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68일 화요일 맑음


초여름 날씨치곤 그토록이나 쌀쌀해서 꽃들은 지레 떨어지고 열매는 크지를 못하더니, 요즘엔 날씨가 널뛰기를 한다. 오늘은 32도까지 올라가 보스코가 3층 다락에서 선풍기들을 꺼내왔다.


보스코는 엊저녁 싸다 만 배봉지를 마저 쌌는데, 올해는 너무 배가 안 달려 전년 같으면 다 솎아냈을 자디잔 배까지 다 쌌다. 나는 그의 말동무가 되어 주려고 양파밭으로 내려가 한 두럭을 캤는데 절반은 썩어 있었다. 다른 해 그 이랑에서 다섯 망은 나와야 하는데 금년엔 한 망도 안 된다. 어스름에서 한낮 더위를 피해 휴천재 앞마당과 식당채 옆의 매실도 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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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식당체 옆 매실나무는 내가 언덕에서 비닐을 펴 한쪽 끝을 붙잡아 떨어진 열매가 마당으로 굴러떨어지게 하고 보스코가 대나무장대로 나무를 두드렸는데 장대질을 할 때마다 매실 우박이 내 머리를 두드린다. 평소에 아내한테 맺혔을 유감을 이렇게 풀고 있다. 열매는 거의 썩거나 말라서 오늘 아침 밝은 데서 골라 담다보니 5kg 정도? 작년에 매실청을 많이 담갔으니 올해는 이것으로 만족해야겠다.


오늘 새벽엔 아무래도 적성병이 너무 심해, 약발이 들지는 모르지만, 약을 한 번 더 쳐야겠다며 보스코가 소독약통을 메고 배나무를 돈다. 어렸을 적 공도에 살 무렵 이웃에 배나무 과수원이 많았다. 지금이야 전국이 모든 과일의 산지이지만 그때만 해도 배는 안성배’, 포도도 안성포도였다. 과수원 주인 중에는 학부형들이 여럿 있어 그들이 교장인 아버지를 찾아온 적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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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나무 적성병에는 향나무 포자가 원인이라며 공도중학교 운동장의 향나무를 잘라달라고 부탁했다. 높이가 5m 넘는 멋지게 전지한 나무들을 잘라내는 일이 아까웠겠지만 아버지는 그건 먹고 사는 문제라며 대신 다른 수종의 나무를 심어달라면서 향나무를 자른 일이 있다. 휴천재 텃밭에서 300미터 안에 폐교된 문정초등학교 마당에 향나무가 10여 그루가 제멋대로 크고 있으니 배나무도 나무 주인 보스코도 고생이 심하다. 폐교된 학교를 사들인 마산대학은 폐교를 20년 넘게 귀곡산장(鬼哭山莊)으로 방치하여 고라니 가족의 야생 캠프로 만들어 놓고는 민폐만 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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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 마늘과 양파를 빨리 캐야 해서 드물댁이 올라왔다. 마늘은 뿌리가 깊어 썩지 않았는데 양파는 많이 상해서 세 두럭에서 전부 합쳐 12kg들이 망이 겨우 여덟망 나왔다. 드물댁에게 일삯으로(?) 양파 한 망과 마늘 한 단을 주고 친구가 전해주라고 사보낸  원피스와 티셔츠도 주었다. 드물댁은 원피스를 펴보더니만 뜨악한 얼굴로 나를 한참 바라본다. 지금까지 간다꾸를 한번도 못 입었다고, 치마조차 입어본 일이 까마득하단다. “내가 이 간따꾸 입고 나가면 동네아짐들이 저거이 죽을 때가 됐는갑다!’며 뒤로 나자빠질 끼구만.” “그러면 안 입을끼요?” “내사 밤에 잘 때 살그머니 한번 입어 볼라요. 딸들이 한번도 요로코름 생긴 옷을 사준 일이 엄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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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동네아짐들은 얼굴만 엇비슷하게들 생긴 게 아니라(지금 살아남은 아짐들 여덟 명이 이 동네 출신들이다!) 옷조차 5000원 짜리 남방에 5000원 짜리 몸뻬를 단체복으로 통일해 입고 다니니 드물댁으로서는 이번에 크게 모험을 하는 셈이다. 문정리 판 여자의 일생이다.


밤늦게 미국서 전화가 왔다. 얼마 전 “A.Z 백신 절대 맞지 말라. 미국에서도 그걸 맞고 죽은 사람 엄청 많다!”는 소식을 전해 준 친구가 내가 그걸 맞고도 안 죽었는지 확인 차(?) 건 전화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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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자기가 한신대 다닐 때 강북경찰서 형사과에 끌려간 얘기를 꺼낸다. 이해학(목사)가 묶인 채 매를 맞고 있는 옆에 자길 앉혀 놓고 취조하더란다. 숭실대 교수가 우리 학교에 강사로 왔었는데 그가 무슨 얘기를 하더냐 묻더란다. 특별한 게 기억나지 않는다고 대답하고 풀려났는데, 그 뒤 학교에서는 자기가 밀고자가 되어 있더라나? 하나는 두들겨 패고 그 옆에서 살살 달래며 취조하는 방식은 전형적인 이간질 수사여서 나도 겪어본 일이 있지만 학교에서 그런 얘기 들어본 적 없는데?”라며 그를 안심시켰다.


50년 전 일이고 누가 밀고자였던가는 지금에 와서는 하나도 중요치 않은데,진짜 푸락치였다면 그렇게 노출시키지도 않았고, 그런 말을 꺼내는 걸 보니 친구의 의식이 한국을 떠나던 당시로 정지해 있나 보다. 자기가 민청학련 주범자로 온갖 고초를 다 받았노라고 떠벌이던 내 지인이 근자에 와서 친일 극보수신문에 논설을 쓴다면서 부끄러운 줄도 모르는 기막힌 짓을 최근에도 겪은 터라서 저 때에 동창들에게 밀고자리는 말을 들었다면서 상심하는 사람은 오히려 양심적이다. 38, 48, 58 세대의 민주투사가 변절자로 추락하는 일을 숱하게 지켜보며 살아가는 슬픈 세상이다.그러나 내 주변에는 죽을 때까지 초심으로 살아가는 사람 더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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