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223일 화요일, 맑음


아침 일찍 으로 회원들이 곳곳에서 함께 드리는 비대면 미사를 끝으로 아들의 본가에서의 연례피정은 끝났다. 회원들만의 피정이고 미사여서 우리 두 부모는 카메라가 잡히지 않는 자리에서 미사를 드리면서 키레네 여자의 처지가 떠올랐다. “주님, 그러나 상 아래 있는 강아지들도 자식들이 떨어뜨린 부스기는 먹습니다.”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아무렴 어때, 한 주간 동안 아들과 함께 있었는데? 언제나 우리의 간절함이 우리를 주님께 더 가까이 다가가게 하고, 사랑하는 이와 이어질 끈이 생길 때 우리의 발걸음은 더 바삐 움직인다


9시에 휴천재를 떠난 두 사람은 오후 1시에 관구관에 도착했다면서 벌써 회의에 참석하고 있단다. 살레시안들은 늘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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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후 보스코는 진공청소기를 돌려 이층을 청소하고, 나는 검은색 빨래, 침대시트 등 흰색 빨래, 제대보와 성작보, 장백의 등 미사에 사용한 빨래, 셋으로 분류해 위아래층 세탁기를 돌리고, 손님들이 덮은 침구를 테라스에 널어 해를 쬐어 일광욕을 시켰다. 손님이 다녀가면 한바탕 물갈이를 하고 새 손님 맞을 준비를 하는데, 누가 올지 모르지만 그 누군가를 기다리는 일은 봄날 새싹이 나오는 걸 기다리듯 설레는 일이다. 그런 만남들이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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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어제는 함양 장날. 도정의 체칠리아는 장날을 챙겨 시장을 보러간다. 그미가 지쳐 있어 내가 두 집 장을 한꺼번에 보았다. 특별히 살 것이 없어도 장에 나가면 설렌다. 산골짜기에서 물건이 변변치 않아도 할매들은 뭔가 돈 살 것'을 이고 나온다. 달래, 냉이, 뿌리만 겨우 살아남은 민들레나 고들빼기도 데쳐서 초장에 무쳐내면 다 봄철 보약. 오늘은 유난히 시금치가 많은데 귀한 것들은 오전에 다 팔려나가고 나처럼 오후에 나오는 게으름뱅이한테는 팔다 남은 떨이나 차지가 온다


그래도 시금치, 우엉, 당근, 콜라비를 샀고, 크림 파스타를 하려고 새우와 브로콜리, 송이버섯도 샀다. 요즘 슈퍼에서는 단감이 엄청 비싼데 어느 할매가 이고 나온 단감은 스무 개에 만원이다. 단감도 우리집 냉장고에선 늘 먹다가 맛없는 홍시가 되어버리는데 그분들 내냉고는 0도에 정확히 온도를 맞추니 언제나 사각사각 늦가을의 맛 그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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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내 장에서 꼭 지켜야 할 불문률. ‘가격을 깎지 말 것!그래도 한 사람에게 계속 가면 단골이 되어 돈보다 더 소중한 마음이 오가고, 산 것보다 덤으로 얻는 게 더 많다. 오늘도 새알보다 조금 더 큰 오골계 초란을 두 줄 샀더니, 연수씨는 무차 한 봉, 지리산 고로쇠 물 한 병을 덤으로 준다. 어차피 준 것보다 받는 게 더 많으니 인생은 살 만하다.


쓰레기 분리수거를 철저히 하는 나지만 그동안 폐지 쌓인 게 많아 박스 몇 개랑 감동 앞에서 태우고 있었다. 그런데 어떤 우락부락 아줌마가 휴천재 윗길에 트럭을 세우고 내려다보고 있다. “불조심 기간인데 불을 놨소? 사진 찍어 고발하겠소.” 폭포수처럼 잔소리를 쏟아 놓는다. 며칠 전만 해도 산불감시원이 내가 쥐락펴락할 만한 순한 아저씨였는데? 그분의 아줌마인지 새로 온 사람인지 모르겠다. 역시 공무도 여자들이 더 야무지게 잘 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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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강 건너 운서에서 난 산불도 요새 강원도 산을 태우는 대형산불이 모두 쓰레기 태우다가 났다고요!” 언덕 위에, 그것도 감동 위 언덕에서 옆구리에 팔을 짚고 내려다 보고  있으니 더 위엄있고 기골이 장대한 여장군 같은 풍모에 쫄아, 한 말씀 하는 전순란도 충성을 다 하겠슴다!”며 경례를 붙이고, 그 장군님더러 불 좀 지켜달라!”고 부탁하고는 얼른 물을 떠다 꺼버렸다. 한번은 봐준다는 표정으로 여장군님은 트럭을 몰고 떠나갔다.


보스코가 오늘 오후 휴천재 초입 능소화 아치에 사다리를 걸치고  내가 버렸던 거울을 이쪽저쪽으로 달아보고 있다. 2층 테라스 끝에서 식당채 옆에 내 차가 있나 없나를 확인할 수 있게 '간이식 CCTV 장치'를 한다나? 내가 읍내에 한번 나가면서도 '가따오께!'(갔다 올게)를 열 번도 더하고서 나가지만 정작 돌아와서는 곧장 부엌에서 일을 하는 일이 잦으므로 아내의 귀가신고를 못 받아서 답답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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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차가 와 있는지, 내가 어디 있는지 궁금해 간간이 테라스에 나와 마당을 내려다보곤 하는데 식당채옆 주차장이 그의 감시카메라에 사각지대라 이층테라스에서 확인하게 거울을 장치하는 중이었다. 이젠 그의 시선에서 비껴난 사각지대마저 없어졌으니 딴짓하다가는 딱 걸리게 생겼다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 같은 그의 언행에 늘 웃음이 터져 나온다. 내가 아래층 부엌에서 한참 일을 하고 있어도 간간이 내려와 뭘 하는지 말없이 들여다보고  다시 올라가 책상에 앉는다. 골목에서 놀던 아이가 엄마~!’하고 달려 들어왔다가 ? 엄마 여기 있어!’ 하는 소리만 듣고도 놀러 쪼르르 다시 달려 나가는 모습 그대론데 여든 살 아기와 일흔 살 엄마의 풍경이다.


집안 곳곳에 CCTV를 장치하고 그의 서재 책상 앞에 종합상황판을 설치해 내가 집안 어디서 뭘 하나 지켜볼 수 있게 안심시켜야 할지, 아니면 내 몸에 끈을 묶어 그의 손에 쥐어 주어 내가 오로지 그의 손안에 있음을 일러주어야 할지, 그것도 아니면 그를 묶어 내가 따라다녀야 할지 궁리 중이다.


제주 공항의 어느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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