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227일 일요일, 겨울비


금요일 오후, 너무 방안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아 보스코에게 산보를 좀 가자고 했다. 진호가 어려서(지금은 서른이 넘었다) 한겨울에 얼음을 깨고 수영하던 골짜기를 지나, ‘황선생네 부서진 집터밑으로 이어지는 언덕길을 내려가, 돼지막 옆으로 난 길은 60번 지방 도로로 이어진다. ‘천왕봉길이다. 서울에는 첫눈이 내렸다지만 우리 사는

이 골짜기에선 눈 구경을 아직 못했는데 그래도 지리산 상봉들은 흰눈꽃을 화관처럼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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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은 잔뜩 흐린데 영하는 아니어도 찬 강바람은 겨울의 맛을 충분히 보여준다. 바위 틈새로 흐르는 강물이 얼음을 녹이면 회색빛 해오라기가 이른저녁 먹이를 찾아 기웃거린다. 과연 요기라도 할 수 있을는지.... 올해는 아직 청둥오리도 원앙의 무리도 보이지 않는다. 그리 많던 깡패 물까치떼도, 덩치에 맞지 않게 그놈들에게쫓겨 다니는 까치와 까마귀도 요즘은 눈에 잘 안 띈다. 휴천재 현관문이 열려 있어도 집안으로 날아들어 옛둥지를 차지하고 신발장에 똥칠을 하던 딱새도 더는 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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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토요일. 이웃 동강마을7년 전 이사 들어온 친구를 찾아갔다. 막 귀농했을 때 면사무소에서 그미를 만나보고 화려한 이미지의 여인에게서 이곳 산중생활을 어떻게 견디어 낼까 했었는데, 7년만에 본 그미는 완벽하게 시골아낙으로 변신하여 “귀촌을 참 잘했구나!하는 안도감을 주었다


‘산청 왕산초입의 큰 바위에 몸을 걸치고 넘어가는 해를 바라보던 소나무에 필이 꽂혀 그 땅을 사고 땅 이름을 솔바우정원이라 했단다. “집 앞 저 아래로 흐르는 엄천강처럼 힘은 엄청 드는데 너무너무 행복하다, 밤나무 복숭아나무 호두나무 아로니아 등 처음엔 묘목장수 말대로 아무 나무나 밀식했다가 그 뒤 절반은 베어버렸다고, 아무것도 모르고 욕심껏 채소를 심다가 이제는 스스로 자기 몸과 상의해가며 가꿀 만큼 조정을 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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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건축사무실을하던 남편과 골프웨어가게를 하던 자기가 화려한 도시의 한 때를 잊고 어떻게 산골에 적응할까 스스로도 궁금했는데 모든 생물을 사랑스런 눈으로 보는 눈이 열리면서 더없이 행복해지더란다. 산중턱에서 내려다 본 동강의 들판이 품 안에 안겨오니 어디 빈말이겠는가? '이 코로나 정국에 우리들만 너무 편한 것 같아' 떠나온 동네에 남겨진 친지들에게 되레 미안하단다. 성공적인 귀촌 사례가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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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절25일 새벽 320분 바티칸의 베드로 대성당에서 거행되는 교황 미사를 관람하는 것으로 하였다. 대성당 교황제대가 아니고 뒤쪽 베르니니의 영광앞의 제단에서 드리는 소박한 미사였다. 전 세계가 처한 이 비참한 상황에 인류의 고충을 함께 나누는 미사였고 교황은 전세계 가톨릭신자들이 코로나로 크게 위축되어 블루 크리스마스를 맞고 있음을 알고서 하느님이 우리를 과대평가하실 만큼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요지의 격려를 보내셨다이런 때일수록 인류사회는 신뢰받는 종교지도자의 따스한 음성을 필요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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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한 아들이 주어졌습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당신의 모든 기쁨이신 외아드님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하느님에 대한 우리의 배은망덕과 수많은 우리 형제자매들에 대한 불의를 바라보면 의문이 생깁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이토록 많이 주신 것이 잘하신 일인가? 주님께서 아직도 우리를 믿어 주시는 것이 잘하신 일인가? 그분께서 우리를 너무 과대평가하시는 것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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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과대평가하고 계십니다. 우리를 죽도록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렇게 하십니다. 우리를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으십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이것은 바로 우리 마음에 들어오기 위한 그분의 비결입니다.” 

https://www.vaticannews.va/ko/pope/news/2020-12/papa-francesco-messa-notte-natale.html


여드름 투성이의 총각과 죽은깨 투성이의 처녀가 만나서 "처음 너를 바라보던 순간, 내 마음에 하늘 열리고..."하는, 터무니없는 노래가 저절로 흥얼거려지는 것으로 미루어, 사랑을 하면 상대방을 과대평가하게 마련이니(적어도 콩깎지가 씌워 있는 동안은), 하느님이야말로 인류라는 대상을 창조하실 적에도, 섭리하실 적에도, 구원하실 적에도 마냥 과대평가해오셨음에 틀림없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니까 그분의 눈에서는 도무지 콩깎지가 떨어질 줄을 모르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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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한 해의 가장 분주했고 손님들이 제일 많이 오가던 성탄절과 연말이 우리 부부 둘이서 조용히 보내는 은둔의 계절로 바뀌자 코로나의 상항에서 누구도 자유롭지 못함이 실감 났다. 인류의 하찮은 실수가 지구 전체를 어떤 불행과 파국으로 끌어갈 지를 하느님께서 이 해에 전 인류에게 집중교육을 시키셨으니 지금 쯤은 인류사회가 좀 깨어날 만한데.... 


거국적 코로나 사태로 성당이나 공소도 못 가고, 오늘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주일미사도 함양본당의 유투브 미사로 대신했다. 모든 소통과 모든 만남이 사실상 단절되고 금지되는 상황에서 그래도 안심하고 만나는 것은 가족이라는 최소단위 뿐이어서 목숨이 하느님 덕분에 살아가는 선물이고, 그분의 사랑 안에서 의지하여 생존하는 부부간, 부모자식간이야말로 하느님께 받은 최고의 선물임을 감사드리자는 주임신부님 강론이 뜻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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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둘째딸 실비아의 보호를 받고 있던 까망아기죠세피나와 까망성모라우라가 서둘러 아기의 비자를 받아온 아빠 토마스를 인천공항에서 만나 오늘밤 고향 수단으로 떠난단다. 그집 막내 종건이가 그 모녀를 공항에 데리고 가서 저녁 먹이고, 티케팅 해주고, 그 모녀를 토마스에게 넘겨 그 가족의 출발을 확인한 후 돌아왔다니 이번 성탄절에 '베틀레헴 목동 노릇' 제대로 했다. ‘우리 순둥이네복 받을 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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