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91일 목요일. 맑음


내가 18년을 탄 소나타와 아쉬운 이별이다. 로마에서 사서 역수입한 차량이어서 걔 이름은 소니카(SONICA)였다. 그곳에서 소나타(sonata)라면 맛이 살짝 간 여자라는 뜻이어서 내가 그 차에서 내리면 차 마크를 보고선 나마저 맛이 간 여자로 보기 십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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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탈리아에서는 소니카로 팔린다. 한국에 와서 우리 차를 보고 사람들이 이 차는 소나타와 똑같이 생겼는데 왜 이름이 소니카냐?”고 묻곤 했다. 이탈리아말을 설명하기 쑥스러워 중국제 짝퉁이라고 답해줬다. “정말 소나타 하고 똑같다. 역시 중국놈들 가짜 계란도 만드는 기술로 이것도 이렇게 베꼈네.” 하고 혀를 찬다.


정말 그동안 수고 많았다.’ 33만 킬로를 달려주었다. 차를 가진 사람은 모두 그렇게 느끼겠지만 마치 내 몸의 일부로 느끼며 내가 가는 모든 곳을 동반하며 충실하게 내 발이 되어주었는데 늙고 병들었다고 고려장 치르는 염치없는 심사를 느낀다. 고마운 건 우리 미루가 집과 회사를 통근하는 회사차로 쓰겠다고 한다. 우리 노친네들을 '은빛나래단'으로 보살펴주듯이 낡은 것도 마음 쓰며 곱게 봐주는 미루가 실속 있고 기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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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산 차는 아반떼 하이브리드 풀옵션. 휴천재 아랫집 진이가 나이 드셨으니 운전하다가 완벽한 자율주행차(그런 차가 과연 나올지? 언제 나올지는 아무도 모른다)가 나오면 그걸로 바꿀 때 다시 팔려면 중고로 제일 잘 팔리는 차가 아반떼 풀옵션으로 보장된데요.”라는 젊은 세대의 조언을 따라 이 차를 선택했다등록세를 내고 번호판을 받아 달고 먼저 차에 넣었던 보험승계를 하고 선팅까지 다 해서 내가 있는 중앙보훈병원으로 갖다 달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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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PCR 검사 음성판정을 다시 받아들고 이틀만에 보스코를 보러 병원에 갔다. 그는 함박웃음으로 나를 맞는다. ‘저렇게 좋을까?’ 하기야 내가 한나절만 안보여도 아래위층을 찾아다니는데 이틀이나 못 봤으니 잘도 견뎠다, 아들들이 놀리는 마누라도착증! 둘이 이렇게 알콩달콩 의지하며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하나가 사라지면 남은 자(未亡人)는 날개 부러진 새가 되어 추락해버리리라.


보스코는 오늘 PET-CT(양전자단층촬영)를 찍고 여러 검사를 마쳤다. 주치의가 월화수 사흘동안 행한 검사를 종합해서 보여주면서 암이 확실하다는 판정을 들려주고 내일 목요일 11시에 수술에 들어가겠다며 동의를 구했다. 우리는 폐가 좌우 두 쪽인 줄만 알았는데 왼쪽은 두덩어리로 되어 있고 오른쪽은 세 덩어리로 되어 있다나?


오른 폐 중엽 끝부분 3분의 1을 잘라낸다니 분량으로는 보스코의 폐 전체의 15분의 1이다. 우리 스승 문동환 목사님은 폐 한 쪽을 다 들어내시고도 100세까지 사셨다. 지금 교황 프란치스코도 젊어서 폐 한 쪽을 들어내고서도 15억 가톨릭교회를 잘만 개혁하고 계시니  수술 후에도 천수는 누리실 겁니다하는 주치의의 메스에 맡기는 수밖에. 천수야 위에서만 아시는 숫자라는 뜻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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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이 엄마 아빠, 체칠리아, 도미니카 우리 네 딸, 은빛나래단, 남녀 살레시안들, 성삼의 딸들, 대모님과 노틀담, 윤희, 우리 양가의 형제 친척들, 특히 아빠를 애달프게 사랑하는 두 아들 그 외에 얼굴 모르는 친구들 ... 이렇게 많은 사람이 알고 걱정하여 보스코는 병소문으로 하룻만에 일약 유명인사가 되었다. 기돗빨 대단한 성직자 수도자들이 나섰으니 하느님의 마음도 움직이고 남으리라. 그분들 기돗빨로 살아온 우리이니까...


나도 오늘부터는 병실 간이침대에서 쪽잠을 자기로 했다. 수술실에 마취되어 누워있으면서도, 중환자실에 옮겨져 있으면서도 내가 물리적으로 가까이 있다는 게 심리적으로나마 힘이 되어주기를 바란다니 우리 아들들 말대로, 보스코는 와이프보이에 틀림없다.


침대에 잠든 보스코를 올려다 보면서 요즘 읽고 있는 이어령 교수 책에서 그가 죽기 전 남긴 글을 되새긴다내가 느끼는 죽음은 마른 대지를 적시는 소낙비나 조용히 떨어지는 단풍잎이예요.  '때가 되었구나. 겨울이 오고 있구나.....죽음이 계절처럼 오고 있구나.' 그러니 내가 받았던 빛나는 선물을 나는 돌려주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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