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417일 부활절. 맑음


비행기를 타고 먼 길을 와서 피곤해 정신없이 잠든 두 아이를 흔들어 깨워 아침 밥상에 앉히는 일은 할미로서 마음이 짠하다. 지난 15년간 한 해에는 우리가 유럽으로 가서 손자들을 보고 (한해쯤 건너 띄고) 다음 해에는 큰아들네가 한국을 방문했다(2019, 2016, 2013,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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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로 인해 두 해 넘게 할미를 못 보고 고국 나들이를 못한 애들은 판데믹 법정 격리를 없애자부활방학을 보내러 입국했다. 하루는 종일 오고 하루는 종일 가야 하는 여로를 감수하고 이 할미 보겠다고 왔으니 고맙기만 하고 큰 손주의 늠름한 모습과 작은 놈의 곰살 맞은 행동에 요 며칠 행복하기만 했다. 운전하기에 좀 불편한 손이지만 부지런히 다녔다


그제 금요일에는 아들네가 귀국할 적마다 행하는 치아 정기검사와 잇몸 치료! 곽선생님은 시아의 첫 귀국(2007)부터 아이의 치아를 담당해주셨다. 아니 1997부터 25년 넘게 우리 가족의 (치과) 주치의이시다. 서울치대 학장이셨던 '종혁이 아빠'에게서 "내가 가르쳐온 의대생 가운데 가장 똑똑하고 가장 솜씨 좋은 치과의사"라는 추천을 받고서 부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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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아침 930분에 서정치과에 가서 며느리와 두 손주가 정기검진과 대대적인 치료를 받았다. 뒤이어 둘의 삼촌을 보러 두 손주를 데리고 보라매공원 앞 살레시오 수도원에 갔다. 


먼저 세상을 떠나신 노신부님 빈소가 차려진 대성당에서 위령기도를 드렸다.  살아 생전 그렇게 인자하시던 얼굴이 제단 앞에 커다란 걸개 사진으로 나를 맞아주셨다. 국화 한 송이를 바치고 향을 올렸다. 우리 곁을 떠나셨어도 그분을 만났던 모든 사람들의 마음이 힘들 때 내 편이 되어 주셨던 성인이시니까 이승이든 저승이든 우리를 위한 기도로 보살펴 주시리라 믿는다. 보스코네에서는 16일에 훈이 서방님이 대표로 장례식에 참석한다. (성주간이므로 미사 없이) 장례식을 거행하고 시신은 가톨릭의대에 해부용으로 기증된단다. 한 수도사제가 남김없이 주는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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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고신부가 조카들에게 수제 햄버거를 점심으로 사줬고 오후 3시에 관구관 성당에서 성금요일 주님의 수난 예식도 다 같이 참석했다. 두 손주는 제네바 현지본당과 교민성당에서 미사복사도 하는 아이들이라 수난예식에 경건하게 참석했는데 나는 어지간히 피곤했던지 깜빡 졸다 예식을 공동 집전한 빵고신부가 "엄마, 일어나세요"하는 작은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신부님 엄마가 아들 신부를 찾아와 전례 중에 잠들었다면 흉 볼 꺼리겠지만,  보스코와 지내고 문정리 노인들 템포에 맞춰 살다 보니 손주들 따라다니는 일이 많이 힘들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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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촌 신부 사무실에서 놀던 시아 시우는 "우리 그만 집에 가자."는 내 말에 "벌써 가요?" 라며 눈이 둥그레진다. 작은 놈은 초딩 6학년인데도 아직 아이 티를 벗지 못했다. 수도원 식당에서 문상객에게 대접하는 저녁까지 얻어먹고서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오자 시아와 시우가 할미 생일 축하(4월 23일인데 주민등록에 13일로 되어 있어서 많은 지인들에게서 앞당겨 축하를 받았다) 연주를 한다고 플룻과 캠코더로 연습이 부산했다, 어멈은 악보대 노릇으로 악보를 손으로 받쳐 들고. 관객을 먼저 모셔 놓고서 한참이나 연주를 맞추는 품이 우리를 더 재미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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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손주의 공연과 생일축하 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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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한국 노래를 시아가 인터넷으로 다운 받아 동생을 가르쳐 가며 공연을 했는데, 과연 내가 빵기와 빵고를 낳았고, 빵기가 저 두 사내애 시아와 시우를 낳음으로써 내가 얼마나 사랑을 받고 있는지 모르겠다. 노랫말처럼, 이 전순란의 태어남 역시 내게도 손들에게도 그만한 축복이 아닐 수 없겠다. 교회에도 성모님 생일('복되신 동정 마리아 탄신')이 따로 있으니까 모든 할머니와 모든 어머니는 자기가 낳은 생명들에게서 축하를 받아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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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아침 며느리와 두 아이, 그리고 그보다 더 많은 짐을 싣고 청담동 사부인 댁으로 데려다 주었다. 이번 부활방학에는 아범은 못 와서 시댁엔 이틀간 머물고 (딸이니까) 친정엔 닷새 머물도록 아범이 배려했다. 5월에 '우리 아들 빵기'가 회의차 귀국하면 처갓집에선 이틀, 우리 집에선 닷새 머물게 해야겠다. 사부인이 큰아드님(당신 사위)은 멀리 있고 작은 아드님은 수도회에 내놓으셨으니 두 분이 사이좋게 건강하셔야겠어요.”라고, 동정어린 축원을 해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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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토요일 밤 부활성야미사를 드리러 우이성당에 갔다. 부활하신 주님이 기다리시는 곳오랜 친구들이 반갑게 맞아주는 친정집, 두 시간 반에 걸친 부활성야 미사가 너무 평안하고 행복했다. 천국에 가도 지상에서 늘 반갑던 사람들이 우리를 반겨준다니 이승을 떠날 때도 우리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달음박질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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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부활절. 나의 대모 김상옥 수녀님의 축하전화처럼, 국내정치나 국제정치의 어두운 상황 속에서 유난히 암울한 사순절을 어서 끝내고 전국민과 전인류가 반길 정치적 부활절을 맞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하다. 역사의 이 위기에 "주님, 가지 마시고 우리와 함께 계셔주십시오. 주님, 한평생 우리를 성하게 해주소서." 사랑하는 친구들과 가까운 지인들과 부활인사를 나누면서 이 땅에 봄날이 오기를, 때를 놓치지 말고 희망의 씨를 심어야 한다


"주님, 가지 마시고..." 제목 성찰: 

http://donbosco.pe.kr/xe1/?document_srl=5591

보스코의 부활절 단상

http://donbosco.pe.kr/xe1/?document_srl=7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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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대축일을 빵기와 빵고의 어린 시절 친구 상림-호림이네 부모님과 함께 의정부에서 지냈다. 우이동 솔밭 옆에서 40여년을 이웃으로 살다가 의정부로 이사 간 가족이다. 보스코가 그 집 큰아들 호림이 결혼 주례를 서준 인연으로 13년 만에 만났어도 어제 헤어진 사람들 같이 살갑다


양주 돈까스 1호점이라는 곳에서 점심을 대접 받고 그 집에 가서 다과를 하며 아래층에 사는 상림이네 가족도 만났다. 밝고 명랑한 며느리와 착하고 성실한 아들, 그리고 의젓한 두 손주와 더불어 한 동 두 아파트(4층과 17)에 사는 재미가 너무 달달하다는 흐뭇한 자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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