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331일 목요일. 흐림


수요일 아침 일찍 진이엄마가 2층엘 왔다. 무슨 급한 일인가 싶어 둘이서 하던 티벳요가를 멈추고 그미를 맞았다. 남호리 우리 땅에 우물을 파겠단다. 함양군에서 제일가는 블루베리 농장 '송지농원'이 자리잡은 남호리 골짜기 전체를 조사해보아도 우리 밭 귀퉁이 밖에 물자리가 없더란다. 그동안 농민들이 경작에 필요한 우물을 파는 일에 경비 절반을 정부에서 지원해왔는데 지난 3년 그 지원이 끊겼다 올해 마침 차례가 와서 진이네 농원에 지원금이 할당되었단다.


우물 파는 경비 800만원중 400만원만을 군에서 지원한단다. 한전에서도 이번에 '송지농원'까지 무료로 전기를 놓아준다니 남호리 우리 밭에도 전기와 우물의 혜택이 갖추어진다니 잘 됐다. 진이네 농장에 컨테이너도 갖다 놓았다는 소식에 우리 땅에도 컨테이너를 하나 구해다 놓기로 작정하고 어제 군청에 가서 컨테이너 설치 허가를 신청했다. 담당직원은 '임야에 설치해서 안 되고 전답에만 허가되며', '3년 기한에' '사람이 묵거나 자서는 안된다'는 주의 사항을 들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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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에서 농민들에게 이렇게 지원을 하건만 시골에 정착하려는 젊은 사람은 거의 없고, 우리가 사는 문정리만 해도 반백년 세월 땅을 부치던 바깥노인들은 대부분 이미 '앞산 양지 바른 비탈에 뗏장 덮고 누웠고' 안노인들마저 허리가 기역 자로 앞으로 꺾이거나 S자로 뒤로 휘어 두 팔을 휘젖는 동작으로 겨우 걸어다닌다. 그러다 한번 몸 져 누우면 다시는 일어나기 힘들다.


드물댁도 작년에 쓰러진 후 걸음걸이나 몸 놀림이 현저히 굼뜨고 걸음도 반듯하지 않아 보기에 사뭇 안쓰럽다. 동호댁 가밀라 아줌마가 엊그제 아침 일찍 도우미 아줌마의 도움으로 읍내 병원엘 갔단다. 우리 동네에서 제일 정정하던 아줌마여서 무슨 일인가 싶어 문병을 갔다. 전날 저녁 밥상에서 일어나는데 갑자기 다리가 꺾이고 삭신이 쑤셔 일어설 수도 걸을 수도 없더란다. 밤새 혼자서 진통제로 견디면서 날이 밝기만 기다렸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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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살아온 집에서 혼밥에 혼잠으로 지내는 아짐들이 대부분이어서 문정상회 아줌마처럼, 한밤에 쓰러져 혼자 죽는 경우도 시골에서는 흔하다무릎 양쪽 수술을 하고서 몇 달 만에 집에 돌아온 거문굴댁 마르타 아줌마한테도 병문안을 갔는데, 전혀 움직이지를 못한다. 마천 요양원에 일 다니는 본동댁 얘기로는, 그 요양원에 가 있는 우리집 아래아래 용산댁도 자기를 볼 적마다 "나 집에 데려다 도. 퇴근길 몰래 나 실어다 주면 안 되나?" 애원하지만 어떻게 손 쓸 길이 없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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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수요일은 '이여인터 독서모임'의 날. 아무도 몰랐던 이야기라는, 폭력 피해 이주여성들의 생존분투기를 읽고 줌 화면으로 토론하였다. 이주여성에게 아니면 장가도 못 가는 루저들이 가난 때문에 시집온 여인들에게 얼마나 난폭한지이주여성의 노동에 얹혀사는 무능력하고 염치없는 사내들이 얼마나 많은지, 특히 시어머니라는 위치의 여자들이 그미들에게 얼마나 가혹하게 행세하는지... 눈물겹고 통탄스러운 사례들이 우리를 무척 분개하게 만든다


남편의 폭력 때문에 우리 쉼터로 몸을 피해 온 이주여성들이 봉사자들에게 '친정엄마'를 기대하며 왔다가 '시어머니'를 만나 맘 고생한다는 경험담은 고갤 끄덕이며 반성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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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에 휴천재 이층의 창문을 수리하고 미쳐 마무리 못한 일을 손질하러 오늘 군산에서 일꾼 둘이 왔다. 화장실 창문 크기를 잘못 재서 새로 해 온 창을 다느라 먼저 창을 털어내고 달았다. 마루의 싱크대앞 창문도 아쿠아 유리로 했던 것을 맑은 유리창으로 바꿔 달아주었다. 내가 이층에서 음식을 장만하면서도 뒤꼍의 대숲과 저만치 소나무 언덕을 감상하면서 일하는데 시공자들은 밖에서 집안을 들여다볼까 봐 아쿠아 유리로 했다나?


도시인들은 아파트 외벽 저편의 이웃, 자기 누운 침대 위 천정 위에 놓였을 위층 아파트 침대, 화장실 담벽 저편에 누군가 앉아 볼일을 보고 있으리라 는 경계심으로 살아가기에 내가 창을 통해 밖을 내다보는 트인 시선보다 건너편 아파트에서 나를 들여다볼지 모른다는 관음 시선에 더 신경이 쓰이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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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드물댁이랑 함께 뜯은 쑥으로 국을 끓여 일꾼들과 함께 점심을 먹고서 두 남정이 떠난 뒤 그들이 남겨 둔 뒷정리와 청소에 오후 한나절을 보냈다. 2005년 로마에서 암으로 죽어간 친구(주교황청 오스트리아 대사 부인)이 내게 만들어준 장미 코사지가 망가졌어도 차마 못 버리던 참이었는데 오늘은 그것마저 과감히 버렸다가 그미가 서운해 하지 않을까 마음에 밟혀 다시 쓰레기통에서 꺼내 본래 있던 자리에 올려놓았다


버리기가 이토록 힘드니 내게 남은 저 많은 살림들(우리 딸 순둥이가 지적하기로는 내가 서울집 위아래층에 따로따로, 휴천재 위아래층에 따로따로, 그러니까 무려 네 집 살림을 차려 놓고 있다는데 살펴보니 맞는 말이다)을 어찌 놓고 떠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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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 뜨락의 두 그루 벚꽃과 자두꽃이 어제오늘 하루 새에 활짝 피었다. 며칠 후면 아낌없이 꽃잎을 몽땅 떨굴 화려함이지만 어차피 만사에도 봄철에도 끝은 있는 법이고, 그리고 끝이 있어 우리 삶이 아깝고도 고맙기에 지금의 내 나이면 버리는 일 역시 두려워 말라는 깨우침을 익히는 중이다. 오늘로 3월이 다 가고 2022년도 4분의 1이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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