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54일 화요일, 흐리다 비


오늘 온 잡지 시조(時兆)(우리 주치의 선내과 원장님이 10여년 넘게 구독료를 내서 보내주시는 안식일교회 잡지)에서 읽은 글. 2002년 미국의 어느 조사에 의하면 가장 높은 행복지수(幸福指數)’와 가장 낮은 우울지수(憂鬱指數)를 보이는, 가장 행복한 사람 10%를 꼽아보니 가장 뚜렸한 특징은 돈, 건강, 재산의 소유가 아니라 가족이나 친구들과 보내는 관계(關係)’더란다. 하버드대 정신의학과 로버트 교수는 1938년부터 무려 75년간 724명의 인생을 추적 관찰한 결과를 발표했다. 같은 사람들을 2년마다 방문하여 75년을 살아가는 삶 전반에 걸쳐 변화를 기록하였다. 그 기록에 의하면,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역시 부, 성공, 명예, 성취가 아니라 좋은 인간관계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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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서 사람이 꼴보기 싫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이 간혹 있는데 그런 사람은 도시에서든 산속에서든 절대 행복하지 못하다. 이꼴저꼴 보기 싫어 시골에 들어오거나, 함께 내려온 배우자마저 돌려보내고 마음 편히 살겠다!’는 사람치고 행복해 보이는 모습을 본 적 없다.


어제 산청 사는 백교장님 부부와 그 이웃 허신부님이 휴천재를 방문하셨다. 뜻이 통하는 분들이라 점심을 먹고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백교장선생님과 사모님도 신앙을 공통분모로 해병대 동기생 같은(해병대 전우회)’ 씩씩하고 솔직담백하게 사람을 대하고 많은 손님을 치르며 사는 분들이다. 2년전에도 광주가톨릭대학교(대건) 인연을 이유로 친구들을 산청에 불러 잔치를 벌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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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신부님은 상담을 하는 분이어서인지 예를 들어, ‘사마리아 여인의 사건을 두고 이야기 접근방법이 독특하고 따뜻했다. 은퇴한 사목자로서 신부님은 예수님이야말로 심리상담의 대가라고 하셨다. 유다인이 사람 취급도 않고 상종도 않는 사마리아인, 남녀가 내외하는데 세상에서 한낮 우물가에 앉아 낯선 여자에게 물 좀 주시오!’라고 말을 거신다. ‘유다 남자가 사마리아 여자한테 물을 달래시오?’라고 톡 쏘는 상대방을 달래시며 기어코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물을 주시는 모습이 누구라도 홀딱 반할 매력덩어리 예수님이시란다

(보스코도 공감이다: http://donbosco.pe.kr/xe1/?document_srl=2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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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새벽 다섯시. 아직 사방이 어둑하여 선뜻 나서기가 그렇다. 책 몇 페이지를 뒤적이다 휴천재 마당 전화줄에 앉아 지저귀는 새소리에 얼른 옷을 챙겨입고 집을 나선다. 매일 바라보는 휴천재 텃밭의 애들보다 산너머 남호리에 놓아둔 애들이 궁금해서다


그 시간이면 멧돼지라도 나올지 모른다지만 밤마다 새벽녘이면 휴천재 옆 콘크리트 포장도로를 오르내리는 멧돼지와 고라니들 발자국 소리가 귀에 설지 않다. 체리나무에 아직도 개미들이 기웃거리기에 약을 뿌리고 이 봄에 심고서도 그동안 싹을 안 틔운 게으른 나무들을 특별히 둘러본다. 호두나무 40그루는 한 그루만 빠고 모두 싹을 틔웠고, 까다로운 엄나무도 죽었나 보다 포기한 여섯 그루가 뿌리 가까이에서 수줍게 단풍잎 같은 손을 내민다. 신선초는 씩씩하게 밭을 점령하기 시작하고 잡초라 부르는 쇠뜨기, 산딸기, 칡넝쿨이 세상을 향해 팔을 뻗으며 우리에게 전쟁을 선포하는 엄숙한 순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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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 주변을 돌며 취나물을 뜯었다. 산속에서 자란 취는 그 향마저 매혹적이다. 배나무 밑에서 거름을 실컷 먹고 큰 튼실한 취나물은 올봄의 첫물이어서 아주 실하다 울릉도취 부지깽이나물도 꺾어 함께 데쳐 들기름에 볶았다. 오늘 점심상에는 두벌째 따는 가죽나무도 데쳐 초장에 무치고, 우엉 잎도 쪄서 강된장에 싸서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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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대 후반의 마리아 그라시아(Maria Grazia De Vanna)한테서 이멜이 왔다. 작년 4월까지 간간이 이멜을 주고받으면서 안부를 나누다 그 동안에 소식이 뜸했는데 8개월 전 남편 미켈레가 세상을 떠났고, 사흘 전 큰아들 잔루카(60대)도 죽었다는 슬픈 소식이다. 오래 전부터 투병 중이던 큰아들의 두 아이도 할머니인 그미가 입양하여 돌보고 있었다. 두 죽음을 맞느라 정신이 없었노라는 얘기다.


하느님이 우리에게 쏟으시는 섭리의 손길은 반드시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그를 통해서 내려 주신다. 40여년전(1982) 로마에서의 일. 보스코가 유학을 떠난 뒤 6개월 뒤 빵기(일곱 살)와 빵고(두 살)를 데리고 남편을 따라갔는데, 가서 보니 1년 후 장학금도 집세도 끝나 있었다(보스코의 실생활 감각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 남편의 공부는커녕 네 가족이 귀국할 여비도 없는 처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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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란, 무슨 걱정 있어?” 이웃 아파트에 사는 친구 마리아 그라시아가 물었다. 돈이 떨어져 아파트를 비워줘야 한다는 내 하소연에 오스티아(서울과 인천의 거리다)에 우리가 여름에 쓰는 아파트가 있는데 가서 살래?” 그러고서 이탈리아인들에게서 받는 월세의 절반만 받기로 하고 집을 주어 무려 5년간 집걱정 셋돈걱정 없이 살았다. 심지어 아파트 관리비마저 그 돈에서 내주었다. 우리 가족 6년 이탈리아 유학생활의 가장 큰 은인이었다. 빵고 신부가 오늘 아침 두 사람을 위해 위령미사를 바쳤고, 우리도 부의를 하고 그 가족을 위로해야겠다


(P.S.: 그럼 우리 가족 5년의 생활비는 어찌 되었느냐고? 살레시오 관구장 윤선규신부님[지금은 벨기에 겐트 교구의 주교님으로 은퇴하셨다]의 주선으로 김수환 추기경님의 추천을 받아 독일 미씨오에서 후속 장학금을 받았다! '역쉬, 하느님 섭리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서 작동하신다!')


2006년 데반나 가족과 함께(오른쪽 두 사람이 큰아들 쟌루카와 남편 미켈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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