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425일 일요일, 맑음


23일 아침. 빵고 신부가 엄마, 엄마 생일인데 미역국은 드셨어요?’ 물어왔다. 쇠고기 한 근을 푹 끓여 고기를 결대로 찢어넣고 미루가 준 자연산 미역을 불려 한 솥 가득 끓여 보스코와 맛있게 먹었다. 산고는 엄마가 겪고 미역국은 딸과 사위가 먹다니...


외할머니, 엄마, 막내이모, 오빠와 함께(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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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제주도 중문에서 태어났다. ‘6.25동란이라 육지에서 외갓집 식구들(외할머니, 세 이모, 작은외삼촌)도 모두 제주로 피난와  중문중학교 교장이던 매형에게 얹혀살던 무렵이었다. ‘한 성격하시던 아버지가 처가 식구들에게 살갑게 했을 리가 없다. 전쟁 통에 그 많은 친정 식구들마저 건사하던 엄마는 나를 낳고서 흰쌀밥은 먹기 힘들었어도 앞바다에서 캐온 대합을 넣은 미역국만은 실컷 먹었단다라고 회상하셨다. ‘다른 국을 끓일 형편도 못 되어 한 달이 넘도록 미역국만 먹는 것도 고역이었는데 네 아버진 한 달이 넘도록 질리지도 않고 미역국을 드시더구나.’


그러고 보니 엄마에겐 미역국이란 고달펐던 전쟁, 큰딸로 몸을 풀던 고생, 산모도 질린 미역국을 잘도 먹던 꼴보기 싫던’(?) 남편으로 연상되는지 어렸을 적 내 생일에 미역국을 끓여주면서도 당신은 절대 미역국은 안 드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도(1984) 아버지 이야기를 한번도 안 하시기에 엄마, 가끔 아버지가 안 보고 싶어?” 물으면 꿈에도 보고 싶지 않다, !” 하고 잘라 말씀하셨다. ‘40년을 함께 살며 아이를 다섯이나 낳았는데 저 무관심의 뿌리는 어디 있을까?’ 딸인 나로서는 무지 섭섭한 일이었다.


그제 점심 생일 미역국을 먹으며 먼 옛날 아버지의 식성(미역국에 반드시 초를 쳐서 잡수셨다)이며, 남편을 끝내 못마땅해하던 엄마를 생각했다. 올해 100살의 엄마는 미역국은커녕 입으로 먹는 음식을 못 잡숫고 뉴케어 유동식조차 드는둥 마는둥 링거로만 하루하루를 연명하시는 중이다. 엄마가 저세상으로 다시 태어나는 날은 엄마도 제발 아버지에 대한 서운함을 거둬들이고 아버지와 맞상을 받아 천상탄일의 미역국을 맛있게 드실 날이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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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서 꼴레뜨씨가 내 생일도 축하해줄 겸 별이 보이는 지리산 자락에서 함께 밤을 보내자고 해서 지리산 생태체험마을방갈로에서 밤을 지냈다. 산골 날씨여서 밤바람은 서늘하면서도 다디달다. 친구는 힘들어도 사람은 사람들 사이에 살아야지 이렇게 외진 곳은 싫단다. 휴천재를 처음 찾았던 후배가 가도 가도 산산 골골... 이런 데서 어떻게 살아요?”라고 물은 적 있는데, 그래도 휴천재는 인가와 50m 상거에 있다.


저 생태마을 가까이에 사는 성당교우가 있다. 고향마을에 집을 지어 노년을 보내는 게 꿈이어서 남편이 그 꿈을 이루어 주었단다. 그러나 한참 일할 나이의 남편은 아내를 귀향시키고도 자기는 몇 해를 서울서 돈을 버느라 아내 혼자 지내게 했단다. 아내가 사람이 그립고 산속이 무서워 마음병이 깊어져서야 남편이 내려왔지만 한번 망가진 마음은 좀처럼 회복이 힘들더란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가 아니면 짐승의 발자국, 소쩍새 울음, 달빛에 아스라한 무덤들마저 두려운 밤들이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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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아침 일찍 친구와 뱀사골 나들이에 나섰다. 연두색에서 연초록으로 막 넘어가는 계절, 개울가에 철쭉이 한참 물이 올라 곱디곱고 물푸레나무 하이얀 꽃은 포시시 몸을 털어 시선을 사로잡는다. 물과 산과 하늘과 구름 바위를 필름에 담으려 실사에 나선 사진사들, 물가로 소풍 나온 아이들, 마지막 봄이라도 될듯한 할매들... 봄꽃과 녹음과 더불어 모든 게 그림이었다. 물가에는 마고할매가 코를 길게 느리고 흐르는 물에 몸을 담그고 있었다


이렇게 올해도 봄날은 가고 내 남은 날을 위한 사랑의 추억은 알차게 하루를 채운다. 나도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처지가 오면 이곳 지리산 골골이 쟁여진 소중한 추억들을 하나하나 꺼내 보면서 혼자 남겨진 날들을 온기로 덥혀 보려고 몸을 뒤채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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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일요일. 7시에 공소예절을 하러 내려가니 우리 부부를 포함하여 6명으로 너무 단출하였다. 차라리 본당 미사에 가고 싶지만 그간 이어온 공소공동체가 사라지는 일이 마음 아픈 게 공소 식구들이다.

http://donbosco.pe.kr/xe1/?document_srl=7164



오후에는 오랜만에 한가한 시간을 가졌다. 재봉틀을 꺼내 놓고 거실 식탁보를 만들고 보스코의 잠옷 두 벌 윗도리에 호주머니를 달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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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귀요미 미루가 챙기는 은빛나래단에서 임신부님의 영명축일(마르코)이다. 남해 형부가 축하를 해드리자고 만남을 주선하셔서 저녁 6시 모임을 남해 미조에서 가졌다. 코로나로 인해 작년 11월에 모이고 반년만의 만남이다. 미조에 있는 멸치횟집에서 그간 못 나눈 얘기, 남해언니의 남편 다루는 묘법에 대한 노하우를 듣고 공부도 많이 했다


결혼 50주년을 맞은 남해형부의 결론은 '미워도 고아도 누구보다 친하게 지낼 영원한 친구는 아내뿐!' 언니는 '한 사람만 바라보며 반세기를 살아온 자신이 제일 대견하다'는 소감. 그 거친 세월에도 잘 사셨으니 그간 생크림같이 부드러워진 남편과 반백년 더 사시라 빌어드리고 헤어져 밤길을 달려 일행은 산청 함양 산속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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