠다. 우리 순둥이가 보면 아직도 남은 것 90%는 갖다 버릴 게다.


요즘 김완 작가가 쓴 죽은 자의 집청소를 읽었다. 물론 사고로 혹은 자살로 죽어 누구도 들어가거나 치우기를 꺼리는 극한 상황의 장소를 치우는 이야기지만 아마 내가 죽고 나서도 아들들이 가까이 없으니 그런 사람들에게 청소를 부탁해야 할 지경이 오지 않을까 싶다. 아무리 망측한 죽음의 모습도 자신의 감정이입이 없는 이런 특별한 인물만이 깨끗이 치울 수 있으리라. (다만 그 책은 시인이 써선지 너무 은유적이거나 표현이 현란해, 별난 직업을 갖은 사람의 모습에 호기심은 컸지만 읽는데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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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 오후에는 상추와 루콜라를 심었다. 지난 가을 무 배추를 뽑고서 텃밭 한켠에 2000원 짜리 상추씨 한 봉지만 뿌렸더라도 지금쯤 예쁜 두 잎 새싹을 보았을 텐데... 가을마다 유채씨를 뿌려왔는데 극성스런 (아마 겨우내 굶은) 물까치떼가 파란 잎이란 잎은 다 쪼아 먹어 유채꽃을 보겠다던 꿈까지 먹어버렸다


겨울이 끝날 즈음에 신김치가 질리면 겉절이라도 해먹겠다며 밭에 놓아두었던 봄동마저도 줄기만 남긴 채 모조리 쪼아먹어버렸으니 봄도 오기 전에 물까치가 우리 텃밭에 선전포고를 해온 셈이다. 배나무에 퇴비를 주는 우리 부부를 감나무 꼭대기에서들 내려다보며 “우리 먹으라고 배농사 열심히 지어 준다니 고맙고로!”라고 비아냥거리는 듯해서 농사지을 흥이 안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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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독거노인처럼 외롭게 설을 보냈다고 미루가 어제 점심초대를 했다. 막내네면서도 시아버님을 모시는 제사 음식을 정성껏 마련한 걸 보니 돌아가신 시어른도 기특해 하실 게다. 그 어른 덕분에 살아있는 우리도 잘 차려진 설상을 받았다. 친정에서는 큰딸인 나 없이도 삼형제가 예배를 올리고 애찬을 나누었노라는 호연이 장로의 전화가 설날인사에 곁들여 왔다. 작년에 이어 엄마 없이 쇠는 두번째 설이었다.


우리도 큰집이어서 제사를 모셔야 하지만 가족회의에서 연미사로 대체키로 여성해방적 결론을 내린 지 오래다. 말하자면 4형제가 고아로 자라서 뼈대가 없어진지 오랜 성씨 집안에는 프롤레타리아 혁명과 여성혁명이 명실공히 이루어진 셈이다. 우리 작은아들이 집전하는 연미사니까 미사 예물도 안 든다! 금년에는 수도원에서 미사를 드리고 해마다 오던 설날 친가방문은 금주중 연례피정을 개인적으로 하러 지리산으로 내려오는 것으로 대체되었다. 아들이 기다려진다. 


오늘 오랜만에 본당으로 주일미사에 참례했다. 입구에서 모든 교우가 본당신부님이 주시는 세뱃돈을 만원씩이나 받았다. 작년에는 주일미사 참례자도 거의 없어 성당 운영에만도 힘드셨을 텐데 코로나로 풀 죽은 신자들에게 크게 마음을 쓰셨나보다. 덕분에 미사 후 진이네랑 넷이 가서 신부님께 고마운 마음으로, 간짜장과 짬뽕을 한 그릇씩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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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후 우리 둘은 상림공원을 거닐며 봄의 냄새를 맡고 해빙의 물소리를 들었다. 신부님은 강론에서 코로나가 마치 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고 가르치는 듯하단다. 복음과는 정반대로 살게 사람들을 만든다. 거창에 확진자가 나오면 함양 목욕탕에도 못 오게 하고, 함양에 확진자가 나오자 옆동네 인월장을 닫더란다. 사람 사이를 갈라놓고 적대감과 공포심, 긴장감과 스트레스로 사람을 병들게 한다. 신앙은 분열되었던 사람을 화합시켜 하나 되게 하는 법이어서, 지금처럼 병든 사람들을 다시 정상적인 사람이 되게 하는데 우리 신앙인들이 할 일이 참 많다는 말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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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돌아와서는 오후 내내 위아래층 집안의 화분을 정리하여 이쪽저쪽 옮기며 모양을 잡았다. 꽃들은 어느 쪽에 놓아도 어디서 보아도 아름답다. 그런데 사람이 꽃보다 더 아름답다고 안 하나? 아마 대자대비하신 하느님 눈으로 볼 때만 가능한 이야기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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