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612일 토요일, 맑음


울 엄마가 천수 100세를 누리고 소천하시는 축제(祝祭)를 맞았다. 정말 우리에겐 축제였다.


9일 오전 11. 호천이가 전화를 했다. 엄마의 산소포화도도 많이 떨어지고 맥박도 나쁘시다는, 더 위급해지면 가족에게 연락하겠다는 요양원 전화를 받았단다. 자기로서는 불안해서 못 견디겠다고, 코로나 방역으로 엄마 면회를 안 시켜 주면 실버타운 마당에서라도 엄마 곁을 지키겠다며 미리내 '대건효도병원'으로 가는 중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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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년간 서너 번 위기라는 병원 측 연락이 왔었고 그때마다 다시 소생하신 분이라 이번 역시 다시 괜찮아지시려나 하다가도 곡기와 물까지 끊고 수액으로 연명하신 지가 두 주간이 넘어서 엄마의 각오도 확실하고 우리도 퍽 불안하던 참이었다. 다음 주 서울 가는 날(15) 우리 집안에서 유일하게 백신주사 두 번을 맞은 보스코 이름으로 오후 3시에 환자와의 대면면회를 신청해 둔 터다.


그런데 오후 3시에 호천이가 간호과장을 우연히 만나 사정을 얘기하고 대면 면회를 신청하니까, 즉석 코로나 검사를 받게 하고 방 하나를 임종실로 따로 마련하여 어머니를 그곳에 옮겨모셔서 지키도록 배려해 주더라면서 엄마 상태가 예전과는 다른 것 같으니 다시 연락하거든 나더러 즉시 올라오라고 했다.


통화를 곁에서 듣던 보스코가 "사람의 마지막은 누굴 기다려주지 않는 법"이라며 빨리 차비를 차려 나서자고 서둘렀다(‘성나중씨답지 않게). '엄마가 임종하시나?' 생각이 들자 나도 혼이 빠지며 검정옷 한 벌만 챙겨 입고 휴천재를 나섰다. 그때가 오후 5. 고속도로에서 호천의 전화를 다시 받았다, 병원측 코로나 방역 통제로 자기 둘 외에는 누구도 면회가 안 되니 차라리 우리더러 오지 말라고. 그렇지만 보스코는 단호하게 그냥 가서 사태를 해결하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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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내 실버타운 '유무상통'에 도착하니 저녁 8. 호천이댁이 엄마 숨이 가빠지기에 "누님이 오니 기다리세요, 어머니!"하고 소리소리 지르던 참이란다. 담당 간호사는 임종을 지키도록 허가받은 가족이 두 명이므로 우리 부부가 들어가면 호천네는 나와야 한다고 우겨 호천네는 밖으로 나오고 우리가 들어갔다. 이미 차게 식은 엄마 손발을 주물러드리면서 엄마 귀에 마지막 얘기를 들려드리고 보스코가 핸폰을 뒤져 임종하는 이들을 위한 시편기도를 큰소리로 염송해드렸다. 사람에게 마지막까지 남는 감각이 청각이라니까. 


어머니의 운명을 지키기 못해 병동 밖에서 애타게 허둥대던 호천네는 요행히 지나가던 간호과장에게 긴박한 상황을 얘기하자 그가 두 사람도 병동으로 들어가도록 배려해 주었다. 둘이 들어오자 작은아들 내외와 큰딸 부부 넷이서 엄마의 임종을 지킬 수 있었다


엄마는 19일간의 단식으로 몸피가 30kg정도로 줄었고 링거로 팔다리가 까맣게 부어 있었다. 우리 넷이 곁에서 함께 기도드리자  '이젠 이 낡은 육체의 옷을 벗어도 되려니' 하셨는지 맥박과 호흡이 점점 떨어지더니 모든 계기가 '0'으로 멈추었다엄마의 한 세기(世紀)가 영원(永遠)으로 흘러들어가는 순간이었다


1922917일에 태어나셔서 202169928분 마지막 날숨을 하느님께 바치셨다. 단말마도 전혀 없이, 모든 기력을 남김없이 소진하신 터라 잠들 듯 조용히 숨결이 멈추었다. 노년의 아마도 지루한 세월에서, 코로나 사태로 모든 혈연으로부터 일년 넘게 단절되어 계시던 고독에서 놓여나신 편안한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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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퇴근했다 입원환자의 사망진단을 내리러 다시 출근한 늙수구레한 병원장은 자기가 수백 명 노인 임종을 봐 왔는데 우리 엄마처럼, 거의 석 달이나 식음을 마다하면서도 끈질긴 생명력을 유지한 분은 처음이라면서 조의를 표했다. 가톨릭 복지시설인 실버타운 유무상통과 그 부속 대건효도병원의 보살핌이 극진하다는 것은 세간에 널리 알려져 있다.


