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116일 화요일. 맑음


월요일에 보스코가 부스터샷을 접종했다. 몸이 찌뿌드드하다면서도 별다른 증세 없이 잘 견디는 것으로 보아 코로나의 실전에서도 싸워서 이길 듯하다. 나는 그를 병원 앞에 내려주고서 저녁 6시에 느티나무독석회 친구들을 만나 회합을 가졌다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함양군 안의와 서하에서 감염자가 12명이나 나와 모임에 참석하는데 어려움 있는 친구들도 있고 긴 시간 동안 만나지 않은 후유증으로(눈앞에서 안 보이면 마음에서도 사라진다) 모임에서 떠나고 싶다는 친구들도 있어 마음이 산란했다16년이나 이어온 독서회를 정리하자는 얘기도 나와 가슴이 철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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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실생활에 쫓기느라 소홀한 사람도 있지만 주부들이 살림과 직장에 분주하면서도 독서회를 꾸리고 해마다 최소 여남은 권의 책이라도 읽어왔다면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더구나 TV와 핸드폰의 시대에 말이다. 세월은 가고 그 세월 속에 사라지는 많은 것들이 있지만 책을 읽어가면서 쌓는 지식과 우리끼리 모여 속얘기를 하고 우정을 나누는 사랑이라는 절대 가치는 언제나 우리 가슴 깊이 자리를 잡아 인생을 살아가는데 큰 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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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기가 2년여 만에 제네바에서 요르단으로 출장을 떠났단다. 중동 전체가 제1세계가 꾸며내는 전쟁과 피난과 난민수용소로 가득한 곳이라는 내 기억에 그의 안전을 걱정했더니 그곳은 그래도 안전한 곳이라고 한다. 전화와 학살을 피해 고향과 모든 것을 버리고 타국의 피난민 캠프에서 나날을 보내며 수년씩 불안하게 살아가는 난민을 생각한다. 우리가 무엇을 생각하고 무슨 행동을 해야 할까 양심에 큰 숙제인데 우리 큰아들이 우리 가족을 대표해서 그들을 도울 수 있다니 그나마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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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실에 귀농한 패친에게서 생강을 샀다. 서울 생활을 접고 가족과 헤어져 저렇게 튼실한 생강을 키워내느라 얼마나 고생을 했겠는가? 오늘 오후에 드물댁이랑 생강을 까서 두 집이 나누었다. 텃밭 배추를 몇 포기 뽑아와 김치를 담그려니 겉은 멀쩡한데 속은 다 골았다. 평상시 우리가 먹는 푸성귀가 저리 될 때 농사짓는 사람들 마음도 함께 썩어 문드러진다. 도회지에서 소비하는 주부들이 채소를 사면서 이런 사실을 조금이라도 알아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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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을 사제로 둔 여자여선지 델레다의 소설 어머니의 줄거리가 내 가슴에 납처럼 묵직하게 얹힌다. 여류작가의 글이어서 묘사가 참으로 섬세하다. 


아들 폴 신부보다 먼저 있었던 신부는 쉰 살까지는 선하고 거룩하게 살았다. 성당과 본당구역을 재건하고, 자비를 들여 강에 다리를 놓고, 평범한 생활을 했다. 그러다 말년엔 사제관에 혼자 틀어박혀 있다가 사람들이 아무도 참석 않는 새벽시간에 술에 취해 혼자 미사를 드렸다. 그러다 병이 들었는데, 혼자 앓던 그가 모든 창에 불을 켜고 홀로 죽었다.


사람들은 수군거렸다. '마지막 밤에 사탄이 사제의 유해를 운반하려고 사제관에서 강으로 이어지는 지하 통로를 팠다.' '밤이면 그 통로로 돌아온 신부의 영혼이 사제관을 서성거린다.' 그렇게 부임하는 사제 없이 이웃 마을 사제가 주일 미사와 신도들이 죽으면 영결 미사를 드려 주었다. '딴 사제가 못 오게 죽은 사제의 영혼이 다리를 끊었다.'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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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은 무슨 소문에도 흔들리지 않고 순수하고 열정적으로 공부하고 기도하며 본당 신자들을 위해 살았다. 술 담배도 안 했으며 여인은 쳐다보지도 않았고, 모든 돈은 저축하여 마을 사람들에게 다시 다리를 놓아줄 준비를 했다. 스물여덟의 순수한 젊은이였다.


그러던 그가 (어미인 막달레나의 생각에) 악마의 저주를 받아 한 여인의 유혹에 빠지고 말았다. 그 지역 지주가 죽자 그 집 유일한 유족인 딸 아녜세를 위로하고 상담해 주러 드나들다 그만 사랑에 빠진 것이다. 아들이 그 여인과 밀회하러 사제관을 나가는 밤시간이면 어머니 막달레나는 피를 말린다


사제나 수도자로 아들을 보낸 엄마들이 아들 주변에게 여자들이 서성이면 직감하는 공포가 그럴 게다. 더구나 아들 사제의 어머니라는 사실을 유일한 재산으로 여기며 살아온 막달레나라면.


그미에게 예의 그 사탄이 나타나 나는 자매님과 자매님 아들을 내 본당 밖으로 쫓아낼 겁니다. 차라리 아드님에게 본인의 운명을 따라, 그 여인과 쾌락을 알게 하십시오. 천국이 바로 이 지상에 있다는 사실을 일러주세요.”라며 놀리듯이 속삭인다. [다음 일기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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