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5일 화요일, 맑음


어제 새벽에 엄마가 떠나실 지도 모른다는 전화에 무작정 짐을 싸서 지리산을 떠났다. 보스코도 심장에 스턴트를 장착한지 만2년이 되어 입원해서 심장을 검사해야 한다는 의사의 말에 함께 나섰다. 엄마의 연명치료 거부에 대한 자식들의 의사를 전하기 위해 오후 2시에 미리내 실버타운의 대건효도병원에서 오빠, 호천, , 셋이 만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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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저렇게 음식을 안 드시는데 튜브로라도 음식을 넣어 드려야 하지 않겠느냐며 엉엉 우는 우리 착한 호천이에게 나이 100세를 맞아 스스로 가시겠다고 결단하셨다면 엄마의 의사를 존중해 드리는 편이 더 큰 효도다’라고 설득하여 우리는 5개 항목(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착용, 혈액투석, 체외생명유지술, 수혈)을 하지 말아달라는 문서에 큰아들 오빠, 큰딸 내 명의로 서명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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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성무일도에서 찬가 이사야서를 염송하면서 우리 인생 어느 고비에서도 우리 차례가  오면 저절로 하느님께 드리는 하소연이 나올 듯하다. 


"내 한평생이 반 고비에서 떠나고 남은 햇수는 저승 문 앞에서 지내게 되었노라.

산 사람들의 땅에서 나는 이제 주님을 뵈옵지 못하겠고 이승에 사는 사람들도 아무도 못 보리라.

나의 생명은 목자들의 천막처럼 내게서 치워지고 갊아들여

베짜는 사람처럼 짜고 있는 내 생활을 하느님은 베틀에서 잘라 내시도다."


어제 밤에도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혹시 새벽 두세 시라도 엄마가 임종하실 듯하면 가족에게 연락해도 되겠느냐?" 우리는 "물론이요. 엄마가 처음 가시는 길이고 우리도 처음 보내 드리는 길이라 무엇을 어찌할 바를 모르겠지만 연락이 오는 대로 달려가겠다"고 대답했다. 우이동에서 미리내 실버타운은 2시간이 넘는 길이지만 우리가 도착할 때까지는 엄마가 기다려주시리라는 믿음이 있다. 그래도 이제나 저제나 전화가 오려나 초조하여 밤을 꼬박 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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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호천이가 전화를 했다. “이렇게 집에서만 기다리다 울 엄마 떠나시는 걸 놓칠 것 같다. 미리내 효도병원 마당에 가서 차속에서 자든지 안성 친구 집에 신세라도 지든지 해야겠다.” 나더러 같이 가 보잔다. 이 아우의 어려서부터 '누나 어떻게 할까?'가 지금까지도 이어진다.


130분에 미리내에 도착했고, 보스코의 부탁으로 병원측에서 호천네 부부에게 코로나 검사를 하고서 음성판정이 나오면서 호천이와 올케는 엄마를 볼 수 있었다. 엄마가 제일 좋아하시는 아들 호천이의 목소리에 엄마는 굳게 감았던 눈을 뜨셨고, 엄마에게 별나게 살갑게 구는 둘째 올케의 눈물 어린 간청에 엄마는 물 한 숫갈을 넘기셨고 주사기에 넣어 입속에 넣은 유동식 뉴케어도 넘기시더란다. ‘자식 이기는 엄마 없다는 말 그대로다


엄마가 떠나시기 전 일주일이라도 아니면 단 이틀이라도 모시는게 소원이던 호천이가 엄마가 음식을 넘겼다고 너무너무 좋아했다. 네가 어제 하던 말대로 엄마 코 뚫자!”라고 했더니 다음부터는 누나 말 잘 들을께”라고 답한다. 어려서부터 언제나 내 말을 잘 듣던 착한 동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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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이 꺼지기 전 한번 펄럭인 것인지, 정말 나으시는 중인지 모르지만 우리 오남매는 무슨 축제처럼 그 소식을 주고 받았다. 엄마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내일 보훈병원 입원실에 보스코 혼자 남기고 가야 할 참인데 그 문제도 해결이 되었다.


만일을 생각하여 오늘 오후는 인근에 있는 평온의 숲’(경기도가 운영하는 시설) 장례식장, 화장장으로 가서 사정을 알아보고 예약을 하느라 정신없이 돌아다녔지만 언젠가 생길 일에 예습을 했으니 다음엔 훨씬 세련되게 일처리를 할 꺼다.


버스와 전철로 세 시간쯤 걸려 집으로 돌아왔다. 밤에는 엄마 곁에서 지키는 호천이의 전화로 화상통화를 나누며 발음은 정확하지 않지만 인지기능이 정확한 엄마와 몇 마디 나누기까지 하면서 우리 엄마의 부활의 기쁨을 일순 맛보았다.


2001년에 가톨릭에서 운영하는 실버타운에 들어가시며 가톨릭에서는 유명 인사인 성서방한테 누를 끼쳐서는 안 된다시며 엄마는 한마디 말씀이 없어 그곳 사람들이 엄마를 모두 덕스럽다고 칭송했다. 함께 그곳에 가서도 매사에 불만이던 이모와는 대조적이었다. ‘효도병원으로 옮겨가실 때도 독실에 모시고 간병인을 쓰겠다는 우리들의 말에, ‘난 사람들 있는 곳이 좋더라며 우리들에게 경제적인 짐을 지우기 싫은 마음에 기어이 3인실로 가셨다.


이번에도 새해 들어 당신 나이 100세를 꼽으시면서 요즘 성탄시기에 나오는 시므온의 기도문대로 주님, 이제야 말씀하신 대로 당신 종을 평화로이 떠나게 해 주셨습니다. (제가 살아온 100년 세월에)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라는 말씀을 속으로 헤아리고 계시는 듯하다. 50년 넘게 장로로 살아오신 분다운 기도이리라.


이젠 휘이적휘이적 하느님께 가시겠다고 마음을 잡수시고도 우리의 안타까운 마음을 받아주셔서 자식들과 맨정신으로 작별하는 여유를 내주신 것 같아 과연 엄마는 엄마다. 핸드폰을 바라보시는 엄마를 향해 엄마, 사랑해.”를 몇번이나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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