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130일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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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친구를 만났다. 90년대부터 로마에서 한인식당을 하다가 여행사에 외상이 걸려 계속 외상을 줄 수도 없고 안 주면 먼저 걸린 돈을 받을 수 없는 딱한 처지가 됐다. 대부분 식당들의 그런 약점을 노려 여행사는 덤핑 거래를 하는데, 그렇다고 그들이 부자가 되는 것도 아니고 언젠가는 그들도 부도가 나서 본인들도 망하고 만다. 친구는 그 돈을 받으려 한국법원에 재판을 했는데 많은 돈을 들이고 승소는 했다. 그러나 돈이 없어서 못 준다.’ ‘몸으로 때우겠다.’고 버티는 데야 어찌할 방법을 못 찾고 얼마나 애를 태웠으면 그만 본인이 몹쓸 병에 걸리고 말았다.


아프고 나니 돈이 문제가 아니더란다. 그 문제를 더는 생각지 않고 잊어야 살아날 것 같더란다. 그래서 모든 걸 포기했노란다. 정말 도사의 경지였다. "더는 욕심 안 부리고 하루 세 끼 먹고 헐벗지 않으면 그것으로 족하다. 남의 돈을 탐하거나 돈 많아 좋다고 느낄 나이는 이제 고개를 넘었다. 70이 넘어서는 욕심이 추해 보이니 마음을 내려놓는다." 진솔한 고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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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대구를 거쳐 군위에 갔다가 밤늦게 돌아왔다. 저녁 620분 함양행 버스를 타러 서대구에 갔더니 15분에 이미 떠났단다. 좌석이 차면 시간이 안 되어도 떠난다나? 황당했지만 우선 거창엘 가면 함양 가는 차가 있으려니 하고 다음 차를 기다렸다. 요즘 18년 된 내 소나타에 오렌지색 체크 불도 상시로 켜져 있고, 운전하기도 싫고, 버스를 타면 차 안에서 책도 볼 수 있어 일석삼조인데 버스회사마저 이렇게 약속을 안 지키면 어쩌나? 환경운동가 윤주옥씨처럼 전국을 쉬지 않고 다니면서도 늘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사람들을 보면 참 존경스럽다.


일요일. 새벽 6시 평화방송 TV로 미사를 보고, 읍내로 나가 서울행 버스에 올랐다. 네 명의 딸 중 '어무이가 데꼬들어온 딸'로 불리는 둘째 '순둥이'의 환갑이어서 미리 시장을 보고 내일 점심을 마련하려면 분주할 것 같아 서울집에 도착하자 밤늦도록 테이블셋팅도 미리 했다. 이런 일은 보통 보스코가 하던 일이어서 평소에는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가 없으니까 나름대로 요긴한 몫을 책임져 왔음을 알겠다('내려가면 칭찬을 해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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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순둥이는 올해 함께 환갑을 맞는 동갑내기 초딩 동기 수녀, 동갑내기 옆집 (남자)친구도 데리고 와서 합동 환갑잔치를 했다. 순둥이가 오늘 특별 메뉴로 나한테 주문한 터라 피자 파티로 정했다. 전날 밤 반죽을 해 저온 발효를 시켰다. 4계절 피자, 루꼴라 피자, 야채 피자, 고르곤졸라 피자를 굽고 샐러드를 식탁에 냈다. '큰딸' 이엘리는 케이크로 약밥 하트떡을 해오고, 아침 일찍부터  도와주러 온 온 막내 '꼬맹이'는 꽃과 과일을 가져왔다. 딸들에게 '이모'인 한목사도 축하하러 오고 서로 편한 사이로 점심을 함께 준비하니 힘들지 않았다. '돌쟁이 세 친구'가 행복한 하루였으니 셋에게 회갑상을 차려주는 우리도 덩달아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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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후 부지런히들 설거지를 하고, 그릇들을 제자리에 놓고, 바닥 청소까지 하고 집을 나오자니 함양행 저녁 7시 차를 타기에도 빠듯했다. 고맙게도 '꼬맹이' 엄엘리가 강변역 버스터미널까지 태워다 줘서 불편 없이 왔지만, 당분간 꾸준히 대중교통을 이용하려 노력은 해 봐야겠다.


11시가 넘어 휴천재에 돌아오니 나 없는 이틀 보스코가 식당채에 크리스마스트리의 기본을 해 놓았다. 뒷마무리와 구유 설치는 내 몫이니 오늘은 구유 만들기 놀이였다. 보스코는 어제 텃밭에서 오이, 고추, 토마토 서리걷이를 해서 청량 고추를 따다 놓았고 방울 토마토와 큰 토마토도 한 자루나 따다 놓았다 그의 말마따나 아내가 없어도 '틈틈이 가사 노동을 하는 틈에' 아우구스티누스 번역사업을 하는 성실한 남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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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성탄과 연말은 휴천재에서 지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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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새벽부터 예고된 겨울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빗소리에 잠을 깼다. 동네 앞 휴천강에 내린 비가 안개로 피어오르다 산 허리를 끌어안고 하늘 위로 순식간에 솟으면서 구름이 되곤 한다. 산속에 지는 겨울 빗소리는 사흘 간의 내 여독을 풀며 여유를 부려도 용서가 된다는 말인데 식당채에 가득 벌려 놓은 남편의 부지런함 덕분에 고단한 몸을 일으킨다. 역시 몸은 주인의 의사에 따라 성격이 결정된다. 쑤시던 몸이 주인 맘먹기에 따라 멀쩡해졌다. 건강해서 다행이다.


오늘은 11월의 마지막 날. 아침 기도를 올리며 보니 안드레아 사도의 축일. 염안드레아 추기경이 서울대교구장 소임을 마치는 날이라는데 김추기경님 그늘이 커서인지 이분과 그 선임자는 사목자로서도 내 기억에 참 존재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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