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76일 화요일, 장마비


거칠게 내리던 비가 갑자기 조용해지면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 열린 창밖을 건너다본다. 앞산은 골골이 수증기가 빗속에서도 산허리에 흰띠를 감아올리고, 봉우리들은 앞서거니 뒷서거니 내달리는 냇물을 무심히 내려다본다. 장마나 호우로 큰물이 지면 골짜기도 강도 모처럼 깨끗이 몸을 씻는다. 비가 내리니 딱히 할 일도 없어 오늘은 종일 책에 코를 박고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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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아줌마들도 제발 일 좀 그만해욧!”하는 자식들의 지청구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고 살지만, “일 허지 말란 말은 그만 죽으라는 말이여!”라는 게 마을회관 '안사람들 방'에서 통하는 정론(正論)이다. 시집오자마자, 아니 처녀 적부터 평생을 논일 밭일로 살아온 여인들의 생명력은 애오라지 노동에서 나오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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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에 귀농 귀촌한 인사들이 만들어오던 지리산이라는 종이신문(계간지)이 인터넷신문으로 전환하는 문제로 실무자들이 산청, 구례, 하동, 함양을 돌며 지역별 간담회를 진행하는 중이다. 어제는 함양 지역의 간담회 날이라 창원에 있는 김석봉선생 집에서 모임을 가졌다보스코는 저 신문의 자문위원으로 간간이 짤막한 글을 써왔다

http://www.donbosco.pe.kr/xe1/?mid=Jiris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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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기사로서 보스코를 회의장에 실어다 주고 늘 만난 음식을 마련하는 안주인의 식탁에 끼어 앉아 점심 한 끼를 잘 얻어먹고 먼저 자리를 떴다. 이웃 한남마을에 사는 상두씨에게 회의 끝나고 보스코를 집으로 데려다 달라 부탁했다.

 

창원마을 간 길에 김선생 며느리가 경영하는 마을 까페 '안녕'을 찾아보았다. 저 며느리는 전세계를 돌아다니는 여행가였는데 어쩌다 이 마을 총각을 남편으로 맞고서 지리산에 정착한 여걸이다.http://donbosco.pe.kr/xe1/?document_srl=102808


손님을 부지런히 맞는 보름씨한테서 생강차 한잔을 얻어 마시고 김석봉 선생이 쓴 뽐낼 것 없는 삶, 숨길 것 없는 삶(씽크스마트, 2020) 한 권을 사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와 읽기 시작한 책은, 그가 귀농한 시골생활의 애환, 이웃과의 갈등, 농사로 채워지지 않는 가난, ‘폼나게 사는 일은 요원한 이 시대 곤궁한 산골 농부의 모습이 숨김없이 그려져 있어 가슴시리게 내쳐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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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시가 넘어 보스코도 회합에서 돌아오고 비가 온 뒤라서 우후죽순(雨後竹筍)’이라는 말처럼, 큰대밭에 죽순이 올라왔나 보러 갔다. 바로 옆이 드물댁네라 드물댁을 불렀다. 방안에서 뭐라고 우물거리는 소리만 들려 비오는 날이라 낮잠을 자나보군.’하고 그냥 집으로 올라왔다. 그런데 평소에 드물댁!”하고 부르면 반갑게 나와서 맞아주는 여자라는 생각이 들자 갑자기 불안한 느낌이 엄습하여 다시 그 집으로 내려갔다.


이번에도 아줌마를 불렀는데 대답하는 목소리가 신음에 가까워 문을 열고 보니 방안에 쓰러져 있고 나를 보고서도 일어나 앉지를 못한다. 혀는 굳어 소리를 못 내고 사지가 뒤틀려 있다. 동공은 이상이 없지만 뇌졸증 아닌가 걱정이 컸다. 사지가 딱딱하게 굳어져 가고 있었다. 


환경운동가 김석봉(전 녹색당 당수) 선생 부부의 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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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119에 전화를 해서 출동을 부탁하고 드물댁 전화의 단축키를 눌러 그미의 딸들에게 전화로 모친의 위급을 알렸다. 바로 곁에 사는 소담정 도미니카도 불렀더니 간호사였던 그미의 말로는 잘 먹지도 않은 상태에서 고협압약과 당뇨약을 먹으면 쇼크가 오는데 그 증상 같단다. 내 전화를 받은 보스코가 진이엄마도 급히 내려보내어 상황을 의논했다.


마천에서 119 구급 요원들이 달려왔고 혈압을 재보고서는 정상이라 했는데, 혈당을 재고는 '42 저혈당이라는 진단을 내렸고 링거를 꽂은 드물댁을 실은 119차는 앞서 마을을 빠져나가고 나는 보호자의 자격으로 구급차를 뒤따라 나섰다.


도메니카의 진단대로 링거 포도당의 효과로 드물댁은 구급차 안에서 입도 제자리로 돌아왔고 뒤틀렸던 몸도 약간 풀렸다. 성심병원 응급실은 혈액검사에서 염증 치수가 높고 뇌시티를 찍어야 하니 며칠 입원을 하란다. 딸 셋과 사위들 (막내)아들이 엄마 소식을 듣고 대구에서 달려오자 '환자의 나이에 당뇨 쇼크는 참 위험한데 그래도 이웃에게 발견되어 구급치료를 받는 바람에 고비를 넘겼다'는 담당의의 설명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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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딸은 부산에서 출발해서 밤 열 시가 넘어 도착했다. '엄마가 괜찮아졌으니 오지 말라'고 서로들 연락하는데도, '엄마 상태를 두 눈으로 확인하겠다'고 4형제가 모두 달려오는 모습이 참 갸륵했다


"저것들 클 때 하도 가난해서 먹을것도 못 먹이고 공부도 내가 못 시켜 제각기 알아서 야간학교로 견습생으로 공부하여 자리를 잡았지."하는 드물댁의 안쓰러운 후회를 여러 번 들었는데 저런 효성을 보이니 참 아름다운 사람들이다. 큰딸 부부와 셋째딸 부부가 도착하고 어느 정도 회복하여 제정신이 돌아온 드물댁을 자녀들에게 넘기고 나는 장마 폭우 속에 휴천재로 돌아왔다.


오늘(화요일)이 산청 이사야의 생일이자 영명축일, 미루의 영명축일이었으므로 동의보감촌에 모여 점심을 들었다. '가림정' 임신부님이 일행에게 점심을 냈다. 산속에서 외로웠을 삶에도 이렇게 서로 챙기는 따스한 손길이 있어 늘 위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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