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14일 목요일, 맑음


"마리오가 더 이상 없어요(Purtroppo Mario e’ mancato)." 요즘 이레네와 계속 문자를 주고받으며 마리오의 차도를 묻던 중인데 어제 새벽에 받은 짧은 한 줄이다. 내 알프스 친구 마리오가 세상을 떠났다, 그것도 코로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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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2월 초, 마리오가 코로나에 걸려 입원 중이라는 소식을 그의 아내 이레네가 보내왔다. 그가 사는 곳이 워낙 청정지역인 알프스고 술이나 담배도 안 하는데, 보스코보다 세 살 적어 은퇴한 지 오래고 특별히 하는 일도, 만나는 사람도 없는데... 


어디선가 코로나에 걸려와서 입원 후 급격히 나빠져서 입원 첫주를 지나며 폐렴으로 바뀌더니 혼수상태에 빠졌고, 무려 4주를 버텨오다 어제, 더는 이 세상에 기댈 곳 없어 머나먼 나그네 길을 떠나고야 말았다. 스물일곱이나 젊은 아내는 병원 로비에서 하염없이 울고만 있었다. 외롭기만 했을 마리오의 삶, 적어도 그의 마지막 10여년은 비교적 평안하였지만, 나어린 아내 이레네가 어찌하나, 어찌하나?


내가 그를 처음 만난 것은 1980년대초, 보스코의 유학 둘째 해, 지중해에 맞닿은 항구도시 오스티아에서였다. 로마에 살다 오스티아로 이사 가서 작은아들 빵고를 데리러 유아원엘 간 어느 오후였다


내 앞의 세레나와 오른편 만리오, 그미 품의 아기는 플라비오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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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동네 유아원 옆에는 커다란 운동장이 있고 축구나 정구 등 모든 운동 시설이 갖추어져 있었다. 테니스를 치고 왔는지 테니스복에 상기된 얼굴이었는데 영화배우 같은 미남이었다. 그때 설흔을 갓 넘은 내 나이였고 그는 30대 중반의 매력 넘치는 남자였다. ‘아이가 이곳 유아원에 다니냐?’ ‘어느 나라에서 왔냐?’ 등을 물으며 친절한 미소로 말을 걸어오는 건 반가운데 이탈리아말이 서툴러 한참이나 진땀을 뺐다.


그의 큰아들 만리오도 빵고와 같은 유아원에 다녔고 착하고 친절한 아이여서 빵고와도 친했다. 아빠가 안 오는 날엔 엄마가 애를 데리러 왔는데 세레나는 남편이랑 근무하는 알리탈리아 항공회사 여직원 전세계미인경연에서 우승한 미인이었다. 우리와 집이 가까운 곳이어서 간혹 제각기 아이를 미처 못 데리러 가면 두 여자는 서로 아이를 데려다 저녁을 먹이고 집에서 재우기도 했다


빵고가 초등학교에 입학하여 함께 다니다 5년째 되는 해에 세레나의 아버지가 외동딸에게 알프스에 집을 남기고 돌아가시자 마리오는 알리탈리아 항공회사를 그만두고 로마에서 이탈리아 북부 알프스로 이사를 갔다. 그는 회계사여서 그 지역 공립학교들 회계업무를 봐주고 세레나는 전업주부로 아이들을 키우겠다고 했다.


알프스에서 마리오 세레나 부부와 청년으로 자란 두 아들 만리오와 플라비오(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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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오가 로마대학을 졸업하고 영미계 회사에 면접을 보러 갔다 문을 열어주는 비서 아가씨에 그만 넋이 나갔고, 집에 돌아와서는 면접 결과를 묻던 엄마에게 면접시험 얘기는 않고 문앞에서 만난 아가씨가 얼마나 아름다웠던지 넋을 잃었다는 얘기만 했단다. 취직한 뒤 그 아가씨와 열애 끝에 결혼을 했는데 취직보다 아내를 만난 게 그 회사에서 얻은 가장 큰 소득이었단다. 내 눈에도 세레나가 남편이나 두 아들을 대하는 품은 정말 조손하고 동양적이었다!