의사의 사망진단이 내리고 돌아가신 엄마를 하느님나라에 받아 주십사 기도를 마치자마자 우리 넷은 장례를 위한 실무에 착수 했다. 지난 1월에 이미 '예행연습'(?)을 해둔 터라 아주 가까이(7km) 있는 용인시의 장지 평온의 숲'에 전화를 하니 즉시 앰블란스를 보내 시신을 운구했다


11시가 조금 넘어 오빠와 막내 호연이가 그곳 장례식장에 도착하여 실무자와 의론을 끝내니 자정을 넘은 125! 그동안 잘 사셨고 행복하셨으니 순수히 가족들만의 장례로 하자고 의견을 모았다. 자녀와 손주, 엄마 형제자매, 4촌까지만 연락하고서 우리끼리 엄마를 모시고 저 어린 날 함께한 시간을 추억하며 오붓한 시간을 갖자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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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다섯은 엄마를 모시고 산보 온 듯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오랜만에 사촌들을 보았고 90이 다 되가는 막내외삼촌과 외숙모는 "너희랑 노느라 하루 종일 뭉개도 새 손님한테 밀려나지 않아서 좋구나!" 하셨다. 조카들은 저희들 끼리 MT라도 온 듯 재미있어 했고 우리 여자들끼리도 모처럼의 단합대회가 되었다. 이렇게 엄마는 영이별하시면서도 자식들한테 행복한 시간을 마련해 주셨다. 곡을 하거나 눈물을 흘리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우리는 엄마의 영안실에서 영정사진을 모시고 전체 가족사진과 다섯 자식의 가족사진도 찍었다. 엄마가 세상에 남기신 업적(혈육)을 증거하는 기념사진이었다. 큰사위 보스코가 '좀 웃으라고! 초상났어?'라는 한마디에 영화 "축제"를 떠올리는 사람들은 폭소를 터트렸다. 엄마가 한 세기를 살고 천국에 입성하시는 날이니 즐거워해야 마땅했다.


10일 오후에는 엄마가 세우시고 수십 년간 장로로 봉직하신 일산교회의 목사님 일행이 와서 영안실에서 입관예배를 올려주었고, 우리는 뒤이어 지하의 안치실로 내려가 염하고 묶이고 관에 들어가는 엄마의 그 작은 몸피를 끌어안고 울었다.


11일 오전 10시에도 목사님 일행이 다시 와서 발인예배를 올렸다. 부모님께 물려받은 신앙으로 다섯 형제가 다 그리스도를 주님을 모시는 집안이 되어 있었다. 막내아들은 부모님의 장로직을 계승하는 장로가 되어 있고 외손주 빵고는 가톨릭 사제가 되어 있는 결실도 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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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식장에서 버스로 1분 거리에 있는 구내 화장장으로 운구해 가서 엄마의 관을 8번 소각로에 입고시켰다한 시간 뒤 한줌의 재로 나와 항아리에 담긴 엄마를 안고 우리는 근거리의 미리내 실버타운으로 갔다엄마가 당신 생애의 마지막 20년을 보내시며 '우리집'이라고 정을 들이신 곳이다. 그곳 실버타운에 계시면서 엄마가 10년 넘게 다니시던 '노곡교회'에 노제(路祭)차 들렀을 적에 큰사위 보스코가 추모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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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무상통에 계시다 세상을 떠난 노인들의 유해를 봉안하는 '하늘문'에는 손자 성하윤신부와 실버타운과 요양병원에서 엄마를 돌봐드리던 직원들이 도열하여 엄마를 맞아주었다그렇게 손주 신부의 하관예식 집전과 기도를 받으며 엄마의 유해는 그곳 한 칸 묘소에 봉안되었다휠체어를 타고 나온 엄마의 이화여전 급우의 80년 우정의 환송을 받으시며아들 셋과 며느리 셋두 딸과 두 사위손주 여덟, 증손주들의 배웅을 받으시며 조정옥(趙貞玉장로님은 2021년 6월 11일 오후 3시에 사뿐히 하늘 문을 닫고 들어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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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일기에서 이 축제의 소식을 접하는 다정한 지인들에게는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이 당신 모친을 두고 자기 지인들에게 당부한 인사를 나도 드리고 싶다저의 주님제 지인들이 이 소식을 접할 즈음이면 당신께서 저를 이승의 생명으로 들어오게 하셨고 이 지나가는 빛 속에서는 당신께 대한 믿음으로 옮겨가게 해주신 주님의 저 여종을 위하여 주님의 자비를 빌게 해 주십시오.”(고백록 9.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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