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24일 일요일, 맑음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이육사, “광야에서)


이 지리산 골짜기 마을에서도 닭 우는 소리를 들어본 지 10년이 훨씬 넘었다. 닭장치고 먹이 주기 귀찮아서 안 키운단다. 시장 가면 계란도 통닭도 얼마든지 있어서란다. 집집에 있는 외양간도 텅 비고 된장집 별채에서 소를 마지막 본 게 10여년 전이고 구장네 측간에서 똥돼지를 마지막 본 것도 그 무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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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대신 비가 내릴 만큼 날씨가 푹한데도 보스코가 산보를 마다해서 나 혼자 동네를 한 바퀴 돌며 문정마을 '강생이'(개새끼) 호구조사를 해보았다. 길갓집('농약방집': 아들이 읍내에서 농약방을 한다) 입구에서 종일 지나다니는 차를 하염없이 바라보는 게 취미인 잡종 진돗개, 우릴 본지 십년이 됐어도 머리가 나빠선지 성질머리가 더러워선지 쌍으로 짖어대는 용수막댁네 두 못난이, 오늘도 화폭(달력 뒷면)에 화초와 풍경을 그리는데 여념없는 덕산댁의 강생이는 누구도 가까이 쓰다듬어 주고 싶은 생각이 안들 만큼 인상이 험악하다. 외로운 홀아비 유영감님네 외로운 방랑견 백구는 오늘도 주인마저 없이 외로워 외로워 도둑이라도 반갑다는 듯 꼬리를 북채처럼 흔들어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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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문교 삼거리 가까이 진이네가 건강원을 하던 집에는 제법 그럴듯한 진돗개 잡종 서너 마리가 해마다 새끼로 와서 자라다 삼복이면 개파쇼!’에게 팔려가곤 하는데 오늘도 중개 두 마리가 울타리 안을 서성이며 자동차들을 향해 짖어댄다딸일곱집’(원래는 딸만일곱집이었단다)은 일곱 딸이 앞다투어 엄마한테 집도 새로 지어주고, 외국 여행도 시켜주고, 무르팍 연골수술도 해주고, 2층 난간에 일년열두달 시들지 않을 해바라기(조화)도 심어주더니 어느 딸이 키우다 데려다 놓았는지 훤칠한 미남견을 데려다 묶어놓았다. 시골로 시집가 한 해 만에 보면 검게 타버린 흑산도 아가씨로 서글퍼지는 아낙처럼, 저 위풍당당함이 한 해도 못 가거나 개파쇼!’ 트럭에 실려가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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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아침 보스코가 서재에서 발을 절름거리며 복도를 지나 거실로 왔다. 그가 발을 떼어 놓은 자리마다 마룻바닥에 피가 묻는다. 깜짝 놀라 웬일이냐 물으니 발뒤꿈치가 굳은살로 갈라져 샤워 후에 굳은살 미는 면도기로 뒤꿈치를 밀다 보니 피가 나더란다엄마가 잠깐만 눈을 떼도 사고 치는 아이처럼 어쩌면 저럴까 싶지만 서둘러 알코올로 소독을 하고 연고를 바르고 밴드를 부쳐줬더니 “됐다. 이젠 피 안나온.” 참 착한 아이다.


덕산댁의 화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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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에도 작은 사고 하나. 마루 테이블의 의자 하나가 발에 신고 있던 양말이 벗겨져 좀 신겨 달랬더니 모래판에 씨름 선수 메어치듯 의자를 쓰러뜨리는 바람에 의자 등받이가 부러지고 말았다. 순간접착제로 떨어져 나간 나무를 붙이며 그를 다독여줘야 했다. "여보, 당신은 뭔가 큰일을 위해 태어난 사람이지 의자에 양말 신기는 일을 하라고 태어난 사람은 아닌가 봐." 그러자 연금공단 기관지에서 자기가 읽었다는 어떤 남자 이야기를 조심스레 내게 들려준다.


부인이 외출하며 "세탁기 이불 빨래가 끝나면 좀 널어줘요." 하더란다. 세탁이 끝난 신호가 울려 문을 여는데 도무지 세탁기가 안 열리더란다. 좀 쎄게 당겨서 망가져버렸나? 아내가 돌아와 서비스맨을 불러 세탁기를 고친 후에야 빨래를 꺼냈다며 자신이 가사에 그토록 무능한지는 몰랐다고 한탄하던 글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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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그러네. 당신은 그래도 세탁기 문도 열 줄 알고 빨래도 꺼내서 털어 널 줄 아는데 그 아저씨는 어쩌다 그랬데?" 사실 보스코도 지금까지 한번도 세탁기를 돌려 본 일이 없다. 내가 듣기로 청년 시절에 손수건과 양말을 빨아본 게 그의 '세탁 경력' 전부. 만약 혼자일 때를 대비해서 애들만 아니고 '남편들을 위한 가사교육 프로그램'도 심각하게 고민할 때 같은데....


한달간 쓰레기를 모으다 날 잡아 분리수거를 해서 학교 앞에 차로 실어다 놓는다. "이런 일은 집집이 남자가 해주는 거 아녜요?" 하고 은근히 부탁해 보지만 보스코는 책상머리에서 고개도 들지 않는다. 비닐이 두 자루, 패트병과 플라스틱 그리고 유리병이 한 자루씩이다. 비닐과 플라스틱은 동네 할매들은 무조건 싹 태워버리므로 오늘 같은 '공일'에 산불감시원이 안 나오는 날이면 이집저집에서 연기가 피어 오른다(비닐 태우면 다이옥신 나온다고 말려도 소용없다). 우리집 만이라도 비닐과 스티로폼을 줄여보려고 애쓰지만 시골생활에 택배가 필수다 보니 포장물 감당이 안 된다. 특히 음식물 택배에 실려오는 얼음팩은 깨끗이 모아두긴 하는데 처리할 방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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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주일이어서 근 한 달 만에 새벽 공소예절을 했다. 물론 나이든 어르신들’(그래야 가밀라, 마르타, 모니카 세 할매)교회의 당부로안 나온다. 그러다 보니 신자라곤 우리 아래층 진이네(공소회장) 부부, 우리 부부, 토마스2, 그리고 한남에서 걸어온 여교우 한 명이 전부다. 코로나 1년을 거치면서 종교예식이라는 것, 우리가 믿는 하느님, 신자들과의 만남을 두고 많은 생각을 했다. 성직자 중심의 주일 미사에서 벗어나 '우리가 교회!' 아니 '결국은 부부가 교회!'라는 생각으로 가닥이 잡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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