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628일 화요일. 흐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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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는 잔뜩 해 널었는데 날은 흐리고 가끔 비도 한두 방울씩 지니 바짝 말리기는 텄다. 이렇게 구질스럽게 마르면 물냄새가 나서 호청이나 식탁보는 다시 빠는 일이 간혹 있다. 이럴 땐 차라리 다리미질을 하는 편이 낫다. 땀을 뻘뻘 흘리며 다리미질을 한다. 큰손님을 치른 후 으레 하는 행사다.


이탈리아 친구들은 런닝 팬티도 다려 입는데, ‘흉보면서 배운다고 십수년 그곳 생활에서 어느새 다리미질은 내게 익숙한 가사노동이 되었다. 다만 수술한 손이 자꾸 힘을 쓰니 행여 덧날까 그게 걱정이다.  보스크는 나더러 치료가 끝나기까지 손 좀 쓰지 말라고 듣기 좋은 말을 하는데, ‘어디 손 안 쓰고 발로 하는 방법을 일러 달라고 대꾸했다보스코도 테라스 접이식 벤치를 치우고 벤치 하나를 싸서 보관하는 비닐을 물로 청소하여 다시 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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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엄지손가락 수술도 엄마 손가락을 닮아서 탈이 낫지만 내 왼발 가운데 발가락도 엄마를 닮아 발톱이 오른쪽으로 휘어져 나 있다. 엄마는 외할머니에게 발가락을 닮았으니 여인 3대에 발가락이 닮았다! 내가 낳은 두 아들, 큰아들이 낳은 두 손주 발가락도 한번 점검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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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 실상사에서 ‘6.25 평화기도회행사에서 세월호 제단에 바쳤던 수국을 얻어왔는데, 오늘까지도 얼마나 예쁜지, 바라보기에도 행복하다. 그날 평화를 비는 춤을 보여주신 분이 '그날 아침 자기 집에 피었던 수국을 모조리 꺾어 왔다'고 했는데 나라면 아까워서 못했을 일이다. 휴천재에도 내 키 만한 수국이 있는데 3년 전에 한번 꽃을 보고 그 뒤 꽃소식이 아예 없다


누구는 수국의 죽은 가지를 잘라주라 하고누구는 그 가지에서 나오는 새싹에서 꽃이 핀다 하고누구는 겨울에 얼어서 그렇다고누구는 꽃눈이 생길 때 가물어서 라고 이유를 대는데 결론은 올해도 꽃을 못 보았다는 사실이다이 문제를 아는 분이 있으면 찾아가 사사받고 싶다빵고 신부가 있던 제주 한림의 '숨비소리울타리는 장정 키보다 더 큰 수국이 있어많은 사람이 사진을 찍으러 찾아 왔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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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여름의 수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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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제주 '숨비소리' 울타리에서 작은아들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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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녁기도는 베드로 바울로 대축일 전야제였다. 우리가 5년을 지낸 바티칸에서는 '국경일'이다. 송기인 신부님의 세례명이 베드로여서 보스코가 축하 전화를 드렸다. 금년에 사제서품 50주년이 되는 해다. 


송신부님은 (교구 사제단의 공식 축하식을 마다하고) 지난 주일에 아주 가까운 지인들만 모여 조촐히 금경축을 지내셨다는 사진을 보내왔다. 퇴임한 문대통령 부부도 축하하러 왔단다. 퇴임하고도 '시정잡배들의 괴롭힘에 속시끄럽겠다.'는 우리 생각과 달리 문대통령은 이제 끝나서 아, 마음 편하다.” 라고 할 성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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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호리 우리 밭에 컨테이너 하나 놓을 터전을 마련하느라 굴착기를 불렀다. 토마스가 자기네 블루베리 농장의 관정 판 자리를 손질하면서 우리 공사를 감독하였으므로 나는 멀리 신선초밭에서 망추대와 쑥을 뽑아내고 칡넝쿨을 쳐냈다. 호도나무와 체리나무도 환삼덩쿨 바랭이가 칭칭 감아 내가 다 숨이 막힌다. 엄지가 고생을 좀 했지만 온 몸을 땀으로 뒤집어쓰며 낫을 휘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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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시쯤에 일을 시작한 굴착기 기사는 12시에 칼퇴근으로 굴착기를 몰고 떠나면서 나더러 한 마디 한다. “뭐 땜시 그라게 쌩고생이슈?” “그냥 놔두면 넝쿨이 칭칭 감아 나무가 힘들어 해요.” “초목한테 물어봤수? 그냥 제초제나 싹 한번 뿌려버리슈.” “그럼 땅이 힘들어 해서 안 되요.” “아줌마 힘든 건 어쩌구?” “좀 참죠.” “난 그래서 (기계로) 땅이나 뒤집어 파지 (삽과 낫으로 하는) 농사는 못 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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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에는 휴천재 화단에서 다시 땀을 뻘뻘 흘리며 풀을 맸다. 수선화와 히야신스, 무스카리가 진 자리에 어디서 숨어들었는지 나팔꽃, 도깨비방망이, 바랭이 등이 모판처럼 소복이 올라왔다. 쟤들은 나를 원망하겠지만 우리 화초들과 공존시킬 수가 없어 엄청시리 낫을 휘둘렀다. 이대로 두었다가는 장마를 거치며 뒷감당을 할 수 없을 테니 어쩌랴!


엊그제 바람에 배봉지가 얼마나 떨어졌나 보러 배밭에 내려갔던 보스코가 자두 한 바가지를 따 왔다.  재작년에는 10년만에 성하게 제대로 열매를 맺은 나무에서 자두를 두어접 따먹었는데... '올해 자두는 이게 전부'란다. 그것도 거의 다 병들거나 벌레먹었으니... 벌레먹은 것도 달고 아까워 나는 우물가에 바구니 채 끌어안고 싹 먹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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