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828일 일요일. 맑은 가을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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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는 맑다. 서울집 서쪽 창밖으로 북한산 봉우리들이 가을 하늘에 얼마나 웅장한 자태로 서 있는지 탄복하게 된다. 우리가 45년간 지켜본 산이다


그러나 내 마음은 흐림정도가 아니고 갑자기 들이닥친 천둥 번개에 비바람 치는 폭풍의 언덕이다. 남의 집 담벼락에 붙어 서서 비바람을 좀 피해 보려 해도 짧은 처마로는 도저히 비가림이 안 된다. "그래, 아무리 거친 날씨지만 언젠가 지나가겠지..." 라며 버틸 수밖에...


8월 24일 수요일은 3개월마다 보스코의 심장수술(2019년 2경과에 정기검진을 받고 석 달 치 약을 타러 보훈병원에 가는 날평소와 마찬가지로 심전도와 X레이를 찍고나서 주치의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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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는 X레이 형광판을 한참 바라보더니 3개월 전에 찍은 사진과 이번 사진을 비교해 보이며 설명한다. 담백한 말씨다. "보세요, 폐의 아랫부분이 3개월 전엔 이렇게 희끄므레했죠. 그런데 오늘 걸 보시면 더 하얗고 더 선명하죠?" "저게 뭔데요?" 가슴이 덜컥 내려앉으며 보호자인 내가 묻는다. "암인 듯한데 CT 찍어보면 명확히 나올 꺼에요." "!!! ??? !!!"


의사는 곧바로 토요일 아침 9시에 CT촬영을 예약해 주었다. 그날까지 기다리는 사흘은 다름 아닌 마음의 지옥이었다. 집안일을 하다 가도 문득문득 불안한 생각이 겨울새벽 찬 서리가 되어 휘익 할퀴고 지나갔다우리 부부가 50년간 살아온 나날과는 전혀 하늘의 색깔이 달라진 세월로 접어드는 예감이 들었다.


토요일 밤 주치의가 전화를 해주었다. "조직검사를 해야 정확히 알겠지만, 오늘 CT 촬영 결과로는 폐암일 확률 90프로에요. 폐 말초 쪽으로 1.2cm 한 개, 그리고 아주 작은 것  한 개가 나타났어요. 긍정적인 점은 2cm 이하 크기의 초기이고, 안 좋은 점은 아주 작은 점 하나가 더 있어 전이 가능성이 보여요."


의사는 "월요일에 입원하여 조직 검사를 해서 암 종류를 판단하고, 암 종류에 따라 항암처리를 하고 넘어갈지, 아니면 대부분 그렇게 하듯 절제를 할지 결정하지요. 절제할 경우 소형에다 (기관지 가까이 중심부가 아니어서) 말초여서 갈빗대 사이를 작게 절개하고서 부위를 떼어낸 다음에 추석 전에 퇴원이 가능하게 해드리지요."


보스코는 원래 '정신이 신체에 미치는 영향'을  실제로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람이어서 위가 아프면 '위궤양이 될 거야!' 하고 (지난 달 한일병원의 MRI 촬영처럼) 머리가 아프면 '어이쿠 뇌종양이야!'라며 극단적으로 걱정하는 사람이어서 그를 달래는 일이 우선이었다"모든 게 하느님 손에 있고 상한 나뭇잎 하나도 그분이 원치 않으시면 안 떨어진다."며 보스코에게 그동안 그분이 해주신 일을 하나하나 일깨워주었다


98년 화재로 녹아내린 카타콤바 집 십자가는 지금도 휴천재에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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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donbosco.pe.kr/xe1/?document_srl=288

1997-98년 로마에서 안식년을 보내던 산 칼리스도카타콤바에서 일어난 기적! 점심식사 후 늘 낮잠을 자던 보스코가 시에스타를 못 하게 이 극성 아내를 시켜 점심 후 집에서 끌고나와 언덕 위 수도원 부엌으로 데려갔고, 그리고 케이크를 굽는 식재료를 사러 슈퍼마케트에 함께 데리고 가게 하시어 우리가 이태 묵던 작은 집이 한낮에 날벼락을 맞아 집안이 모조리 타버리고 시커먼 유독성 연기로 가득한 사고에서 그를 구해주셨다.


내가 끄으름이 잔뜩 묻은 그의 옷을 빨며 신나게 노래를 부르고 있으니까 쟌카를로 신부님이 지나가다 집 홀랑 태워 먹고 뭐가 그리 신나냐?” 하셨다. “보스코가 죽어 유품을 정리하게 되지 않은 행운이 고마워서요.”라고 대답했다.


2019년 그의 심각한 심장 상태를 수술해준 보스코의 사촌(이번에 폐암 수술에도 그의 주치의), "작년엔 작은 형님(준이 서방님)이 심장마비로 돌아가셨고, 올해는 큰형님(보스코) 차례였는데 용궁 갔다 오셨네요.”라고 평해준 적 있다. 그 외에도 우리에게 목숨의 위기를 간단히 넘기게 해주신 수없이 많은 은혜는 주님께 갚을 길이 없다.


그리스 고대문학에서는 신들이 인간들을 부를 때에 죽음에 붙여진 존재’(thanatoi: 사멸할 자)라고 일컬었다(자기들은 athanatoi '불사신'!)삶이 유한한 인간에게 자기 삶의 끝나는 지점을 저어기쯤으로 분명하게 가리켜 보여주시는 일은 놀라운 은혜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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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구절 주님께서 너에게 잘해 주셨으니, 고요로 돌아가라 내 영혼아!”(114,7)를 좌우명으로 살아가는 보스코여서  올해 만80을 넘겼으니 살 만큼 살았고 나머지를 잘 마무리하라는 선물로 이번 일을 의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하기사 퀴블러-로쓰의 『인간의 죽음(Death and Dying)』을 70년대에 번역 출판하였고(분도출판사), 호스피스 교육장마다 "죽음의 철학적 의미"를 강연하러 다닌 교수로서는 당연히 기대되는 자세이기도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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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맡겨진 시간을 그만큼 고마워하며 충실히 살아갈 때 그분이 우리 등을 토닥여주시며 잘 살았다칭찬해 주시리라는 희망, 신앙인은 그런 기대를 품을 수 있어 참 좋다


어제는  '큰딸'이 와서 나랑 함께 우리 성당에 가서 성모상 밑 잡초를 베는 극성을 보였고 우리를 큰아들 빵기와 함께 하누소에 가서 저녁을 대접하며 우리를 위로했다.  빵기는 오늘 저녁 9시 비행기로 스위스 가족에게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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