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12일 화요일, 맑음



물이 얼었을 때는 그렇게 불편하고 물 쓸 일도 많더니, 물이 나오니까 별로 할 일도 없었던 것 같아, 마음이 염치가 없다. 그래도 왜 한파가 오면 늘 더운 물 파이프만 얼었나 궁금해 하다 인터넷에서 음펨바효과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뉴사이언티스트에 따르면 섭씨 35도와 5도의 물을 얼렸을 때 효과가 극대화 한단다. 이 현상은 이미 아리스토텔레스, 프란시스 베이컨, 르네 데카르트 등도 언급했지만 적절한 설명은 내놓지는 못했단다

 

[크기변환]20210108_163056.jpg


그런데 아프리카 탄자니아의 중학생 에라스토 음펨바가 1963년 중학교 요리시간에 아이스크림을 만들다가 덜 식은 아이스크림이 식혀서 냉장고에 넣은 아이스크림보다 더 빨리 어는 사실을 보고 의문을 품었고, 고등학교 때 강연을 온 물리학자 데니스 오스본에게 질문을 하며 친구와 교사들의 비웃음을 받았지만, 이 성실한 물리학자는 돌아가 실제로 직접 실험하여 1969년에 음펨바와 공동명의로 논문을 발표하여 음펨바 효과라는 이름을 갖게 됐단다


원인이야 길게 설명되어 있지만, 나어린 학생을 공동연구자로 등재할 만큼, 학문적 도덕성을 가진 과학자 데니스 오스본의 자세가 돋보인다. 그럴듯한 설명과 학설이 여럿 있는데, ‘불같이 화를 내던 사람이 더 빨리 차분해 지는 것과 같다는 예가 그럴 듯하고 내 수준 과학상식에도 맞는다.


서울엔 오늘도 눈이 많이 내렸다고 친구 한목사가 자랑을 한다. 그러나 지리산 우리 동네는 눈이 온다면 비탈길이 얼어 걸핏 당산나무 아래로 차를 내려다 놓고 도정에서는 아랫마을까지 걸어 내려와야 해서 여간 고생이 아니다. 그래도 겨울은 춥고 눈이 많이 내리면 풍년이 든다니 눈 속에 겨울잠을 자면서도 마늘과 양파는 눈이불을 덮고 그 속에서 몸피를 키워가느라 바쁘다.


[크기변환]20210112_163756.jpg


오늘 볼일이 있어 거창에 갔다. 한신 후배 표선생더러 만나자고 연락을 하고, 일을 보고는 김베로니카 가게로 함께 갔다. 그 집 모녀가 어지간히 바보 노무현을 좋아해서 노대통령이 떠나고 많이도 슬퍼하더니 몇 년 전에 거창에 바보 주막이란 체인점을 냈다. 경상도에서 노무현을 사랑하는 일이란 쉽지 않다아는 친구가 탁자 위에 그의 초상을 두었더니 지인이 이곳에 편히 살려면 저런 건 치우라 하더란다


그래선지 몇 년간 그미도 고생을 많이 했다. 특히 코로나를 만나 진로를 바꿀 수밖에 없어 퓨전의 길로 들어섰다. 돈까스, 생선까스, 햄치즈까스, 새우 덮밥, 연어 아보카토 덮밥 등 한 끼 식사 든든한 먹거리를 시작했다. 술과 담배를 안 팔며 남자들의 넋두리에서도 해방됐겠거니 하지만, 술을 마시며 마음에 엉킨 실타래 같은 인생을 풀어내던 남자들에게 그미는 좋은 상담사 노릇을 했음에 틀림없다. 정신과 의사가 환자들과 계속 살다 보면 마음의 병도 전염이 되어 일년에 몇 번은 본인도 정신줄을 놓고 있지나 않는지 점검받아야 한다더니 아마 그미도 임계점에 도달했었으리라.