그렇게나 사랑하던 아내 세레나를 50이 안 돼서 폐암으로 먼저 떠내 보내고 내 품에서 엉엉 울던 그를 지금도 기억한다. 아내와 사별 후 여러 여자를 만났지만 세레나 만한 여자는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마리오네 얘기 몇 가닥:

http://donbosco.pe.kr/xe1/?document_srl=87662 


http://donbosco.pe.kr/xe1/?document_srl=275811 


http://donbosco.pe.kr/xe1/?document_srl=305461


새 아내 이레네 그리고 두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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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레나가 떠난지 20여년이 지나 지금의 나어린 아내 이레네와 재혼을 해서 딸처럼 돌봐주며 아끼고 살았고, 첫남편에게서 받은 상처가 많았던 이레네도 착한 남편과 살며 마음을 치유 받고 행복한 날들만 기다린다고 내게 고백하던 말이 생각난다. 이제 혼자 남겨진 그녀와 자주 전화하며 올여름에 유럽을 가게 되면 알프스 그집에서 꼭 함께 지내마고 전화로 약속했다


마리오의 큰아들 만리오와 죽마고우던 빵고신부가 어제 아침 마리오의 영혼의 안식을 비는 미사를 올려주었고 우리 둘이서는 아침 저녁 성무일도를 위령기도로 바쳤다. 하지만 남편이나 아내를 잃은 자리는 그 누구로도 채워지지는 않는 법. 그저 함께 울어주고 함께 있어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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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에 로마를 상징하던 돈쟌카를로가 세상을 떠나자 나에게 더는 로마가 존재 이유가 없었다.그런데 세레나가 떠나고 마리오마저 없는 알프스를 찾아갈 수 있을까? 산 사람들의 땅에서는 그대들을 다시 볼 수 없다니 가슴이 한없이 미어진다. ‘그대가 있기에 봄도 있고 아득한 고향도 그대 때문일러라는 가곡처럼, 사랑하는 사람이 없으면 세상 어느 곳도 빛과 색깔을 잃는다.


어제 도정 체칠리아가 서울에서 내려온지 여러 날이 됐으니 좀 만나서 새해 인사라도 나누자고 점심에 불렀다. 김교수 부부도 만나고 소담정과도 새해 인사를 나누었다. 친하던 친구를 잃고 나니 저기든 여기든 남은 친구들이 새삼 더 소중해진다. 이 산속에 살며 그들의 살뜰한 마음이 없다면 이 대자연이 지금처럼 빛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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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해를 써온 지리산휴천재일기에 사진을 올리는 문제는 보스코가 담당한다. 그런데 플래쉬 프로그램의 사용이 중단되어 사진 올리는 일이 불가능해지자 귀요미 미루가 돕겠다 하여 산청 화양마을 '팔보식품'으로 그미를 보러 갔다. 어제 오후 내내 혼신을 다하는, 심지어 오늘 오전까지도 사방으로 해결책을 알아보는 그미를 보면서 정말 그미가 하는 사업은 기필코 성공하고 말리라는 안도감을 주었다. 배 아프지 않고 갑자기 생긴 나의 네 딸 중 미루가 아부이가 데꼬들어온 딸이라고 불린다(둘째는 어무이가 데꼬들어온 딸이어서 첫째와 꼬맹이  두 엘리는 '전처 자식'을 자처하며 둘이서 부등켜안고 서럽게 서럽게 살아간다나?). 


사랑받기에 우리는 존재한다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격려도 있거니와 사람은 인정받는 만큼 크고 사랑받는 만큼 사랑할 줄 안다. 휴천재 마루에 겨울이면 들여놓는 화분들이 겨우내 꽃을 가득가득 피우는데, 우리 주변은 온통 사람 꽃으로 가득하여 그 향기에 취해 산다. 사별한 마리오와 이탈리아의 벗님들도, 지리산 주변의 모든 지인들도 그 모든 만남이 은총이었고 지금도 은총이다


마리오네 마을 트란스아콰, 그리고 알프스 영봉 팔레 디 산마르티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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