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213일 일요일,


휴천재의 오후. 심한 바람이 정자에 걸어 말리는 무청 시래기를 빨래처럼 마구 날린다. 멀리 지리산에는 눈보라를 휘날리며 바람이 일고, 가까이는 양파밭 비닐 멀칭 위로 찬비가 흩뿌린다. 어린 양파는 새벽에 얼었던 허리를 펴고 단비에 활짝 두 팔을 벌리지만 내일 새벽에는 영하로 떨어진다니 얼어죽지 않을까 걱정이다. 하기야 이 추위를 다 이겨내고 구근을 만들어야 단단하고 다디단 양파가 나온다. 어차피 양파 농사를 포기했던 차였으므로 늦게 심은 파씨에서 몇 망이라도 나온다면 큰 소득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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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친구들이 너도나도 눈 내린 풍경을 실어 나르며 코로나로 삭막했던 가슴을 다독인다. 모두 누구한테라도 무엇에라도 위도 받고 싶은 심정이다. 이렇게 우울하고 삭막하고 아득한 시간을 보낸 2020, 누구 말마따나 '일 년 열두 달을 내내 열두 터널로만 달려온' 기분에 모두 지쳐간다. 그래도 포탄이 떨어지는 전쟁이 아니다. 전쟁이라면 피할 수도 없지만 이 정도의 병마는 우리가 조심하면 잘 살아낼 수 있다.


이곳 문정리야 오가는 사람들이라야 뻔하고 몇 달 째 전주민이 자가격리 중이니 별일이 없는데도 노인회 회장이 마을 방송에서 거듭거듭 경고를 보낸다. ‘자손들 집에 가지 마라!’ ‘외지사람이나 자손들에게 당분간 오지 말라고 해라!’ ‘우체부나 택배기사가 와도 마스크를 쓴 채로 맞아라!’ ‘우편물 택배상자를 직접 받지 말고 거기 두고 가소라고 해라!’ 자세히도 타일러준다. 조심은 하지만, 점점 따뜻한 인간성이 메말라 가는 주변에서 너무 두려워하지는 말아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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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오랫동안 동네에만 있던 친구들은 이장 몰래 오가며 점심도 먹고 말벗도 한다. 우리도 그제는 도정 체칠리아네에서 살짝 점심을 먹고 왔다. 산속이지만 오가는 길에 사람들을 만나면 부지런히 마스크를 쓰는 건 우리도 나라 말씀에 동참한다는 뜻이다. 아짐들은 자식들이 하도 성화를 해서 집에서 혼자 테레비를 보면서도 마스크를 쓴단다. 마을회관도 폐쇄된 지 오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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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코와 가장 친한 친구 수복씨의 막내 동생(그도 세례명이 보스코’)이 세상을 떠났다. 여러 해 병상에서 고생해서 우리도 두어 번 방문했었다. 한 주간 전부터 뇌사상태였는데도 가족의 연을 놓기가 그렇게 힘들었나 보다. 우리야 이미 연명치료를 거부한다는 서류를 만들어 놓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인공호홉에다 이생과 저승의 경계를 짓게 되면 섣불리 호흡기를 떼기가 힘들다. 그래서 가족이 서로 고생하다가 드디어 용기를 내어 엊그제 그를 떠내보냈단다.


보스코가 중학교에 다닐 때 태어나서 아장아장 걷고 엉아라고 쫓아다니던 그 꼬마 생각에, 친구 수복씨는 절대 오지 말라신신당부지만, 멀리 가는 길을 그냥 보낼 수 없다고 광주 임동성당의 장례미사에 갔다. 사람들이 정말 없다. 주교좌성당인데 그 넓은 성당에 스무 명 남짓한 사람이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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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제3주일. 오늘 공소에도 다섯 명이서 예절을 올렸다. 대림초가 없던 차에 어제 임동 안수녀님이 대림초를 두 세트나 선물해 주셔서 광주에서 돌아온 길로 울적한 마음을 달랠 겸 측백나무 가지를 얻어다가 대림초 두 세트를 꾸몄다. 하나는 휴천재 아침저녁 기도에 쓰고 하나는 공소 제단에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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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용산댁 집에 불이 켜졌다. 그 집에 불이 꺼진지 아마 서너 달도 더 된 듯하다. 반가운 마음에 내려가 문을 두드리니 아들이 둘 다 와 있었다. 아줌마는 너무 안 좋아 더는 혼자 있을 처지가 못 되어 가까운 요양원에 모신단다. 마을 어르신들이 이런 과정 하나하나를 거쳐 마을을 떠나가 다시는 집으로 못 돌아온다


밤처럼 어둡고 겨울처럼 추운 날에 마디마다 쑤시고 아픈데 혼자 집에 있다면 얼마나 힘들까? 그렇게 영원히 삶을 견뎌야 한다면 더 고통스럽겠지? ‘죽을 수 있다는 게 축복이라는 생각을 하며 돌아오는 길에 밤하늘을 본다. 눈이라도 내릴 것 같이 어둡던 하늘은 여전히 비를 쏟아 붓는다눈물이다. 우리 인생들이 가여워 하늘이 울어주신다


서울집 마당의 성모상과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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