후배 표선생은 거창 '한들신문' 이사장으로 한신 출신으로서의 기개가 그 신문 곳곳에서 살아나도록 열정을 기울이며 혼신을 다하고 있다. 어디에 살든, 무엇을 하든 열씨미 사는 사람들은 참 아름답다. 그미 옆집에서 커피콩을 볶아 커피를 내려주던 아줌마도, 함양군청에서 내가 무엇을 부탁해도 정성껏 일을 봐주는 여자 공무원도, 코로나로 밤낮없이 고생하는 의료인들도 다들 고맙다.


[크기변환]20210112_115456.jpg


그런데, 한국의 개신교(일부겠지만)는 왜 저럴까? 아마 자본주의에 발달로 제일 병들어 버린 게, 미국 남부 개신교의 근본주의(기독교인들이면서도 흑인해방에 절대 반대하고, 세계 도처에서 정복전쟁을 벌이는 미국의 침략에 절대 찬성하고, 트럼프 같은 인간을 절대 지지하는 종교집단으로 평가받나보다)에 뿌리를 둬서 저럴까? 내 신앙의 뿌리도 저 개신교 집단에 있기에 마음이 한결 무겁다


나쁜 것, 감춰진 것이 드러난다면 그것을 바로잡을 좋은 기회이기도 한데 보수언론이 한국 개신교를 전광훈으로 대표되는 극우집단처럼 단체 광고를 해주니까 더욱 극성스러워지나 보다. 이번 코로나 사태신천지’, ‘사랑교회’, 그밖의 여러 교회들이 강행하는 대면예배나 기도회 등으로 코로나 전염에 한 몫을 하고 있어 개신교가 국민의 혐오의 과녁이 되지나 않을까 걱정스럽다.


휴천재 마루에서 월동을 하는 화분이 30여 개. 커다랗고 붉은 잎을 한 베고니아가 우리 없는 한 주간에 꽃대를 쭉쭉 뻗어 올렸다. 포인세티아나 양란이나 제라늄 같이 화려한 자태는 아닌 소박한 꽃이지만 드디어 우리 두 사람의 눈에 띄고 사랑을 받기 시작한다.


[크기변환]20210114_122323.jpg 


꽃이 피는 순간

비로소 풀이라는 이름에서 벗어난다 (이현경, 수직이 솟는다에서)


교황 프란치스코가 가톨릭 여신도들에게도 제단에 올라가 성경을 낭독하고 미사 같은 예식에 시중을 드는 독서직(讀書職)’ ‘시종직(侍從職)’을 허락한다는 칙서를 발표했단다. 20세기 후엽까지도 가톨릭에서 여자는 (부정한 동물이어서 사제가 못 되는 것은 물론, 심지어 수녀가 제단을 청소하거나 제대를 차릴 적에도) 제단에 올라가지 못했단다. 


문명 세기라는 20세기 말엽에서야 한국에서도 겨우 초딩 여자애들이 사제의 미사 집전에 복사를 서고, 여교우가 미사 중 제단에 올라가서 성경을 낭독하는 일이 허용되었는데 그걸 새삼스럽게 교황이 공문서로 반포를 하다니...  


그런 생색마저도 이것은 부제(副祭), 사제(司祭), 주교(主敎)로 이어지는 신품성사(神品聖事)가 아니고 어디까지나 세례 때 남녀노소 누구나 받는 '보편사제직'(?)의 일환이니 그리 알라!”고  교황 문서가 못을 박았으니 새해 들어 인터넷에 나돌던 윌리암 골딩의 경고를 로마 가톨릭이 언제나 알아들을지... 참 딱하다. 그래도 프란치스코 교황은 '여성 부제직에 관한 역사적 사실'을 연구해보라고 시켰다지만 가톨릭교회에서도 (개신교에 여자목사, 성공회에 여사제가 나오고 있다) 여자가 사제로 서품되는 날이라야 '풀이라는 이름에서 벗어나는' 개명천지가 오리라. 

 

 [크기변환]136397111_396429078119948_341857394348922071_o.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