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210일 목요일, 흐림


크기변환_20201211_083301.jpg  


이장의 마을 방송은 정말 알아듣기 힘들어 앞뒤 이야기를 듣고 퍼즐 맞추기를 해야 한다누가 뭔가를 애타게 찾는다는 얘긴데 '다시 말씀 들겠슴다' 하는 재방송을 찬찬히 들어 보니 유노인이 어디선가 강아지를 하나 얻어 왔나보다. 집에서 오래 키우던 조막만한 개가 집에 다니러 온 아들 차에 치어죽었고 그 개를 잃고 무척이나 적적해하더니 개가 새로 생겼나 보다. 그런데 노인이 새로 온 개를 잃어버리고 애타게 찾고 있으니 명찰 안 단 강생이를 보면 주인 영감님께 연락바란다는 방송이었다.


요 며칠 강아지 한마리가 휴천재에 나타나 마당을 돌며 땅도 파고 진이엄마의 새 운동화도 물어다 은목서 밑에서 물어뜯어 놓고 아무데나 똥을 쌌다. 보다 못해 진이아빠가 개목줄을 해서 마을 당산나무 밑에 데려다 묶어놓았다. 내가 전화를 해서 당산나무 밑에 개가 묶어놓았으니 데려 가라고  그 집에 전화를 해줬다. 그러나 방송과는 달리 유영감님은 약주 드시고 함양에 있는 아들 집에서 편히 주무시고 계셨다. 당산나무에 묶어 두었는데 주인이 며칠이고 안 돌아오면 개는 배고파 어쩌나 내 고민이 하나 더 늘었다.


크기변환_20201210_142456.jpg


어제 스위스 아들네한테 성탄선물 EMS를 부치려 마천우체국에 갔다가 그곳 손짜장집에서 해물쟁반 간짜장 2인분을 주문하여 내 차로 휴천재에 배달했다. 시골이라 짜장면을 얼마나 많이 주는지 보스코와 나 둘이서 먹고 진이아빠도 먹고 남은 짜장을 쟁반 째 내놓았더니 그 낯선 강아지가 마저 먹고, 그러고도 남은 것은 동네 길냥이들이 청소를 했으니 적어도 다섯 식구(食口)가 먹은 셈이다. 이렇게라도 먹고 살아야 할 생물이니 어찌하나. 보스코도 며칠 전 내가 전주 간 날 음식을 일부러 남겨 그 강아지에게 먹인 적 있단다. 시골 인심이라 강아지 끼니걱정은 나만 한 게 아닌가 보다.


오늘 점심 후 산보를 하러 내려가다 보니 유영감님댁 마당에 그 강아지가 끌려와 묶여 있다가 심심하던 차에 반갑다고, 그 동안 나랑 낯을 익혔다고 라면박스를 꽁지로 북처럼 두드린다. ‘둥둥둥둥얼마나 열정적이고 리드미칼한지 다음엔 난타공연이라도 시켜야겠다.


크기변환_20201210_143608.jpg


강 건너 송전길을 걸었다. 강물은 늙은 어머니의 젓줄처럼 말라 있고 까만 물줄기는 어머니의 속처럼 타고 있다. 여름 장마에 무섭게 강바닥을 훑고 달려가던 그 황토강은 다 어디로 갔나? 물이 빠진 강변에 크고 작은 돌더미들이 새벽 인력시장에 나온 일꺼리를 못 찾은 사람들 처럼 무심하게 서성이고 있다. 지리산둘레길 4번인데 오가는 사람도 기다리는 사람도 없이, 한때는 그 많던 행인들을 불러 모으던 가게도 숙소도 한산하기만 하여 덧없는 세월에 마음만 씁쓸하다.


크기변환_IE002585213_STD.jpg


어제 영화 두 교황을 다시 보았다. 영화관에서 이미 보았지만 30분이나 잘라낸 것이었는데 넷플릭스에서는 두 시간 그대로 방영하였다. 베네딕토 16세와 프란치스코 교황 두 분이 주고받는 대화가 가톨릭의 뜻있는 인사들이 오래 고민해온 문제들이어서, 또 우리 눈에 익숙한 바티칸의 정경이 너무 친근해서 두번째 보아도 지루하질 않았다


영화 첫장면에서 장례식을 보이는 요한바오로 2세에게 보스코가 대통령 신임장을 제정하였고 큰아들의 결혼 때에 두 집안이 함께 그분을 알현하였다.  베네딕토 16세의 선출과 취임에 참석하고 카스텔간돌포 여름별장으로 찾아가 그분에게 이임인사를 드렸다. 보스코는 나랏일로 세 번이나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나본 적이 있어 우리가 지내온 삶에 깊은 흔적을 남긴 분들이다.


크기변환_DSCN3821.JPG


크기변환_사진 020.jpg


크기변환_크기변환_1550333.jpeg 

현재 우리에게 당면한 신자유주의, 자연재해와 코로나, 난민 문제와 국제적인 불의를 두고 교회 지도자들이 느끼는 무게를 일반신자인 우리도 함께 짊어지고 가야하기에 영화의 줄거리가 더 무겁게 느껴졌다. 요즘 와서 소담정 도메니카가 유난히 쳐져 있기에 올라오라고 해서 오늘 그 영화를 보여주었다. 우리와 비슷하게 문화생활에서 배재되어 살고, 교회문제에 대한 고민이 깊은 사람이어서 저녁을 먹으며 그 영화를 두고 오랫동안 토론을 했다.


대림절(待臨節)이다. 과연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오신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그렇게 기쁜 일인가? 모두 무감각해지고 전염병으로 서로 단절된 지금 세상에 과연 그분이 오셔서 무엇을 하실 수 있을까? “내 집 앞을 그냥 지나쳐가실 그분이 두렵다.”던 옛 성인 성아우구스티누스의 탄식이 나도 두렵다.


전지구의 비참상을 두고도 침묵하는 기독교, 현정권의 검찰개혁에 오로지 반발하는 보수언론의 증오 앞에서 그래도 정의구현 사제단이 앞서서 검찰개혁을 지지하고 뒤이어 불교, 개신교, 원불교 등의 신앙인들이 나서는 소식이 반갑다.


크기변환_20201211_093750.jpg


크기변환_20201210_152709.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