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21일 화요일, 맑음


함양농업대학을 다닐 때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 도회지에서 살다 귀촌이나 귀농을 도모하려면 꼭 세 가지 조건을 명심하라고 했다. 첫째, 남자라면 아내의 동의를 받고 꼭 함께 지내도록! 남자들은 대부분 전원생활에 대한 환상이 있지만 여자들은 일에 치이거나 물것에 질리면 겁을 내고 도시에서 누리던 혜택을 좀처럼 포기하지 못한다. 함께 내려와 살다 아내가 도시로 돌아가버리거나 혼자 내려온 남자들의 농촌생활은 너무도 삭막하고 측은하고 쉽사리 건강이 상한다.


휴천재 마루로 피난해 들어온 꽃들의 뽐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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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스에서도 그 아름다운 풍광에서 자라나 산이라면 꿈속에서도 행복한 에르미니오라는 사내가 있었다. 미국 맨해튼에 살면서도 여름휴가철이면 알프스로 날아 왔는데 그의 아내는 절대 함께 오는 일이 없었다. 그미는 도서관 박물관 전람회 연극 영화관 등을 관람하거나 대형 백화점에서 쇼핑을 하는 게 취미여서 그미가 산으로 들어오는 날부터 비극은 시작된다. 남자만 혼자 와서 한두 달 살다 가더니 격년으로 바뀌고, 몇 년 전엔 아예 안 오기에 우리가 그의 빈집에서 지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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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는 물이 나오느냐. 아무리 아름다운 집이라도 물이 없으면 완전 개고생인 걸 서울 우이동 살이 처음 십년에 뼈저리게 배웠다. 비가 오면 한 이삼일 건수가 나오다가 물이 끊어지면 모터가 타서 이도저도 못했다. 돈을 많이 주고 바위를 뚫고 깊게 물을 판 정선생 댁으로 물동냥을 다니던 때의 기억 때문에 지금도 내겐 버려지는 물이 모두 아깝다. 우리가 94년에 휴천재를 지으며 제일 먼저 한 일도 지하 120미터까지 바위를 뚫고 우물을 판 일이다. 어떤 가뭄에로 끄떡없으니 동네 사람들이 다 써도 남을 물량이라던 아저씨의 말이 뻥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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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가 도로! 길이 있기는 있는가, 맹지는 아닌가, 집까지 도로가 닿는가, 얼마만큼의 접근성이 있는가, 넓이는 어떤가... 그런데 바로 우리 집이 도로문제에 걸린다. 유능한 운전자라면 트럭이나 택배도 다니지만 강남에 살며 직진만 할 줄 아는 사모님이라면 Z 코스에다 기역자로 꺾어야 하는 드물댁 담모퉁이에서 늘 걸린다. 물론 나야 눈을 감고도 운전하지만 내 친구가 제네시스를 새로 뽑아 시운전하러 우리한테 왔다가 조수석 문짝을 부셔먹고는 다시는 안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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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이곳을 떠나면 길도 잊힐 텐데, 우리 떠난 후 사람들이 휴천재까지 편하게 닿을 도로를 미리 마련하겠다고 요즘 보스코의 마음은 바쁘다. 어제도 아침내내 이 근방 지적도와 구글지도를 들여다보며 궁리를 하기에 차라리 군청 지적과에 가서 상담을 받고 오자했다. 책상을 떠나 읍내 가기를 그리도 싫어하는 그가 벌떡 일어나 따라나서니 평소에 그 걱정이 많았나 보다. 오늘도 옆산을 현지답사하며 골돌히고민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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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후에는 텃밭의 무를 뽑았다. 꽤 많이 심었다고 생각했는데 여기저기 나누다 보니 아직 못 준 사람들이 더 많다. 하루 세 끼에서 정작 밥을 먹는 것은 점심 한 끼뿐이어서 열 포기도 많은데, 배추는 200포기도 더 심었다. 김장해서 나눌 욕심이 아직도 많아서다. 아무튼 가을걷이는 시골생활을 참으로 흐뭇하게 만든다.


오늘은 도정 체칠리아가 내려와 배추 20포기에 무 10개를 가져가며 "김장은 엊그제  했는데 딸네들이 가져가고 나니까 배추 세 폭이 남은 게 전부"란다. 하는 수 없이 자기 먹을 건 더 해야겠다고 무 배추를 얻으러 왔는데, .선생이 병약한 아내가 김장하는 고생을 또 다시 한다는 생각에 속상해 한단다. 내년엔 딸이고 뭐고 없다! 다 각자 하라고 해!”하며 역정을 내더니 그만 배탈이 나서 누워 버렸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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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야 40이 넘은 딸들이라면 70 넘은 엄마한테 김장을 해 드릴 나이도 됐지만 어미들의 마음이 안 그렇다나는 내일 시작할 배추 김장 준비와 양념 일로 오늘 하루를 보냈다. 무를 씻고 파를 손질하는데만도 한나절이 걸렸다. 절인 갓을 택배로 부치기도 하고 들깨 말린 것을 화계 방앗간에 싣고 가서 기름으로 짜오기도 하고.... 


어제는 11, ‘죽은이들을 사랑하는 계절의 마지막 날이어서 저녁기도 대신 로사리오를 바치면서 세상을 떠난 친인척과 친지들을 떠올리고 이름 부르면서 5단을 바쳤다. 5단이 아니라 15단을 바쳐도 묵주알이 부족할만큼 가까웠던 지인들이 이승에서 저승으로 거처를 옮겨 우리를 기다리고 있음을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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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외국의 벗들과 나누는 보스코의 성탄인사도 금년에는 제동이 걸렸다. 교직과 공직에서 퇴임한 후로 해마다 보내는 카드가 줄다가 금년에는 해외 우편 35장을 부치러 갔는데 코로나로 보통우편이 차단된 나라가 너무 많아 여나믄 장은 부치지도 못했다. 지인들이 세상을 떠나기도 하고, 답서나 소식이 끊기면서 소원해지기도 하고... 이렇게 세월이 가면서 인연의 끈도 차츰 놓아야 함을 절감한다, 한 해의 마지막 달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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