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720일 화요일, 맑음


꿈. 아씨시였다. 골목골목을 돌아다니며 멋진 수공예품들을 구경하다가 날씨가 더워 겉옷을 벗어 어느 가게 앞 벤치에 놓아두었는데 깜빡 잊고 그냥 왔다. 안면 있는 한국인 가이드가 차를 타고 가면 빠를 거라며 자기 차에 타라고 했다. 그 차를 타고 가는데 눈에 익은 내 코트를 어느 여자가 들고 가기에, 가이드더러 아랫동네에 가서 기다리라 하고 나는 급히 차에서 내려 그 여자더러 내 옷이니 내놓으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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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아랫동네를 내려다보니까 조금 전에 탔던 자동차가 아주 좁다란 골목길을 브레이크가 고장난 차처럼 정신없이 달려가고 있었다, 간이 서늘할 정도로 좁고 가파른 언덕길을! 그때 돌연 공중에서 헬리콥터가 하나가 나타나 기관총으로 그 차에 사정없이 총알 세례를 퍼부어 차가 산산조각 폭발하며 기사와 자동차 파편이 멀리 퍼져나가는 끔찍한 장면이라니!


깜짝 놀라 눈을 뜨니 새벽 다섯 시. 내 나이가 키크는 십대도 아니고 무슨 액션 영화를 꿈꾼담? 전날밤 보스코가 태블릿에서 넷플릭스 영화 하나를 찾아주었다. 제목도 내용도 모르지만 첫장면부터 총알이 뒷통수로 들어와 이마를 박살내고 피튀기며 빠져나가는 끔찍한 영화여서 5분 만에 꺼버렸는데... 


요즘 영화는 저렇게 피투성이로 만들어야 관객의 구미에 맞는지 모르겠지만 단 5분 본 화면만으로도 내 꿈길을 어지럽혔는데, 저런 영화를 보고 또 그만큼 폭력적인 게임을 하면서 자라는 아이들은 어떤 정신상태로 살아갈까하기야 청소년들과 함께 사는 살레시안들은 예전에 비디오를 빌려다 보는데, 10초에 몇 명 이상 안 죽는 영화를 빌려오는 회원은 구박을 왕창 받았다는데... 수도자들이 신나는 액션 폭력물을 보는 것은 악당 같은 아이들을 만났을 때에 어찌할지 연습하는 예방차원이었을까 궁금하다. 


교황님 경당에서 미사를 드리고(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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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좀 흐른 뒤(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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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너무 보고 싶어 어제는 호천이가 여태 간직하고 있다 얼마 전 우리에게 넘겨 준 엄마의 옛앨범을 오랫동안 넘겨보았다. 엄마의 가난한 시절 지금 북한 여인들처럼 외출복이란 한복이 전부였거나, 흑백사진 속의 저 싸구려 블라우스나 바지는 우리 다섯 형제를 키우시느라 엄마가 얼마나 고생하셨나를 여실히 보여준다


그래도 엄마의 사진첩에서 큰딸의 얼굴, 그렇게나 엄마 속을 썩이고서 시집가버린 큰딸네 사진이 제일 많은 점으로 보아 마음 속으로는 다 용서하셨던가 보다. 엄마는 개신교 장로님이면서도 1980년대초 두 손주 빵기와 빵고가 교황(요한바오로 2)님과 찍은 사진을 참 소중하게 간직하고 계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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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열대야와는 달리 한밤에 비가 지나간 뒤 지리산 휴천재의 뜰은 여름답지 않게 선선하다. 오늘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화단에서 우리 꽃들을 구박하는 잡초를 뽑았다. 장미와 반송에는 환삼덩굴, 나팔꽃, 쥐방울덩굴, 꼭두서니, 새콩이 무슨 말타기 놀이를 하듯 서로 엉켜 올라타 있다. 무려 네 시간 동안 '죽어라' 낫을 휘두르고 보니 과연 '죽을 만큼' 힘이 들다


새들은 나만큼 아침 일찍 일어나 먹이사냥에 바쁘다. 휴천재 배밭에 수십마리 모여드는 물까치는 얄밉기도 하지만 수년만에 나타난 꾀꼬리의 화려한 자태나 마당 전깃줄에 올라앉은 찌르레기의 모습을 일상으로 보는 것은 산골사는 사람들만 누리는 특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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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권을 내다보노라는 윤석열이 “120시간이라도 바짝 일하고 이후에 맘껏 쉴 수 있어야 한다”는 노동정책을 청년득표용으로 내놓았다는데 '주5일근무'하는 현재의 근로기준법에 따르자면 월화수목금에는 하루 24시간씩 (24 X 5 = 120) 연속으로 근무시키고서 “25시[죽음의 시간]의 휴식을 제공하겠다는 정책 같다.


오늘 점심에 산청 사시는 백 교장선생님이 보스코 팔순을 축하하는 점심을 내셨다. 가까이 사시는 허신부님도 함께 하셨다. 그러고 보니 팔순을 맞은 보스코를 사랑하는 사람이 나만이 아닌 듯 지지난 토요일부터 무려 열흘 가까이 보스코는 그야말로 팔순주간(八旬週間)’을 보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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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후 Cafe’라는 곳에서 차를 마시며 허신부님은 보스코와 한담을 나누고, 나머지 넷은 시골에서 농사일 하면서 생명을 부지하고 살아남는 지혜를 짜내는 시간이 됐다. 시골에서 농사 안 짓고 재미나게 살 사람은 저 구례 사는 권산 선생("시골에서 농사짓지 않고 사는 법"이라는 책자를 냈다)  하나 정도가 아닐까? 아무튼 농사 재미에 푹 빠진 우리 일행은 '내가 농사지은 푸성귀로 차린 식탁 앞에 앉아 본 행복'을 한참이나 나누었다.


오늘 저녁 로사리오-산보를 강건너로 가다보니 ‘자영이네집에 인기척이 있고 사람이 보인다. 10년 가까이 주인 없이 닫혀 있던 집이어서, 반가워 인사를 나누고 보니 이미 3년 전에 그집을 사들인 사람으로 간간이 다녀갔다는데 우리만 몰랐던가 보다. 그집의 새 주인 부부와 한참 담소하고 과일도 얻어먹고 돌아오면서도 한때 전원생활을 꿈꾸며 지리산에 들어와 휴천강가에 터를 잡고 집을 짓고 아들과 무려 열 살 터울의 딸을 낳아 기르던 젊은 부부의 다정한 얼굴이 떠올라 가슴이 아련했다. 자영이도 지금쯤은 초등학교를 마칠 무렵이겠다.


 자영이네 집에서 건너다본 휴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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