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413일 화요일 맑음 


농부는 빗소리에 마음 뿌듯해 비에 젖은 푸성귀처럼 편안히 깊은 잠에 빠진다. 하기야 긴 장마에는 거의 모든 작물이 녹아버리기도 하지만 요즘처럼 일주일에 한번씩 약속이라고 한 듯 내려주는 비는 산에서 밭에서 자라는 생명들에게 보약 중 보약이다. 비가 멈추자 바람은 북한산 위로 안개를 말아 올리고 청명한 봄볕에 앞산은 청년의 팔뚝 같이 힘이 벌떡 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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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오랜만에 서정치과에 곽선생을 만나러갔다. 난곡 우정치과에서 치료 중인 보스코의 임플랜트의 실을 뽑으러 갔는데 언제나 변함없는 우정으로 우리를 따뜻하게 맞아주는 곽선생이 있기에 우린 이가 좀 아파도 걱정이 없다. 몸의 어디가 아파도 우리 몸을 돌봐주실 선생님들이 있어 만수무강할 판이다

서울집 마당 단풍나무에 비둘기 한 쌍이 둥지를 틀고 있다. 어디선가 물어온 풀이나 나뭇가지로 집을 짓고서 나뭇잎 밖으로 나오면서는 들킬까, 나가도 되는지 한참이나 살피고서 날아간다. 사람이 마당에 나오거나 까마귀라도 마당을 스쳐 지나가면 동안 안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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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서울집 있는 쌍문동에는 광풍이 일기 시작했다. 보름전 국토부가 '3080+주택공급`의 일환으로 서울에 스물 한 곳을 지정하면서 쌍문동 덕성여대 후문 일대곧 우리 동네가 발칵 뒤집혔다. 길 건너 완성빌라와 그 주변에 사는 사람들이 가로주택추진 건으로 한해동안 천갈래 만갈래로 갈라지는 아픔을 보았는데도 찬성이다, 반대다로 아직도 어지럽다.


서울집 1978년 풍경과 2020년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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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같은 대도시에 주거권 쟁취를 위한 공공재개발을 시작한 정부시책에 대한 원주민의 투쟁은 '목동 투쟁`부터 시작한다. 88올림픽, 아세안 게임을 전후해서 저층주거지를 합동으로 재개발 한다는 명분으로 토지주, 건물주, 조합, 민간건축업자가 뒤엉킨 80~90년대 철거, 개발, 그리고 투쟁은 눈물겹게 눈부셨다. 세입자는 아예 추방당하고 화려한 아파트생활을 꿈꾸며 땅과 주택을 내놓은 원주민은 아파트 재입주 율이 10% 미만으로 추방당해온 역사! 건설회사와 투기꾼의 천국이 만들어져온 지난 30!


두껍아, 두껍아 헌집 줄게 새 집 다오!’ 하는 노래에 홀딱해서 개발에 찬성도장을 찍고나면 그래도 내 집이라고 지니고 살던 원주민은 전세집으로 월세집으로 전전하다가 서울 변두리의 도시빈민으로 몰락한다. ‘이명박의 뉴타운을 시작으로  ‘오세훈의 용산개발은 참사로 막을 내리고 유엔에서도 세계에서 가장 폭력적인 강제 철거로 지적되었다전 세계에서 홍콩이나 싱가폴을 제외하고 이렇게 아파트로만 지어진 도시는 많지 않을 것이다


박원순 시장이 등장하면서 개발지정을 해제하고 강제철거는 종식되었다박시장은 지역의 특성에 따라 '도시재생 사업'으로 노후주택 빈집 등을 조화롭게 손질하다 아쉽게 떠났다.  ‘용산개발의 오세훈이 다시 등장하면서 서울 서민지역의 저층주택 시민들은 용산참사의 소름’의 기억이 되살아난다박시장이 새록새록 더 생각나고 아쉽다.


서울집 테라스에 놀러온 개똥지빠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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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마을을 공공주택공급이라는 명칭으로 지정하고, 우선 10%의 주민의 동의로 명칭을 받고 연말까지 65%의 찬성만으로 사업이 본단계로 오른다는데 법령도 규칙도 무엇이 어디서 어떻게 되는지 완전 깜깜이다.어제 보스코가 구청장을 마나고 왔는데, 구청장이나 담당공무원조차 제대로 모르더란다.아무도 모르는 일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불안하다.


이웃들은 "LH가 나서서 하니까 집짓는 돈 안 들고 꽁짜로, 내 땅 크기 만큼의 새 아파트를 준단다!"라는 황당한 꿈에 부풀어 있다. 집집이 2, 3억을 내야 아파트 입주가 될 터이므로 내가 나서서 "땅은 내놓아야 하고, 집값은 안 쳐주고, 입주권은 받고, 건축비는 본인이 낸다!"고 설명해도 막무가내다오늘 만나본 도시재생전문가 김성훈 목사의 말대로 '꽁짜는 없다 (건축업자가 나서는 것보다) 덜 낼 뿐이다!'


집을 고치고 살 돈 천만원도 없는 가난하고 나이든 분들이 어떻게 저걸 감당할지 몹시 답답하다. 욕심이 불운을 가져오듯 나이 들어 수십년 살아온 땅과 집을 빼앗기고 동네를 떠나 도시빈민으로 전전할 사람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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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분들이 내게 생일 축하 메시지를 보냈다. 6.25 전쟁 통에 불타버린 호적을 다시 정리하느라 울 아버지가 당시 하나밖에 없던 딸의 생일 423일을 13일로 등재하셔서 이리도 민폐를 끼친다. 하기야 매해 일러줘도 변함없이 틀리는 우리 작은아들도 있고, 아내의 생일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남편도 있다. 많은 경우 엄마나 여자는 생일없는 소녀들이기도 하지만... 오늘이라도 축하해주는 분들이 있어 고맙고, 오늘 오후에 이사회 회의석상에서 축하 케이크를 놓고 축하 노래를 불러준 이주여성인권센터식구들에게도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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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안에 서울집을 몰수당하고 부숴지고 아파트로 지어 올린다는데, 난 오늘도 마당에 풀을 뽑고 분홍 덩쿨장미 옆에 심을 노랑색 사계넝쿨장미를 샀다. 보스코는 아침나절 돈대의 장미넝쿨과 능소화를 다듬었다. 


우리가 43년간 가꾸며 살아온 집이다. 마당의 디딤돌 하나하나, 말람이가 주고 하늘나라로 간 화산석들, 좁다란 마당 곳곳에서 올라오는 둥굴레, 은방울꽃, 현호색, 금낭화, 매발톱, 조개나물, 섬괘불주머니, 큰꽃으아리, 복수초, 섬초롱, 바위손,..... 하나하나와 눈을 맞추며 이름을 불러준다. 작별이 서린 눈인사다.


저것들은 내가 버리거나 저사람들이 으깨버릴 물건이 아닌, 내 사랑하는 인생의 길동무다. 무언들 다 내려놓고 떠나야 할 나이가 가까워지면서 하느님이 비우고 떠나는 날을 위한 예행 연습을 시키시는지, 마음은 한없이 착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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